[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34)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제주풀무질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고봉선 작가가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글] 

‘풀무질’ 하면 대장간의 담금질이 먼저 떠오른다. 서울에서 풀무질이란 이름을 내걸고 28세 때부터 54세까지 26년 2개월 11일, 지금은 구좌읍 세화리에서 제주풀무질이란 이름을 내걸고 동네책방을 꾸려가고 있는 은종복 씨를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책방 이름 풀무질에는 1970~80년대 잘못된 군사정권에 불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이 숨어 있다. 책방을 방문하기 전, 문의하는 과정에서 꼬박꼬박 대꾸해주는 그의 문자에선 따뜻함이 묻어났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으로 들어서면 바닥에 쓰여 있는 책방지기 은종복 씨의 글이 훅, 가슴에 안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서울풀무질을 떠나다”

약 1억 5000만 원, 서울풀무질을 그만두면서 남은 건 빚뿐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부모님의 도움으로 마련했던 낡은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빚을 갚은 후 그는 구좌읍 세화리에 495.9㎡ 정도의 땅을 샀다. 아들도 하지 않겠다는 책방, 세 명의 젊은이에게 3만여 권의 책과 함께 모든 걸 무료로 넘겼다. ‘아름다운 인수’였다. 청춘을 바친 책방이 문을 닫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은종복 씨가 제주에서 풀무질이란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서울풀무질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은 여럿 있었다. 나이 든 몇몇은 빚을 다 갚아줄 테니 몸만 나가라고 했다. 그들은 수익이 나지 않아도 장기를 두며 소일거리로 즐기겠다고 했다. 돈이 아쉽지 않은 사람들, 은종복 씨는 그들에게 책방을 넘기지 않았다. 책방은 성균관대학교 앞에 있다. 고객층이 대학생이란 뜻이다. 나이 든 사람과 젊은이가 어울리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이라는 것이다. 잘못된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으로 책방을 꾸려왔던 은종복 씨, 그는 돈에 눈먼 세상을 바꾸는 지혜 혹은 슬기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는 세 명의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마음의 창인 눈빛은 맑았고, 영혼의 소리라 할 수 있는 목소리도 고왔다. 더 볼 것도 없었다. 힘든 동네책방, 코로나19로 더 힘들어졌다. 알고 떠난 건 아니지만 미안했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잘 꾸려나가고 있다. 그들을 선택한 건 옳았다.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 은종복 씨는 그들과 세상 이야기도 나누고 고통도 나눈다. 여러 권의 책을 정가로 사면서 위안도 삼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손님이 책을 살피고 있다. 손님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 읽기 모임”

제주에서 시작한 첫 번째 책 읽기 모임은 ‘제주풀무질녹색평론읽기’이다. 이 외에도 ‘선흘녹색평론읽기’, ‘제주주경야독’, ‘고전읽기’를 더하고 있다. 제주에 와서 처음 터를 잡은 조천읍 선흘2리에서 마을 사람들과 꾸린 책 읽기 모임이 ‘선흘녹색평론읽기’다. 세화리로 출퇴근하기 위해 90만원 주고 중고차를 샀다. 안개도 안개지만 선흘리는 눈도 비도 많이 내렸다. 안개가 심할 땐 앞이 안 보이고, 뒤에서는 큰 차가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았다. 비 올 땐 찻길에 물이 넘쳐 잠길 뻔도 했다. 눈이 쌓일 땐 출근을 못 하기도 했다. 그보다도 출퇴근 때 길에 석유를 뿌리고 있다는 사실이 더 불편했다. 

1년 후 세화리로 집을 옮겼다. 책방과는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빌라다. 여기서 농사짓는 사람들과 주경야독 모임을 했다. 책방 가까이 있는 교사, 숙박업자, 동네 상가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과 고전 읽기 모임도 꾸렸다. 모임을 꾸리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아직은 낯선 제주, 게다가 시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였다. 책 읽기 모임을 하겠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찾아왔다. 서울에서 모임 구성원은 주로 대학생이다. 이들은 졸업하면 모임도 졸업이다. 그러나 제주에선 다르다. 모두 책방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 마을을 떠나지 않는 한 졸업은 없다. 농사짓는 이들은 땅을 살리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데 마음을 모은다. 읽기와 실천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농사 현장을 보면 가슴 아프다. 현실은 이론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 약은 사람에겐 안 좋은데 작물엔 좋아요.” 

책방 주변엔 당근밭과 무밭이 많다. 어느 날 당근밭에 농약 치러 온 분이 창문을 닫으라고 하면서 말했다. 사람 몸에 안 좋은 약이 작물에 좋을 수 있을까. 그가 사는 세화리는 당근의 고장이다. 당근이 파릇파릇한 구좌읍의 가을 들판은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그 땅에서 지렁이는 보기 힘들다. 땅을 갈아엎어야 하고, 농약을 치지 않으면 농사짓기 힘들다. 일손은 없고, 가격 경쟁으로 농산물값도 점점 낮아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첨단 나노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의 복합체인 스마트팜이 새로운 농업 방식으로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이제 농작물은 거두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질소, 인, 칼륨을 버무려 만든 화학제품을 먹고 있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자족 비율도 30%가 채 안 된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이런 사실을 알게 해 준 녹색평론이 고마우면서도 답답하다. 그래도 구성원들은 농사지으면서 농약 사용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노력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손님이 책을 살피고 있다. 손님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숲이 없으면 사람도 살 수 없어”

제주, 은종복 씨는 15년 만이다. 책방 일을 하느라 나들이 한번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온 제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런데 왜일까. 몸은 편한데 마음이 혼란스럽다. 

선흘2리에 터 잡았을 때, 동물원을 만든다고 했다. 그는 반대대책위원회 활동을 했다. 다행히 지금은 멈췄다. 하지만 언제 또 누가 총대를 멜지 모른다. 제2공항도 그렇다. 그는 제2공항 건설 반대 책자(SAVE JEJU)를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며 제2공항 건설을 막는데 한몫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누군가는 어딘가에 제2공항을 만들겠다는 야망을 버리지 않는다.

선흘과 세화 사이, 송당리엔 태고적 자연이 보전된 비자림로가 있다. 여기엔 수만 그루의 삼나무와 천연보호종 긴꼬리딱새와 팔색조도 산다. 그런데 길을 넓힌다며 삼나무 2500여 그루를 잘라냈다. 비록 환경영향평가에 걸려 멈추긴 했지만, 천연보호종은 다른 곳으로 옮기고 공사를 계속하자 한다. 숲이 영화세트장인가, 숲의 동물을 사람이 마음대로 옮길 수는 없다. 서울에선 이런 일도 관련 단체에 돈을 내거나 연대 서명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제주도민이 된 지금은 다르다. 나 몰라라 할 수 없는데 쉽지 않다. 생업이 문제다. 제주도에서 행복하지만 파괴되는 자연을 보면 아프다. 

이반 일리치는 자전거, 도서관, 시(詩)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가서 시를 읽고 쓰면 어려운 일이 닥쳐도 세상은 평화롭다고 했다. 은종복 씨는 여기에 땅을 더럽히지 않고 먹거리를 일구는 일을 더 보탠다. 먹거리, 신성한 일이다. 자연과 더불어 일구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도 없다. 멋, 아름다움, 편한 것만 찾으면 숲은 파괴된다. 숲이 없으면 사람도 살 수 없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의 2500여 권 책 모두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책 소개를 따로 메모하지 않는다. 위 메모는 간디 학생이 왔을 때 추천한다며 붙여놓은 책 소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인문사회과학 책은 밥이다”

여행객이 대부분인 제주풀무질에서는 산문집과 소설이 많이 팔린다. 읽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방지기는 인문사회과학 책을 많이 갖추려고 애쓴다. 그 결과 다른 책방에 비해 인문사회과학 책이 많은 편이다. 그의 꿈은 두 가지다. 온 세상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날을 맞이하는 것,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그랬고, 제주에서도 그 마음으로 책방을 운영한다. 

책방지기는 인문사회과학 책이 곧 밥이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으려면 반찬이 필요하다. 반찬을 더 많이 먹을 수도 있지만, 밥이 없으면 밥상이 아니다. 인문사회과학 책은 이 땅에서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후손들을 위해서다. 세상은 논리와 비논리, 가짜와 진짜 등등 대립적인 것들이 얽혀 있는 그물망이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세상을 보는 힘, 그 근육을 길러주는 게 인문사회과학 책이다. 그는 세상을 보는 힘을 얻으려면 여행에서도 인문사회과학 책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삶의 중심을 잡아 주기 때문이다. 

“죄인이었다”

서울에서 하던 책방은 왜 망했을까. 은종복 씨는 자신이 책방 경영을 잘못했다고 말한다. 아들이 스무 살 되었을 때, 그는 아들 이름으로 은행에서 2000만 원 대출받았다. 아내는 재산을 물려주지 못할망정 빚을 물려주면 되겠냐면서, 책방을 그만두든 이혼을 하든 선택하라고 했다. 그는 아내를 선택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26년 동안 책방을 하면서 남은 것은 빚, 얻은 건 아내와 아들이었다. 다행히 아내가 허락해서 살던 아파트를 팔고 빚은 모두 갚았다. 더는 도시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숨어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지리산 근처로 가고자 했으나 아내와 아들이 반대했다. 그에게도 이유는 있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책방을 하면서 집까지 팔았으니 그는 죄인이었다. 밤이면 밤마다 눈물로 의논한 끝에 제주도가 결정됐다. 무얼 하며 먹고 살아야 하나. 아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아버지는 평생 책방을 하셨으니 제주도에서도 책방을 하셔야죠.”

‘또 책방?’ 아서라, 손사래 치던 아내도 제주도라면? 솔깃했다. 큰 책방도 없고, 전자책방도 택배비를 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주도 역시 전자책방 택배비는 무료였다. 어쨌든 그는 제주에서 책방을 하게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문살 너머로 책방지기가 보인다. 앞엔 그가 좋아하는 음악 시디가 잔뜩 쌓여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광복이는 영업부장”

제주풀무질에 가면 소리 없이 다가와 머리를 비벼대는 하얀색 개 한 마리가 있다. 8월 15일에 만나서 광복이라고 불리는 개다. 광복이는 떠돌이 개였다. 

은종복 씨가 살던 선흘2리 집 옆엔 함덕초 선인분교가 있다. 그는 분교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즐겨 바라보았다. 2019년 8월 13일, 비쩍 마른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다음날 그 개는 눈치를 보며 이웃집 개의 밥그릇에 다가갔다. 밥그릇은 비어 있었다. 그의 아내가 탕수육 몇 점을 주자 허겁지겁 먹고 사라졌다. 다음 날, 다시 왔다. 철사를 두 겹으로 한 목줄 아닌 목줄을 두르고 있었다. 

그날 밤, 그 개를 두고 가족회의가 열렸다. 그는 먹이만 챙겨 주자, 아들은 집에 들어온 생명이니 거두자고 했다.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누군가 잃어버린 개일 수도 있다. 동물보호센터에 전화했다. 놀랐다. 제주도에서 유기되는 개가 하루 50마리가 넘는단다. 3%만이 읽어버린 개이며 입양되는 개는 7% 안팎, 나머지는 2주일 동안 공고 후 안락사한다고 했다. 그의 가족은 그 개를 거두기로 하고, 동물보호센터로 가서 신고했다. 

광복이가 집에 오고, 목에 둘린 철사를 잘라야 했다. 그런데 목에 붙어있어서 펜치가 들어가지 않았다, 물릴 각오로 쇠줄을 잡고 위로 올렸다. 애잔하고도 맑은 눈, 광복이는 목을 들며 도왔다. 두려워서 물었을 법도 한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광복이가 돕지 않았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쇠줄을 뺐다.

진드기에 심장사상충, 병원 치료를 시작했다. 진드기를 없앤 뒤 살을 찌워야 했다. 잘 먹지 않았다. 겨우 살찌운 뒤 심장사상충 치료제를 주사했다. 독해서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주사를 맞은 광복이는 눈동자가 허옇게 뒤집히며 축 늘어졌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치료를 마치자 빠르게 회복했다. 이제 중성화 수술이다. 수술 후 2주일 가까이 배에 찬 복대, 안쓰러워 대신 아파주고 싶었다. 복대를 푼 날 그의 가족은 춤을 췄다. 150만원쯤 들어갔지만 아깝지 않았다. 

이제 광복이는 그의 집 복덩이다. 은종복 씨를 따라 책방에 가면 한쪽에 가만히 엎드린다. 손님이 와도 살짝 냄새만 맡을 뿐이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5분만 지나면 광복이에게 말을 건넨다. 그래도 손이나 핥을 뿐 시큰둥하다. 광복이는 그의 아내를 가장 좋아한다. 아내만 나타나면 꼬리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책방 안을 뛰어다닌다. 그러다가 양탄자를 마구 긁는다.

“종복이는 버려도 광복이는 절대 안 버린다.” 

아내가 하는 말이다. 이제 그가 살길은 광복이를 보살피는 거다. 30년 가까이 살며 애정이 식어가던 차였는데, 아침저녁으로 광복이랑 산책하면서 부부는 늦정도 생겼다. 광복이가 보고 싶다고 오는 사람도 꽤 있다. 그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면 광복이는 귀찮은 척 튕기며 모델이 되어 준다. 책을 많이 구매한 손님은 저도 아는지 더 예쁘게 앉는다. 이제 광복이는 제주풀무질 영업부장이다. 제주에 와서 온전히 생명 하나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광복이를 만나서 그는 행복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풀무질 영업부장 광복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다시 빚”

2019년 7월, 은종복 씨가 세화리 바닷가에서 책방을 시작할 때 계약은 2년 단위였다. 그러나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옮겨야 했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월세를 두 배 올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서울에서 월세 100만원 넘게 내다가 망했다. 제주에서도 그리 될까 두려웠다. 제주에서도 100만원 넘는 월세,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 주인은 찻집을 하려고 인테리어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책장과 그 외 소소한 것만 꾸미면 되었기에 주인은 도움을 준 셈이다. 그래서 고맙다. 다만, 오래 하라더니 월세 두 배 인상이 아쉬웠다. 그러나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었다. 조금씩 올렸다면 끓는 물속에서 천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시간과 함께 월세의 무게에 허덕였을 것이다. 할 수 없이 사 둔 땅에 집을 지었다. 본의 아니게 내 집에서 장사하게 되었다. 28년 만이다. 월세 두 배 인상은 전화위복이었다. 

스물여덟 살 청춘, 그가 책방을 시작하게 된 건 신들린 듯 책 읽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릴 적엔 책도 맘대로 살 수 없었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어린 은종복 씨는 호기심도 많았다. 예를 들면 밥을 먹다가 ‘손으로 먹으면 되는데 왜 숟가락이 있어야 하지?’, ‘왜 똥을 꼭 싸야 하지, 밥을 안 먹으면 될 텐데.’와 같은 황당한 거였다. 마틸다가 생각났다. 마틸다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다. 그러나 돈밖에 모르는 부모에겐 실수로 태어난 아이일 뿐이다. 은종복 씨 부모는 돈밖에 몰라서가 아니라 가난했다. 재산에 대한 욕심은 단지 집 한 채,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빚을 없애니 홀가분했다. 그런데 집을 짓자니 무일푼이다. 다시 2억의 빚을 지고 말았다. 28년 만에 내 집에서 하는 책방, 그러나 마음은 무겁다. 빚을 갚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빚을 지는 건지 모르겠다. 기존에 있던 돌집은 책방으로 꾸미고, 살림집은 나무로 지었다. 캐나다에서 온 나무라고 했다. 캐나다의 어느 숲을 없애고 제주도에 집을 지었다니, 이 또한 괴로웠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살고 싶었는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자연을 훼손하며 살 걸 생각하니 영 불편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안에서 바라보는 창이 마치 액자 같은 느낌이다. 창 오른쪽에는 그림책이 진열되어 있고, 왼쪽에는 방문객들의 명함이 가득 꽂혀 있다. 창문 너머엔 비파나무, 그 뒤로 무밭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도서관을 집처럼”

은종복 씨에겐 잊을 수 없는 큰 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받았던 그 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뭉클하다. 학교에서 전교생을 상대로 한 학기 동안 암행했다.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학생을 찾기 위해서다. 그때 은종복 씨는 수업이 끝나면 늘 도서관에 갔다. 당시엔 어린이 책도 흑백으로 된 그림이 조금 있을 정도였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거의 날마다 갔다. 

조회 시간이었다. 한 학년에 15반, 2부제까지 있었으니 학생 수는 엄청 많았다. 3학년 은종복을 불렀다.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그는 심드렁하게 있었다. 반 아이들이 너를 불렀다고 했다. 그럴 리 없다고 했다. 다시 한 번 호명되었다. 진짜였다. 전교생 중 딱 한 명, 우등상도 받았지만, 그에겐 이 상이 더 컸다. 휘경초등학교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한 학생에게 주는 상이었다. 

중학교 땐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동대문 도서관에, 고등학교 땐 정독도서관에 다녔다. 시립인 정독도서관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큰 도서관이다. 그 도서관에 가기 위해 방학만 기다렸을 정도다. 부모님께선 영어, 수학을 공부하는 줄 아셨지만, 그는 책을 읽으러 다녔다. 그때 노벨문학전집을 읽었고,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 대작들을 읽었다. 

중학교 땐 3교시면 이미 도시락을 비우고, 점심시간엔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그때도 은종복 씨는 교실에서 책을 읽었다. 아들이 하도 책을 좋아하자 어머니께서 스무 권짜리 한국문학전집을 사주셨다. ‘꺼삐딴리, 운수 좋은 날, 해방 전후, 백치 아다다’ 등 다시 읽고픈 작품들이다. 나도 어릴 때 제법 책을 읽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오빠가 빌려오는 책이 전부였다. 나도 만약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었다면 다른 내가 되어 있을까. 괜히 배도 아프고, 부럽기도 하고, 기분도 좋았다. 지나간 시절이지만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서울풀무질의 모습(좌)과 제주풀무질 세화리 바닷가(우) 그림이다.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4.3과 5.18 서가”

은종복 씨는 음치다. 음치면 어떤가, 부르는 대신 듣는 걸 즐기면 그만이지. 그는 음치답게 마구리빵으로 노래를 부른다. 70~80년대 저항문화를 상징하는 김민기의 ‘아침이슬’, ‘철망 앞에서’를 즐겨 불렀다. 김민기를 좋아하고 쇼팽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즐겨 가던 정독도서관에는 음악실이 있다. 음악실에선 신청곡을 엘피판으로 틀어주었다. 그는 직접 음악을 신청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신청한 곡도 즐겨 들었다. 책방엔 시디가 쌓여 있다. 그가 구매하거나 선물 받은 것들이다. 20년 전쯤, 김민기의 음반 1000장을 한정판 찍어낼 때 샀다면서 보여주었다. 암울한 시대의 모델 같은 표정과 목소리, 모처럼 김민기의 노래를 들어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 집에 와서도 유튜브를 찾아가며 들었다.

책방 한쪽에는 제주 4.3과 5.18 관련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4.3과 5.18 모두 국가 폭력에 의해서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는 것, 뒤에는 미국이라는 제국주의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5.18은 10여 년 전 광주민주화 보상이 통과되면서 알려지고 성역화되다시피 했고, 4.3은 훨씬 전인데 아직이다. 특별법 개정안이 나오면서 국가보상배상이 이뤄질 거라고 하지만, 아직 정명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5.18은 이미 정리 궤도에 진입하고 있는데, 4.3은……. 과연 해결되기는 할까.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 관련 책(정면)과 5⸱18 관련 책(좌)이 진열된 서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은 똥이다”

“책은 똥이다.” 

은종복 씨가 한 말이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지난날 똥은 먹거리를 일구는 거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흉물이 됐다. 그는 ‘인류가 가장 잘 발명한 건 수세식 화장실, 발명하지 말았어야 할 것도 수세식 화장실’이라고 했다. 수세식 화장실이 없을 땐 똥거름을 사용했고, 화학비료도 쓰지 않았다. 음식을 먹으면 찌꺼기는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으면 나오는 게 있다. 그게 책똥, 생각의 똥이다. 책은 삶의 거름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지혜와 힘을 얻는다. 꼭 문자로 된 것만 책은 아니다. 플라톤의 이데아설처럼 이데아기에 있는 자연계를 예술인들이 모사해서 나오는 게 그 당시 건축물이나 시였다.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 일부는 지금도 맞다고 여긴다. 플라톤의 이데아나 그리스도의 신을 절대적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인간을 초월한 그 어떤 신성이 있다고 확신한다. 너와 내가 주고받는 이야기, 구전, 기분, 바람, 하늘, 구름, 땅, 벌레 소리와 같은 자연 등등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에겐 책이다. 

“책방지기가 권하는 책 10권”

손님들은 대부분 직접 책을 고른다. 그러나 추천을 원하는 사람도 많다. 이곳에 있는 2,500여 권의 책은 은종복 씨가 고르고 골라서 갖다 놓은 책이다. 모두 추천하는 책인 셈이다. 그러므로 특정 책을 추천한다고 적어놓지 않는다. 한군데 적어놓은 게 있기는 하다. 몇 달 전 다녀간 간디 학교 학생이 추천한다며 적어놓은 것이다. 그래도 추천해달라고 하면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묻는다. 소주는 소주잔에 마셔야 한다. 내가 인문학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권할 순 없다. 대답에 따라 추천하는 책은 다르다. 다음은 그가 추천하는 열 권의 책이다.

1. 월든(헨리 데이빗 소로우 씀,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펴냄), 
2. 탈성장 개념어 사전(자코모 달리사 외 씀, 강이현 옮김, 그물코 펴냄), 
3. 바다, 우리가 사는 곳(핫핑크돌핀스 씀, 리리퍼블리셔 펴냄원), 
4. 정원가의 열두 달(카렐 차페크 씀, 배경린 옮김, 펜연필독약 펴냄), 
5. 탄소 사회의 종말(조효제 씀, 21세기북스 펴냄), 
6. 소로의 문장들(헨리 데이비드 소로 씀, 박명숙 엮고 옮김, 마음산책 펴냄), 
7. 흙(데이비드 몽고베리 씀, 이수영 옮김, 삼천리 펴냄), 
8. 2050거주불능지구(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씀, 김재경 옮김, 추수밭 펴냄), 
9.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김종철 씀, 녹색평론사 펴냄), 
10.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씀, 녹색평론사 펴냄). 

열 권 중 두 권이 서양 고전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한 손님이 책방에서 구매한 책을 읽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네책방이 살아야 마을이 산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손님들은 끊임없이 왔다. 2014년 11월부터 부분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며 도시의 많은 책방이 사라졌다. 그런데 동네책방은 오히려 늘어났다. 특히 제주도는 최근 5년 사이 50개 넘는 동네책방이 생겼다. 그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제주도는 완전 도서정가제다. 그가 서울에서 망한 이유 중 하나는 부분도서정가제 때문이다. 10% 싸지 않으면 서울에선 책을 사지 않는다. 두 번째는 바다, 오름, 돌담과 같은 제주만의 풍경이다. 이와 함께 책 한 권을 구매하는 행위 역시 하나의 풍경이다. 풍경을 누리는 동시에 자신도 또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이다. 책방을 염두에 두고 여행 오는 사람도 많다. 사회적기업인 제주착한여행사는 책방 지도도 만들었다. 셋째, 책방마다 저자 사인본 시, 그림책, 동시집, 무인책방, 인문학책 등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동네 아이들과 마을 이장이 책방지킴이인 곳도 있다. 독립출판물과 소품을 다루는 곳도 있다. 모두 한 풍경하는 곳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한 책방이다. 

지난 9월, 그림책방 노란우산 서광점이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다. 은종복 씨는 ‘전국동네책방네크워크’ 전자누리방에 이 사실을 알렸다. 130여 동네책방의 카카오톡 알림방이 들썩이며 모금을 시작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전국 동네책방, 출판사, 뜻을 함께하는 이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기적이 일어났다. 이틀 만에 5,000만 원 가까이 모인 것이다. 작은 책방을 지키려는 마음이 그림책방 노란우산 서광점을 살려냈다. 은종복 씨는 제주도 동네책방네트워크책방모임 대표이자 전국 동네책방네트워크 정책국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책방이 불에 타버렸을 때, 그림책방 노란우산 책방지기는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럿의 도움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되는 책방지기는 이제 더 많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동네책방을 지키려는 마음은 이토록 간절하다.

책방이 살아남으려면 지원이 없어도 꾸준히 모임을 해야 한다. 책방은 책도 팔지만, 마을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실제로 많은 책방이 책 읽기 모임과 작가와의 만남 등으로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관이나 관련 단체에서 지원받았을 때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꾸려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은종복 씨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 제주풀무질은 지원받는 모임은 가능한 한 하지 않는다. 자생력을 잃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답은 하나, 도서관과 학교도 완전도서정가제로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동네책방도 다른 사업체와 마찬가지로 경쟁해서 먹고 살라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동네책방이 적은 곳은 없다. 슬픈 일이다. 책방지기의 한숨에 땅이 꺼질 것 같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길에서 보는 책방이다. 입구는 돌아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평등, 평화 세상을 위해 오늘도 풀무질하는 제주풀무질은”

의식 없이 하루를 보내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눈을 뜨고 보면 햇볕이 있고, 고개를 돌려보면 그림자가 있습니다. 햇볕만으로도 그림자만으로도 살아갈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때론 비바람도 있어야 하겠지요. 아마도 이게 평등, 평화를 위한 세상이 아닐까요. 늦가을로 가는 시기, 제주풀무질로 나들이 한번 어떨까요? 가슴에 한 번 풀무질해 보세요. 탁 트인 곳에서 만나는 제주풀무질은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어줄 겁니다. 영업부장 광복이도 만날 수 있습니다. 아, 벌써 광복이가 그립습니다. 

찾아가는 길: 제주시 구좌읍 세화합전2길 10-2 
영업시간: 목~화요일 오전 11:00~18:00(수요일 휴무)
인스타: www.instagram.com/jejupulmujil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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