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옛 게시장 비석 보며 떠올리는 제주 하르방들
[기고] 옛 게시장 비석 보며 떠올리는 제주 하르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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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근 두가시한라봉 농장(식물연구가)
사진=오충근.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상효2동에 위치한 옛 게시장(揭示場) 비석. 사진=오충근. ⓒ제주의소리

친구와 서귀포 상효2동 한 구석에 자리잡은 옛 게시장을 찾았다. 친구는 목수다. 게시장을 다시 카메라로 찍고 ‘게시장(揭示場)’이 쓰여 있는 부분을 뭐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몰라, 임댕이(이마) 아니카?” 그러면서 비석이라든지 뭐가 없어진 것 같다고 말을 한다. 나도 그랬다. 어릴 때는 모르는 단어가 있어 읽지를 못했다. 문패를 모르니 무슨 상이 없어진 줄 알았다. 지붕이 있어 더 그랬다. 오가면서 볼 때마다 속에 있던 내용이 궁금했었다.

지붕을 보았다. 낯선 모습, 평소에 볼 수 없는 경관, 기와지붕 같은 형태가 눈앞에 있다. 얼마나 어렵게 만들었을까. 이런 지붕은 전통 한옥의 팔작 기와지붕 모양을 축소하여 만든 것이라는데, 육지에서는 비석의 지붕돌로 이렇게 만들어 올린다고 하는데, 어찌 촌 하르방이 팔작 기와지붕을 알까. 그때도 선진지 견학을 다녔을까? 

이곳은 비석을 만드는 돌이 나오는 곳이다. 걸세오름과 내(川)가 만나는 곳에 산지가 있다. 꽤 오래전에 비석 만드는 분을 만났었다. 그분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까?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돌을 통째로 파서 지붕을 만들었다. 쌍봉사 무슨 탑이 생각났다. 용마루 내림마루 귀마루 기왓꼴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쌍봉사 비를 볼 때보다 더 무엇인가 차오른다.

揭示場(게시장)이라 쓰여 있다. 알리는 글을 적어 두는 곳이다. 누가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알리는 것일까? 정부가 운영하는 마을 스피커는 아닌 듯하다. 한글이었을까, 한문이었을까, 일본어였을까. 그 당시 문맹자가 80%쯤 된다고 하는데 다른 마을과 달리 상효는 글로 소통했다. 종이와 붓이 있어야 했고 일목요연하게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웬만한 글은 읽는 분이 많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읽지 못하는데 광고가 무슨 소용인가. 찾아보니 게시장을 (임댕이에) 쓴 유물은 다른 곳에는 없다.

사진=오충근. ⓒ제주의소리
게시장 윗 부분. 사진=오충근. ⓒ제주의소리
성읍2리 게시장 비석. 사진=오충근. ⓒ제주의소리
성읍2리 게시장 비석. 사진=오충근. ⓒ제주의소리
현재 게시장. 사진=오충근. ⓒ제주의소리
현재 게시장. 사진=오충근. ⓒ제주의소리

종이는 생산했다 전한다. 닥밧, 닥돌레는 닥나무와 연관 있는 지명이다. 닥나무가 있어야 종이를 만든다. 닥나무는 물과 인연 있은 곳에서 길렀다고 한다. 화목도 넉넉했어야 했다.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 물이 많이 들었다. 종이는 어떤 크기였을까, 만들 때 종이 틀이 지게문 넓이와 같다고 들었다. 저 게시장 크기도 그와 같을까. 아무래도 저 게시장과 연관이 있을 것만 같다. 성읍2리에도 있는데 크기가 비슷하다.

오른쪽 벽에 만든 날을 썼다. 연도는 지워져 있다. 아마 왜정 시대의 연호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지우지 않았으면 더 좋을 듯했다. 그때는 왜정 시대다. 왜정 시대를 지운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마을 회의를 하고 지웠을 것이다. 회의 안내문은 어떻게 알렸을까, 재촉 글도 저 게시장에 붙였겠지.

오충근

왼쪽 벽에는 상효리가 쓰여 있다. 옛날의 지명이다. 지금은 상효2동(동상효)라 부른다. 상효는 원래 이곳인 것이다. 글씨는 참 단정하다. 누가 썼을까? 부분 부분이 영천봉, 칡오름 굽이처럼 생긴 글씨다. 하르부지가 쓴 비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게시장은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옮겼다고 한다. 아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서 있었을 것이다. 성읍2리는 큰 팽나무 아래에 서 있다.

대궐집 같은 게시장, 민예를 생각한다. 이것을 만든 상효리의 문화와 하르방들의 노고를 떠올린다. 우리 동네 하르방은 가릉빈가 정도는 만들어 세울 것만 같다. / 오충근 두가시한라봉 농장(식물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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