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6차산업人] (34) 안덕 광평리 농업공동체 ‘한라산아래첫마을’ 강상욱 총무이사

제주 농업농촌을 중심으로 한 1차산업 현장과 2·3차산업의 융합을 통한 제주6차산업은 지역경제의 새로운 대안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창의와 혁신으로 무장해 변화를 이뤄내고 있는 제주의 농촌융복합 기업가들은 척박한 환경의 지역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인 제주(Made in Jeju)’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주역들입니다. 아직은 영세한 제주6차산업 생태계가 튼튼히 뿌리 내릴수 있도록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기획연재로 전합니다. [편집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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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아래첫마을’ 강상욱 총무이사는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를 마을공동체가 살아 숨쉬는 행복한 마을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걱정을 희망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는 광평마을이 있다. 제주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라고 불릴 만큼 높은 해발 500m 고지에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소금을 뿌린듯이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강원도 봉평의 메밀밭도 서귀포 광평 마을을 휘감은 하얀 포말같은 평화로운 메밀밭의 너른 서정을 마주하면 절로 발길을 멈출 곳이다.  

소설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강원도 봉평이 국내를 대표하는 메밀 주산지로 오인하는 경우가 왕왕 잦다. 그런데 메밀 재배량으로는 제주가 으뜸이다. 제주메밀 재배 규모는 1107ha·974톤(2019년 기준) 수준으로 전국 대비 재배면적은 47.5%, 생산량은 36.0%를 차지한다. 토질을 가리지 않는 메밀은 제주 산간이 최적지인 셈이다. 

제주에서도 해발 500m 고지에 터를 잡은 광평마을. 스물한 세대만 모여 살 정도로 조용한 그곳에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등 변화의 바람은 메밀에서 시작됐다. 워낙 작은 마을이어서 고령화가 심각해지면 자칫 마을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희망으로 바꾼 것은 메밀을 핵심 콘텐츠로 하는 ‘한라산아래첫마을 영농조합법인’ 법인을 출범시키면서다.

1948년 피의 광풍이 불어닥친 4.3으로 인해 사라졌다가 1963년 다시 형성된 아픔을 지니기도 한 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는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작지만 알찬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6차산업을 통한 행복한 마을공동체를 꾸려 가고 있다. 

법인은 지난 11일 농업인의 날에 제주메밀을 이용한 생산과 가공, 유통, 서비스 등 6차 산업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통가공 부문 제주도 농업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민들이 생산한 메밀을 정성껏 가공해 제품을 만들고 메밀을 통한 체험 프로그램과 축제를 열어 즐거움을 공유하는 제주6차산업 인증업체 ‘한라산아래첫마을’ 강상욱 총무이사를 [제주의소리]가 만나봤다.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메밀밭 전경.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2018년 '제주메밀에 혹하다', 2019년 '제주메밀의 모든것' 등 메밀 축제를 열어온 한라산아래첫마을은 '꽃'에 집중하기 보단 메밀 자체와 제주를 중심으로 한 축제를 만들었다.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어르신들이 많은 마을이니 곧 사라질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마을을 살리고 함께 살아갈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각자 밭의 일부를 모아 메밀을 재배하고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결과 떠들썩한 마을이 됐습니다.”

2013년 가을날, 광평리 젊은이들은 80대 어르신들이 많은 마을 특성상 훗날에는 고향이 사라질 수 있다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마땅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내놓은 대책은 6차산업을 바탕으로 한 메밀 산업이었다.

메밀 생산만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에 처음엔 주민 모두가 반신반의하며 반대 의견을 내놨지만, 그들은 제조 공장과 판매장을 만들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꾸준히 설득했다.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한번 해보자는 모두의 바람이 점차 생겨났고 출자금과 메밀을 키울 밭을 모아 기초를 형성, 노인회장이 제안한 ‘한라산아래첫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법인을 만들어냈다. 

법인을 만드는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출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이 필요했지만, 사업체나 법인이 없어 쉽지 않았던 것. 주민들은 자신의 땅을 담보로 내놔 대출을 진행한 뒤 자금을 모았고 광평리를 위한 모두의 노력에 힘을 보탰다. 

법인 설립 이후에도 메밀 원물과 공장에서 생산한 가공품을 판매하기 위한 고난의 행군은 이어졌다. 넘치는 열정으로 우수한 품질의 제품들을 만들어냈지만, 그 판로를 뚫는 일은 고된 일이었다.

강원도 봉평과 중국산 메밀이 시장을 장악한 상태에서 천혜의 자연 속에서 키운 제주 메밀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국내산 메밀을 사용하는 식당을 직접 공략하기 시작한 결과 수도권 식당에 메밀가루와 쌀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2019년 '제주메밀의 모든 것'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메밀 축제에서 직접 메밀을 빻고 있는 어린이 체험객.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한라산아래첫마을은 코로나19 이전 메밀 축제를 개최해왔다. 축제는 메밀과 제주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사진은 메밀 껍질로 가득찬 '메밀풀장'.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다른 어느 곳보다 제주의 메밀은 품질이 뛰어나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판매망을 다변화한 것이 먹혀든 것. 청정 제주의 이미지와 함께 한라산 아래 첫 마을이라는 브랜드는 전국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매장에 제주산 메밀 제품을 납품하는 등 소비자를 직접 찾아가는 동시에 메밀을 식재료로 하는 식당과 카페를 광평리에 만들어 찾아오도록 했다. 

또 2018년 10월에는 조근대비악 메밀꽃트레킹, 오븐없이 메밀쿠키 만들기, 메밀향초·베개·국수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과 함께 설촌 이래 처음이자 최대 인파가 몰린 ‘제주메밀에 혹하다’라는 축제를 열기도 했다.

강상욱 총무이사는 “메밀축제를 통해 제주메밀의 문화를 선보이고 싶어 다양한 메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한 축제를 기획했다”며 “메밀풀장에서 아이들이 메밀을 만져보며 체험하는 등 꽃이 중심이 아닌 메밀 자체가 중심인 축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뒤로는 웅장한 한라산이 위용을 뽐내며 서 있고 앞으로는 아름다운 제주 바다의 풍광이 펼쳐진 마을에서 진행한 축제는 마을을 알림과 동시에 활력을 가져다줬다. 당시 주민들은 방문객이 바글바글한 마을을 보고 걱정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었다. 

강 총무이사는 “농사만 짓던 순박한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은 덕분에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며 “평생 농사만 지어오던 주민들은 식당과 공장에서 일하게 되니 첫 직장을 구했다며 농담도 했다”고 웃어보였다. 

모두의 노력 덕분에 2017년 4월 농산물우수관리 GAP 인증과 9월 6차산업 인증을 받고 올해는 제주도 농업인상 ‘유통가공’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한라산아래첫마을 옆 해질 무렵의 조근대비 오름의 풍경. 한라산아래첫마을은 코로나 이전 조근대비악 메밀꽃트레킹 체험을 열기도 했다.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2019년 제주메밀의 모든 것을 주제로 한 축제에서 진행된 공연. 이처럼 메밀 축제에서 제주의 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공연이 마련됐다. 사진=한라산아래첫마을. ⓒ제주의소리

노력 끝에 성장한 법인은 마을에서만 생산하는 메밀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안덕면을 중심으로 메밀을 수매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내년에는 제2공장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소비자와 많이 만나기 위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또 코로나19 여파로 개최하지 못하고 있는 메밀 축제를 다시 열어 제주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더불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무장애 축제를 기획할 예정이다.

6차산업에 대해 물으니 “6차산업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근간이 되는 1차산업이다”라며 “1차산업이 무너지면 결국 6차산업도 세워질 수 없다. 농업이 탄탄한 기반을 세운 뒤 소비자를 만나는 방식이 됐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강 총무이사는 “마을에 어르신들이 많으니 농기계를 공유하고 공동 농업창고를 세우는 등 농업공동체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다”라면서 “우리 마을을 찾아주시는 분들께도 광평리가 고향 같은 편안한 쉼의 공간이 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농업공동체를 만들어 모두가 함께 사는 마을을 만들고, 고향 같은 편안함을 선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싶다”며 “다양한 인프라를 마련해 젊은이들이 마을에 들어와 창의적인 가치를 만들 수 있는 마을이 됐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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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아래첫마을은 귀한 메밀 꿀을 비롯해 메밀술, 메밀차, 메밀과자, 메밀쌀, 메밀가루 등 다양한 메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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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안덕면 광평리 '한라산아래첫마을' 영농조합법인 식당, 카페 전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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