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 가마귀 몹쓴다
동춘 가마귀 몹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길웅의 借古述今] (249) 동촌 까마귀 독하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동춘 : 동촌(東村), 동쪽에 있는 마을, 여기서는 제주시를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마을을 가리킨다. 제주방언에 이와 유사한 음운조직으로 된 말이 ‘삼춘’이다. 삼촌을 ‘삼춘’이라 하듯 동촌을 ‘동춘’이라 한 것이다. 예전 흔히 쓰였는데, 요즘에 쓰임이 많이 드물어졌다.
* 가마귀 : 까마귀
* 몹쓴다 : 독하다, 사납다, 거칠다

‘동춘 가마귀 몹쓴다’는 까마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바람 센 날이면 앙칼지게 우는 까마귀에 동촌 사람들의 혹독한 생활력을 빗댄 것이다. 참 감각적인 비유가 아닌가. 사진=픽사베이.
‘동춘 가마귀 몹쓴다’는 까마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바람 센 날이면 앙칼지게 우는 까마귀에 동촌 사람들의 혹독한 생활력을 빗댄 것이다. 참 감각적인 비유가 아닌가. 사진=픽사베이.

동촌이라 함은 한라산 북쪽, 그러니까 산북(山北)의 동쪽에 자리 잡은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주시를 중심으로 동쪽은 ‘동촌’, 서쪽은 ‘서촌’이라 일컫는다. 산남(山南)은 일반적으로 동·서 구분을 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동촌으로 불려 온 곳이 조천읍과 구좌읍이다. 애초 굳이 동촌이라 부른 데는 지역의 자연환경에 기인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조천과 구좌 두 지역은 토질이 몹시 좋지 않았다. 제주 섬 전체가 화산회토이긴 하나 특히 이 두 곳 토양이 좋지 않았다. 배수성이 강해 사토(沙土) 같아 점성(粘性)이 모자라므로 조금만 가물어도 흙이 푸석푸석했다. 한마디로 박토다. 농사가 잘될 리가 없다.

보리나 조 농사가 잘되지 않았다는 건 밭의 면적에 비해 수확량이 턱없이 적었다는 말이다. 한데 나는 구좌에서 출생해 조천이 처가 마을이라 또 두 지역에도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 걸 몸으로 느낀 바 있다. 쉽게 얘기해 보리쌀 하나만 견주어도, 조천산은 알이 통통한데 구좌산은 주갈주갈(알맹이는 비쩍 말라붙고 껍데기가 큰 모양)했다. 밥을 지어도 양(量)만이 아니라, 조천의 보리쌀은 ‘쌀’이었다. 단순비교가 아니라 실질적인 비교이다.

농사가 잘 안되면 사람들은 고픈 배를 채울 궁리를 해야 한다. 대부분 농번기에까지 바다로 나가 물질을 했다. 혹한의 날씨에도 바다에 몸을 던졌다. 미역을 캐고 소라 전복만 따지 않고, 강풍에 밀려오는 듬북이며 감태를 건져 거름하고 수익을 얻었다. 구좌 사람들은 이에 더해 여인이 마차를 끌기까지 했다. 식구들 먹이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누구에게 기댈 것인가. 뼈가 다 부서지게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됐던 것이다.

거세고 거칠 수밖에 없다. 독하고 사나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춘 가마귀 몹쓴다’는 까마귀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바람 센 날이면 앙칼지게 우는 까마귀에 동촌 사람들의 혹독한 생활력을 빗댄 것이다. 참 감각적인 비유가 아닌가. 제주인들, 그 가운데도 특히 구좌·조천 사람들의 강인함은 알아주어야 한다. 모질고 야멸쳤다. ‘몹쓴다’를 ‘사납다’로 읽어도 그냥 웃으며 허허실실 받아들이리라.

이와 유사한 말도 많이 입에 오르내렸다.

‘동춘 가마귀 눈도 벌겅 코도 벌겅.’

살아보려고 일하는 사람은 일에 덤벼든다는 말이다. 일에 부사리(달려들어 습관적으로 뿔로 받는 소) 달려들다 보면 눈만 붉힐까, 코도 벌걸 수밖에.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