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35) 남원읍 신흥리 키라네 책부엌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고봉선 작가가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글]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 하얀 구름과 귤빛이 어우러진 제주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최고의 계절이다. 그 설렘을 안고 샛노란 귤밭에 동그마니 숨어 있는 책방 “키라네 책부엌”을 찾았다. 키라는 책방지기 이금영 씨가 사용하던 영어 이름이다. 깊은 산 속 새소리처럼 통통 튀어 오르는 키라 님의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는 날이다. 앉으니 영영 일어서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입구에 세워진 우체통의 화살표를 눈여겨봐야 책방을 찾을 수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말은 씨가 되어”

인연인지 운명인지 참 묘하다. 그가 운영하는 책방은 여행에서 만난 언니의 집을 지켜주기 위해 임시 머무르던 집이다. 여기엔 기막힌 스토리가 있다. 

키라 씨는 제주도를 썩 선호하지 않았었다. 진짜 제주다운 걸 못 봤기 때문이다. 관광객으로 왔던 그는 관광지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던 그 기억이 싫었다. 제주에서 살겠다는 로망보다는 나이 들면 동남아에서 살고 싶었다. 발리랑 치앙마이에서 이미 살아도 봤다. 그런데 인연이란 녀석은 한마디로 참 웃겼다. 

7년 전, 키라 씨는 1박 2일 여행 중 한림에서 지금 책방에 살던 언니를 만났다. 차를 마시는데 이야기가 잘 통했다. 하지만 그뿐, ‘아, 좋은 사람이다.’ 생각하며 헤어졌다. 그 후 페북을 통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정도였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때 키라 씨는 산티아고 순례길과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을 다녀온 뒤였다. 그걸 페북에서 본 언니는 3개월 정도 유럽에 갈 예정이라면서 정보를 좀 달라고 했다. 옛날 집인 데다가 반려동물도 있는데 3개월이라니, 키라 씨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을 봐주기로 했던 사람이 취소했다며 큰일이라고 했다. 키라 씨는 농담조로 “내가 갈까?” 하고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렇게 뿌려진 말은 작크의 콩나무보다 더 빨리 싹트고 자랐다. 

다음 날 키라 씨는 연차를 몰아서 제주로 왔다. 언니는 육지로 출타 중이고, 이웃분이 안내해주셨다.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집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형체가 보였다. 설마, 했는데 그 집이었다. 그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도 모를 것 같은 집이 널따란 귤밭 안에 동그마니 숨어 있다. 열쇠인 양 걸쳐진 나뭇가지를 젖히고 문을 열었다. 고양이 혼자 있었다. 깜깜한 집은 무서우면서도 편안했다. 정말 시골집이라서 못 살 수도 있으니, 일주일을 살아본 뒤 결정하라고 언니는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새소리는 이곳이 유토피아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텃밭으로 달려가자 상추며 고수 등이 널려 있다.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구웠다. 그리고 텃밭에서 딴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눈물이 나왔다.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다. 겨우 하룻밤을 잤을 뿐인데, 3개월 동안 자신이 이 집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골목이 꽤 길다. 멀리 보이는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이 책방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나는 육짓것”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키라 씨는 서울로 가서 회사를 정리했다.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곳, 그래도 내려오는 길은 행복했다. 

알음알음 인연이 생기면서 제주에서 살겠다는 생각이 굳혀졌다. 그런데 집주인 할머니께선 인사해도 쌩, 찬바람을 일으키며 가버렸다. 육짓것이라는 이유다. 그래도 키라 씨는 주인 할머니가 밭에 올 때마다 시원한 물, 주스, 수박 등을 갖다 드리며 꼬박꼬박 인사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께선 호박을 툭 던져두고 가는 등 먹을거리를 하나씩 집 앞에 놓고 갔다. 마음을 여신 것이다. 이제 할머니가 아니라 삼춘이 되었다.
 
3개월이 지나고, 집주인이 돌아왔다. 키라 씨도 자신이 살 집을 따로 구했다. 하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면서도 너무 달랐다. 말도 못 알아듣겠고, 외국이나 다름없었다. 뭘 해 먹고 사나, 1년을 겪어봐야 감이 잡힐 것 같았다. 키라 씨는 상인들의 귤을 따러 다니는 팀에 들어갔다. 주인 삼춘 덕분이었다. 삼춘은 키라 씨를 딸처럼 데리고 다녔다.
 
귤 따러 가던 첫날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 5시에 도시락을 준비하고, 트럭에 탔다. 그때의 반응, ‘쟤는 뭐?’ 육짓것인 데다가 젊었다. 60~80세 할머니들의 눈엔 그야말로 동물원 원숭이인 듯 신기한 대상이었다. 뭐라고 말을 하지만 알아들을 수도 없다. ‘아, 이게 외국인 노동자의 심정이구나.’ 키라 씨는 그때 처음 이방인의 마음을 경험했다.

더러는 이어폰을 끼고 있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그러다가 들리는 말이 있으면 틈을 비집고 들었다. “‘고랐어’가 뭐에요? ‘영장 났다’는 뭐예요? ‘생기리’는 뭔데요?” 계속 여쭈자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손녀딸을 대하듯 할머니들이 친근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귤 따러 다니면서 키라 씨는 사투리를 배웠다. 리스닝이 되면서 이제 통역도 자신 있다. 하지만 스피킹은 아직도 어색하다. 이어서 관혼상제 때 이웃과의 관계, 친척들과 가족과의 관계 등을 차례로 배웠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보일 듯 말 듯, 그야말로 호젓한 곳에 숨어 있는 책방이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 속에서 길을 찾다”

1년 동안 제주 사투리, 관혼상제, 음식 문화를 다 배웠다. 그러나 귤 따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귤 따는 건 용돈 벌이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아직은 젊었다.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주변은 모두 귤밭, 회사라곤 없었다. 다시 육지로 가야 하나, 암담했다. 

찾을 수 없는 답, 스트레스를 받거나 고민이 있을 때 키라 씨는 책을 몰아서 읽는 습관이 있다. 제남도서관과 표선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고, 백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귤 따러 가서는 점심시간에도, 귤을 따고 온 밤에도 주야장천 책만 읽었다. 인연이었을까, 책방이 많지 않던 때였다. 어느 날 키라 씨는 동네책방에 관한 책을 잔뜩 빌려왔다. 그 책을 읽으며 자신이 사는 마을에도 작은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키라 씨는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다르다. 키라 씨는 여행, 음식 관련 소설이나 에세이, 영화감상이 힐링하는 방법이다. 자연스레 음식과 관련된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책방이라니, 두 생각이 내면에서 다퉜다. 공교롭게도 때맞춰 이 집에 살던 언니가 이사 갔다. 기막힌 타이밍이다. 그래도 키라 씨는 이 집에서 책방을 하리라고 생각 못 했다. 집이 먼저 키라 씨에게 다가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앞 과수원 돌담 따라 늘어선 치자나무에서 치자가 익어가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을 해야겠다”

귤 따러 다니던 어느 날, 무심코 걷고 있는데 이 집이 확 눈에 들어왔다. 불현듯 ‘이 집에서 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 삼춘께 집을 빌려달라고 했다. 사는 집이 있는데 또 빌려달라니, 뭐 할 거냐고 물었다. 모르겠다, 무조건 빌려달라고 했다. 알아서 하라며 빌려주셨다. 

‘음식과 관련된 일이 꼭 식당이나 카페만은 아니잖은가, 책방일 수도 있잖아.’

키라 씨 머리에 환한 불이 켜졌다.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레시피 책방이나 요리책방은 한둘 있었지만, 음식 이야기 책방은 없었다. 2018년 12월, 키라 씨는 음식 이야기를 큐레이션 하는 책방으로 컨셉을 잡았다. 

큰 주제는 잡혔다. 이제 카테고리를 넣어야 했다. 동네책방 이야기를 읽으며 책으로 먹고살 수 없다는 건 이미 배웠다. 첫 번째 카테고리는 자신이 치유 받았던 음식 관련 소설과 에세이로 정했다. 두 번째 카테고리는 작은 소품이다. 책방을 하기 전, 그는 홋카이도로 한달살이 여행을 갔었다. 거기 일본 가족들과 지내면서 보니 작으면서도 요긴한 것들이 많았다. 한국에도 이런 것들이 있으면 싶었다. 세 번째는 정직한 생산자가 만든 건강한 식자재다. 포도로 만든 식초인 발사믹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온다. 굳이 외국에서 들여오지 않아도 귤로 만든 발사믹 식초가 제주도에도 있다. 그런데 모르고 있다. 프랑스 농부가 한국에 와서 직접 사과 농사를 지어 만든 와인도 있다. 그렇게 책 속에서 길을 찾는 그와 함께 책방도 어느덧 4년 차를 바라보게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전면. 건물 오른쪽에는 토종 유자가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 음식에 반하다”

‘아, 고사리 철이구나’, ‘호박잎을 먹을 때구나.’ 키라 씨는 할머니들의 도시락에서 제주의 사계절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양하는 독특했다. 생강도 아닌 것이 양파도 아닌 것이 씹히지도 않았고, 씹었다 해도 넘어가지 않았다. 할머니들께서 먹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5월엔 양하죽을 꺾어 된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콩국, 성게미역국, 토란메밀국, 메밀범벅, 우미, 쉰다리 등 사 먹을 수 없는 제주도 음식을 먹어봤고 또 배웠다. 날된장 베이스가 많은 제주도 음식, 된장 지리도 아무 데서나 먹어볼 수 없는 맛이었다. 고사리 반찬도 육지와는 맛 자체가 달랐다. 제주도 음식은 가릴 것도 없이 모두 맛있었다. 그는 이미 제주 사람이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지름떡이다. 한 할머니께서 제사 다음 날 따끈하게 지진 지름떡에 설탕을 솔솔 뿌려서 가지고 오셨다. 그 지름떡을 귤 따러 가는 트럭의 적재함에서 나눠 먹을 때, 오소소 몸이 떨릴 만큼 행복했다. 감히 누구나 할 수 없는 체험, 그의 체험은 키라네 책부엌에서 가장 빛나는 책이었다. 

“잘나가던 특목고 입시 강사”

간혹 어떻게 이런 책방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어오는 손님이 있다. 하지만 이건 본인의 능력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서울에선 정말 이기적이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고, 회사 사람 말고는 개인적으로 엮일 일도 없었다. 성공조차도 본인이 잘 나서라고 생각했지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키라 씨는 대치동과 목동에서 과학고나 영재학교 아이들에게 화학을 가르치던 특목고 입시 강사였다. 교육기업에 다니던 그는 나이 많은 직원들을 제치고 나이 서른에 원장 타이틀을 다는 등 승진도 빨리했다. 이 또한 본인이 잘 나서 그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제주에 와 살면서 그건 오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건 주변 도움의 연결이었다. 오픈할 때만 해도 책을 어떻게 가져와야 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쿠킹 클래스에서 우연히 출판사 대표를 만났다. 얘기 끝에 사정을 얘기했더니 연결해 주셨다. 인테리어도 해야 하는데 주변엔 농사짓는 사람뿐이다. 아는 분께 목수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다음날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식자재도 주변에서 연결해 주었다. 신기할 정도다. 모두 주변 덕분이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이곳에 있는 책들은 구매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백 퍼센트 사전 예약제”

키라네 책부엌은 백 퍼센트 사전 예약제다. 처음 일 년은 어떤 나이대의 어떤 손님이 어떻게, 어떤 책을 찾는지 등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키라 씨는 할머니들을 따라 귤 따러 갔던 것처럼 똑같이 한 사이클을 지켜봤다. 이곳은 외진 곳이라 마음먹지 않으면 찾아오기 힘들다. 같이 귤 따던 할머니들은 밥은 먹고 살겠냐고, 왜 거기다 책방을 하느냐고 말렸다. 차라리 식당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어쩌랴, 좋아했고 또 하고 싶은 일인 것을!

키라 씨는 뼈를 갈며 이 집을 수리하고, 이것저것도 만들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보일러도 시멘트도 목수와 함께 깔고 발랐다. 인스타와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어찌어찌하다가 SBS에서 촬영도 하고 잡지에도 책방 소개가 나갔다. 그래서인지 알음알음 손님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충격이었다. 책을 사지 않아도 좋았다. 최소한 어떤 책이 있는지라도 봐줘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대포로 사진만 찍고 떠났다. 키라 씨에겐 상처였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한 명도 안 오는 날도 있었다. 이웃과 밥 먹으러 간 사이에 손님이 올 때도 있었다. 효율성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키라 씨는 서울에서나 제주에서나 예약하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식당 문은 열었는지, 몇 시까지 하는지 확인 후 예약하고 가면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다.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을 손님한테도 전달해주고 싶었다. 사진만 찍고 휑, 떠나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이곳, 손님이 뭔가 하나라도 누리고 느낄 수 있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예약제를 떠올리게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판매되는 작은 소품들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지적 재산권”

처음엔 전화로 예약 받았다. 예약, 설렜다. 일찌감치 책방에 나와 겨울엔 보일러를 틀고, 여름엔 에어컨을 틀어 놓았다. 뒤뜰에서 로즈마리를 따다가 향도 채웠다. 비 오는 날엔 수건도 준비해 놓았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예약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안 닿다가 1시간 후에야 출발하겠다는 손님, 때로는 연락 두절 등 예상치 못했던 노쇼가 나타났다. 처음엔 차도 한 잔씩 드렸다. 그랬더니 한두 번 봤다고 지인들을 데리고 와서는 차만 마시고 가기도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입장료와 함께 네이버로 사전 예약을 받고, 이웃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해서 마실 수 있도록 했다. 멍을 때리든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뒹굴뒹굴하든 적어도 1시간은 누림을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주변에선 책방이 무슨 예약제고 입장료냐면서 걱정했다. 손님이 더 줄까 봐서였다. 키라 씨 역시 다른 곳에 가면 손님이다. 그런데 간혹 사람이 많아서 책조차 꺼내기 힘들 때도 있었다. 자신의 공간만큼은 여유롭게 책 읽고 공간도 누리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예 1시간 단위로 예약제를 시스템화했다. 

그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다. 단 한 시간이라도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책방으로 컨셉을 잡았는데, 다른 팀이 있으면 소용없다. 이제 한 명이 오면 한 명, 일행이 네 명이면 네 명까지 오직 1시간에 한 팀이다. 마스크는 책방지기만 쓰고, 팀원들끼리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 점차 손님들의 만족도는 높아졌고, 사진만 찍고 가는 손님도 걸러졌다.

사전 예약제에 입장료, 이 공간을 누리고자 온 손님들은 가끔 책이 팔리냐고 묻는다. 얼마나 팔릴까마는, 그래도 주문 횟수는 많아졌다. 책을 한 권이라도 구매하고 가는 손님도 늘었다. 몇몇 손님으로 책방을 포기할 수는 없다. 좋은 공간에서 좋아하는 일, 오래 하고 싶다. 어찌 보면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이는 나를 지킴이었다. 나를 지켜야 다음도 있다.
 
제주도의 동네책방은 여행 전문, 독립출판물, 인문학, 동시집, 음식 관련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로 책방지기가 큐레이션 한 책방이다. 책을 추천받거나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하나의 장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책방을 교보문고, 도서관과 동일시하는 손님들이 많다. 사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인터넷으로 사기 위해 사진만 찍고 가기도 한다. 이는 엄연히 지적 재산권 침해다. 책방지기가 직접 읽고 큐레이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네책방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는 책, 이 모든 게 책방지기들의 아이디어이자 노력이다. 반드시 정립되어야 할 부분이었다.

“신선한 충격”

네이버 예약제로 시작했을 때 처음 왔던 손님을 키라 씨는 잊을 수 없다. 손님이 올지 안 올지는 그조차 기연가미연가했다. 그런데 오셨다. 책방을 잠시 둘러본 손님은 두 권의 책을 고르더니 계산해 달라고 했다. 여태까지와는 전혀 달랐던 상황, 당황한 키라 씨는 놀라자빠질 뻔했다.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진을 찍거나 그 자리에서 한 권을 읽고 가는 손님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손님은 책을 구매한 뒤 읽으려고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석을 놓고 감동해야 하는 상황,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키라 씨는 이 웃픈 사연을 블로그에 올렸다.

책방을 운영하지만 키라 씨도 다른 책방에 가면 정가로 책을 사서 나온다. 하다못해 엽서라도 한 장 사서 나온다. 계산기를 두드리면 거래하는 곳에서 더 싸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책방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이 되고 보니 이런 공간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고생하면서 유지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러 동네책방을 이용한다. 책방을 살리는 데 작은 힘을 주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효과는 확실했다. 한 손님은 키라 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뜨끔했다고 했다. ‘책방에 몹쓸 짓을 하고 다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책을 좋아한다는 그 손님은 동네책방을 다니면서도 항상 구경만 했다고 했다. 책방이 잘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손님은 책방에 가면 꼭 한 권씩은 산다고 말씀하셨다. 다행이었다.

처음엔 입장료가 5천 원이었다. 책방 유지가 힘들었다. 하루에 세 팀, 한 팀에 한 명만 올 수도 있다. 손님이 책을 구매한다는 보장도 없다. 예약을 파기할 수도 있다. 이럴 땐 잘해야 하루 만오천 원 벌이다. 고민 끝에 만 원으로 올렸다. 다행히 가격 저항은 없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난다는 것, 잘못하는 것 같아 고민도 된다. 그러나 과감히 벗어던졌다. 그는 지금도 책 속에서 더 나은 길을 찾는 중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음식 관련 이야기책들과 식자재들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텃세라니”

간혹 텃세는 안 부리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키라 씨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다. 그도 처음엔 육짓것이었다. 이미 여기에 사는 사람들, 이들은 새로 온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설령 육짓것이 아니라 해도 궁금의 눈초리가 섞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주민은 원주민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텃세를 부린다고 한다. 

키라 씨 이웃엔 대기업에 다니다가 고향에 와서 귤 농사를 짓는 아저씨가 한 분 계시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유튜브의 한 채널에서 봤다. 귀농했는데 제주도 사람들이 왜 이렇게 텃세를 부리느냐고 하더라. 조회 수가 엄청나다. 텃세? 나는 서울에서 그들 속으로 스며들기 위해 서울말을 배우고 문화도 익히는 등 노력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육짓것들은 누리려고만 한다. 심지어 군림하려는 이도 있다. 말도 문화도 배울 생각은 않고, 텃세만 부린다고 한다.” 동네 아저씨의 그 이야기를 들으며 키라 씨는 울컥했다. 공감 백배였기 때문이다.

관광객의 시선과 도민으로서 보는 시선은 다르다. 관광객으로 왔을 때 키라 씨는 유명한 카페 옆을 지나다가 어느 집 앞에 “XX 카페 손님 주차 금지”라고 붙여진 글을 보았다. 그때 그는 ‘손님이 차 좀 댄다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며 야박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알겠다. ‘오죽하면 저런 걸 붙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페 사장의 태도가 보이는 것이다. 책방 근처에도 카페가 있다. 길을 가득 메운 자동차들, 귤 트럭조차 다니기 힘들다. 카페가 유명해지며 생기는 주차 문제로 동네 삼춘들과의 갈등이 깊어진다. 키라 씨 역시 이주민이다 보니 그에게도 매일 컴플레인이다. 억울하다. 다행히 근처 몇몇 삼춘을 알고 지내며 지금은 괜찮아졌다. 키라 씨가 주차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는 방문 전부터 알 수 있었다. 방문이 약속되었을 때, 그는 주소며 주차해야 할 자리까지 소상하게 표시한 사진을 보내왔다. 손님이 오면 키라 씨는 직접 주차를 안내하기도 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앞 과수원엔 귤이 노랗다 못해 벌겋게 익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앞집 삼춘”

처음 제주에 왔을 때 그는 텃밭을 로망 했다. 당연히 오일장에 가면 보이는 대로 모종을 샀다. 그러나 모종은 무조건 심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여기에도 요령이 있었다. 

“모종 사 올까요?”

“아니, 아직 너무 일러.” 

“오일장에 모종 많던데요.” 

“사지 마. 좀 더 기다려.”

동네 삼춘들과 키라 씨 사이에 오가는 대화다. 동네 삼춘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일러주시면서 보리콩(완두콩), 두불콩(강낭콩), 깨도 같이 심고 같이 거둔다.

주인 삼춘하고 어디 가면 삼춘은 항상 키라 씨를 육지 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앞집 삼춘과는 별로 친분이 없었다. 작년 어느 날, 앞집 삼춘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 동네 분들께는 영장 났다고 전달되었지만 키라 씨에겐 아니다. 이웃한테 소식을 듣고, 키라 씨는 장례식장에 갔다. 앞집 삼춘이 깜짝 놀라며 반가워하셨다. 그 후 길에서 만나면 앞집 삼춘은 항상 “얘가 우리 어멍 영장에 왔었다”라면서 동네 사람들께 소개하신다.

내가 방문하던 날은 김훈 작가의 북토크가 있던 이튿날이었다. 행사엔 30명 정도가 참여했다. 주차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다행히 이웃 분께서 주차안내를 해주셨다. 앞집 삼춘은 뭐 하는데 이렇게 차가 많냐고 묻더니 파치 귤을 한 상자나 갖다 주셨다. 키라 씨의 책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북토크에 참여한 손님들의 손가락에서 귤 향이 퍼졌다. 덕분에 북토크가 풍성해졌다.

30대 후반에 잘나가던 강사 일을 내던지고 제주에 온 키라 씨, 그는 할머니들과 귤을 따러 다니면서 제주의 다방면을 배웠다. 그리고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책을 판매하는 책방지기가 되었다. 누군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뭘 하겠냐’라고 묻는다면, ‘평상시처럼 햇살과 새소리를 즐기며 이웃과 맛있는 음식을 해 먹겠다’라고 말한다. 키라 씨는 일상의 감사함을 제주도에서 배웠다. 그 감사함을 담아 자신이 큐레이션 한 책들을 보다가 누군가는 ‘아, 이런 책이 있었어?’ 하는 발견의 기쁨으로 소소하게 힐링 되고 다독여지기를 바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에서 인연을 맺은 언니가 이금영 씨 생일을 축하하며 보낸 편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키라네 책부엌은”

아침에 일어나면 한 마리도 아닌 여러 마리의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건 분명 행복입니다. 내가 쉴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빌딩 숲을 떠나 키라네 책부엌으로 가 보세요. 사계절의 따뜻한 음식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음식이 되고 음식이 내가 되는 기분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공간에서, 당신만을 위한 특별함이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앞동산로35번길 6-7
사전 예약: https://booking.naver.com/booking/10/bizes/360997/items/3446106
인스타 : https://www.instagram.com/bookkitchen_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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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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