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도민연대, 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유족들 "이유도 모른채 수감, 인정 못해"

대전 골령골 학살터에 세워진 비석.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대전 골령골 학살터에 세워진 비석.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3 당시 군법회의에 의해 영문도 모른채 수감된 300명의 제주인들. 이들에 대해서는 한국전쟁 직후 군경에 의해 전원 총살됐다는 기록만이 남아있다. 두 권의 4.3진상조사보고서에도 이 희생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죽은 자는 있으나 죽인 자는 없는 기막힌 역사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30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4.3교육센터 강당에서 '제주4.3 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번 조사는 국가기록원 소장 문서에서 확인되는 4.3 당시 불법 군법회의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대전형무소 수감 희생자의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실시됐다. 당시 수감된 300명의 희생자 유족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통해 면접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300명은 1949년 6월 28일부터 7월 6일까지 총 10차례 열린 제2차 군법회의 대상자 1659명에 포함된 이들이다. 1949년 7월2일 5차 군법회의 당시 25명, 7월3일 6차 군법회의 75명, 7월4일 7차 군법회의 200명이 전원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4.3의 역사에는 이들에 대한 기록이 미미하지만, 당시 주한 미대사관 육군 중령 밥 에드워즈(BOB Edwards)의 보고에 따르면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들은 세 차례에 걸쳐 대전시 산내면 골령골 골짜기에서 학살당했다. 4.3 관련 수감자 300명이 1950년 7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에 걸쳐 총살된 것으로 기록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에는 당시 군·경이 대전형무소 수감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총살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재소자들을 미리 파놓은 구덩이를 바라보게 한 후, 재소자의 등을 발로 밟고 뒷머리에 총을 쏘았다는 참고인의 진술이 담겼다. 나무기둥에 손을 묶어 사살하기도 했고, 시신을 미리 쌓아둔 장작더미에 던져 시신 50~60구씩 모이면 화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진실화해위원회에 의해 시행된 대전형무소 수감 4.3희생자 실태 조사에서 신원이 확인된 이들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2010년 발간된 진화위 9차 보고서의 조사 결과 4.3사건 관련자는 88명으로 나타났다. 참고인을 구하지 못한 18명은 따로 구분됐다.

88명 중 대부분의 희생자 유족들은 국가 배상 소송을 통해 대법원 판결 기준에 따라 국가로부터 평균 1억3000만원의 위자료를 수령했지만, 그외 유족들은 여전히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30일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주재로 열린 '제주4.3 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제주의소리
30일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주재로 열린 '제주4.3 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제주의소리

이 같은 배경에서 실시된 실태조사는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대전형무소 수형인의 유족 또는 지인을 대상으로 1대1 개별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상자 300명 중 265명이 면접에 응했다.

4.3 당시 체포된 이유에 대해 조사 응답자의 265명 중 절반 가량인 126명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고, 77명은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54명은 '체포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고 답했다. 누명·밀고에 의했다거나 부모 형제 등의 행방 때문에 체포됐다는 일부의 답변도 있었다. 절대 다수가 이유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4.3당시 체포돼 갇힌 곳, 체포된 후 조사를 받았는지 여부, 정식재판 여부, 형량 선고 장소, 재판장 신분 목격 경험 등의 질문에도 260명 가량의 절대 다수가 '잘 모른다' 내지는 '들은 바 없다'고 답했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고인이 수형인명부에 포함된 것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75.1%는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23.0%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고, '인정한다'는 답변은 1.9%였다.

다만, 수형인명부를 무효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의견이 엇갈렸다. 58.5%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동의한다' 23.0%, '잘 모른다' 18.5% 순으로 나타났다. 

강미경 4.3도민연대 진상조사단 조사실장. ⓒ제주의소리
강미경 4.3도민연대 진상조사단 조사실장. ⓒ제주의소리

무효화에 동의한 이들은 '죄 지은 일도 없는데 전과기록이기 때문'(86.9%), '무효화해야 명예가 회복될 것이기 때문'(13.1%)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반면, 무효화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는 '진상규명을 위해서'(53.5%)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4.3관련 피해 및 가해 기록이기 때문에'(25.8%), '잘못된 4.3역사도 역사이므로'(18.7%), '무효화로 명예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1.9%)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4.3희생자신고 심사 결과 4.3희생자로 결정됐지만 '아직도 명예회복은 되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164명으로 전체 63.1%였다. 희생자로 결정됐음에도 명예회복이 되지 않은 이유를 물은 질문에는 '법적 명예회복 조치가 없다'(74.2%), '보상·배상이 없다'(16.0%), '가해자 및 가해집단의 사과가 없다'(1.8%) 등으로 답변했다.

조사를 수행한 4.3도민연대 진상조사단 강미경 조사연구실장은 "조사 말미에는 항상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물었고, 조사 대상자의 답변은 다양했다. 법적 명예회복과 배보상을 원하는 이들도 있었고, 가해자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심지어 머릿 속에서 4.3을 지우고 싶다는 답변도 있었다"며 "아직도 해결해야 할 4.3의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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