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제식구 감싸기 비일비재…제도 개선 절실

‘끼리끼리’를 뜻하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이 본디 부정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인 뉘앙스가 강했다. 유유상종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학자이자 관료인 순우곤(淳于髡)이다. 요즘으로 치면 그는 익살과 달변의 아이콘이었다. 

하루는 제 나라 선왕(宣王)이 순우곤에게 널리 인재를 찾아 등용하도록 명했다. 이에 여러 지방을 돌아다닌 순우곤은 일곱명의 인재를 데리고 왕 앞에 나타났다. “너무 많지 않느냐”는 왕의 물음에 순우곤의 대답이 일품이었다. “같은 류의 새가 무리지어 살 듯 인재도 끼리끼리 모이는 법입니다”

오늘날 유유상종은 능력있는 사람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는 본래적(?) 의미 보다는 어떤 집단이나 무리를 비꼬는 경우에 더 자주 쓰인다. 딱 들어맞는다고는 볼 수 없으나, 비슷한 표현으로 초록동색(草綠同色), 가재는 게 편, 솔개는 매 편 등이 있다. 폐쇄성을 꼬집는 의미로 쓰일 땐 ‘그들만의 리그’와도 통한다. 

제주도 감사위원회 구성에 있어서 ‘퇴직 공무원 일색’을 경계하는 건 제 식구 감싸기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얘기하겠다. 

퇴직 공무원이 현직 공무원을 감사하게 되면 감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선, 후배 사이다. 서릿발 감사는 고사하고, 이른바 ‘우리가 남이가?’ 기제가 작동할 소지가 크다. 누가 누군지 속속들이 알 정도로 좁은 지역적 특성은 봐주기 가능성을 높인다. 그동안 숱하게 봐왔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2015년 5월13일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의원들로부터 난타를 당한 감사위원장은 회의 내내 고개를 조아리기에 바빴다. 감사원 감사 주요 결과 및 향후 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였다. 의원들의 공세 요지는 감사원이 대거 적발한 비위사실을 왜 감사위는 잡아내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사실 두 기관의 감사 기간은 일부 겹쳤다. 봐주기,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감사위의 존재 이유를 따져묻는 의원도 있었다. 

지난 15일 제주도와 감사위원회에 따르면 14일자로 임기가 만료된 제5기 감사위원의 후임인 5명 중 4명이 전직 공무원으로 위촉됐다. 시계 방향으로 강관보 전 도의회 사무처장, 김선홍 전 제주도 미래전략과장, 강시영 전 도교육청 정책기획실장, 양술생 전 제주시 사회복지위생국장, 정대권 변호사. ⓒ제주의소리<br>
지난 14일자로 임기가 만료된 감사위원 5명의 후임 중 4명이 전직 고위 공무원으로 채워져 독립성 강화라는 본래 취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6년 출범 이래 위원장이 다 섯번 바뀌고 이달들어 제6기 감사위 구성이 마무리될 때까지 이러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의 논란은 도의회의 책임이 크다. 평소 누구보다 감사위의 독립성, 전문성을 부르짖어온 도의회가 이번에는 직접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 추천권이 할애된 2명 모두를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 채웠다. 이를두고 한 시민단체는 도정에 대한 견제 역할을 망각한 자해행위라고 성토했다. 반면 제주도는 전직 간부 공무원 1명과 변호사 1명을 추천했다. 모양새만 놓고 보면 거꾸로 된 셈이다. 

“날 추천해달라”는 로비가 어느때보다 치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율배반이다. 그동안 여러차례 정책토론회 등을 통해 감사위 독립성 강화 방안을 모색해온 도의회이지 않던가. 

때맞춰 제도 개선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감사위원이 될 수 있는 네 가지 부류 중 ‘4급 이상 또는 이에 준하는 공무원으로 5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 2명을 넘지 않도록 인원을 제한하는 조례 개정이 추진된다고 한다. 

이 또한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유의미한 시도이다. 지금처럼 도지사도, 도의회 의장도, 교육감도 공무원 출신을 추천하는 관례 아닌 관례는 사라져야 한다. 조례 개정은 여태껏 봐왔듯이 잘못된 풍토를 나무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작은 실천이라는 점에서도 점수를 주고 싶다. 

헌법에 보장된 공무담임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을 존중하지만, 퇴직 공무원의 감사위 진출 자체를 막는 게 아니라 그 인원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의회에서 충분히 다뤄볼 수 있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아예 감사위원을 공모로 뽑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감사위원 추천 전에 선정 및 추천위원회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이미 지난 9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제주특별법이 개정되면 감사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고쳐 구체적 방식을 정한다는 게 제주도의 복안이라고 한다. 

용두사미로 끝나선 안된다. 어떤 방안이든 이번 만큼은 결실을 맺어야 한다. 감사위는 도지사 소속이지만, 그 직무에 있어서는 독립된 지위를 갖는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이왕 모일 바에는 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고루 섞이는게 낫지 않은가. 2300여년 전 순우곤이 강조한 바로 그 유유상종 말이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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