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⑮ / 목초재배-임대료 수익 마을 환원하는 납읍리목장조합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의 숨은 가치를 찾아내고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지역 문제나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해 해결해가는 연대의 걸음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이 발굴한 의제를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이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문제해결까지 이뤄내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젝트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함께하는 ‘공동기획 - 탐나는가치 맵핑’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참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연대가 될 것이다. 이번 도민참여 솔루션이 잊히고 사라지는 제주의 가치를 발굴·공유하고 제주다움을 지켜내는 길이 될 수 있도록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  [편집자 주]

“그 누구도 마을목장을 팔자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숱한 개발 유혹에도 마을 주민들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을 쉽게 넘길 수 없다고 뜻을 모았죠. 마을 선배들은 목장을 쉽게 팔 수 없도록 강력하게 규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숱한 개발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단단한 조합을 구성한 뒤 관광목장 임대료와 목초재배 등 수익금을 마을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놓는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목장조합(이하 납읍공동목장). 

애월읍과 한림읍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중산간 드넓은 들판에서 지금은 마소를 키우지 않지만 예로부터 이어져온 제주 특유의 목축경관 흔적을 그대로 보전해오고 있다.

마을 목장을 운영 중인 납읍리목장조합은 운영난과 개발 압력에 따른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경관과 자연 가치를 보전하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주의소리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지난 27일 제주시 애월읍 납읍공동목장을 찾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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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가치 맵핑'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 팀이 방문한 납읍공동목장은 단단한 조합을 구성하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목장과 자연가치를 지켜나가고 있다. 마을공동체를 위해 목장 수익금을 기꺼이 내놓는 등 마을의 각종 어려움도 함께 헤쳐나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지난 27일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팀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마을공동체의 자산을 통해 창출한 수익을 마을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는 납읍공동목장을 찾았다.

마을공동목장 프로젝트 팀이 일곱 번째로 방문지로 택한 납읍공동목장은 조합이 소유한 약 72헥타르(ha)와 제주도로부터 임차한 97ha 규모로 총 168ha의 지목상 목장용지, 임야, 대지 등으로 구성된다.

평화로와 맞닿는 목장부지 일부는 관광목장으로 활용돼왔다. 2003년에는 S관광개발업체와 손을 잡고 2023년까지 20년간 부지 임대 계약을 맺기도 했다. 

S업체는 이후 21만㎡ 목장부지에 상설공연장을 짓고 운영을 시작했으나 공연업체와 채무 관계가 얽혀 한때 시설을 폐쇄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당시 임대료가 계속 미납되자 조합은 총회를 열고 목장을 되찾아야 한다는 구성원 의견을 종합했다.

더불어 시설물 등기 문제로 S업체와 다투다 결국 소송을 치렀고 몇 차례의 재판에서 승소하며 겨우 마무리를 지은 뒤 부지를 되찾았다. 상설공연장 건물은 현재 납읍공동목장 소유로 남았다.

광활한 마을공동목장 부지 중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마을주민들이 수눌음으로 오랫동안 가꿔왔지만 소유권을 증명할 서류들이 유실되며 과거 도유지(옛 북제주군 당시 군유지)로 소유권이 넘어가버린 경우도 있다고 조합측은 전한다. 

결국 도유지의 경우 현재는 제주도로부터 임차해 사용하다보니 매년 임대료를 내야 하는 기구한 사연을 갖는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설립인가를 받고 형성된 납읍공동목장이지만 4.3사건을 겪으며 관련 증거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란다. 

제주4.3의 광풍이 불어닥칠 때 마을공동목장임을 증명하는 자료들도 모조리 불타 없어지면서 부지는 당시 북제주군 소유가 됐다가 제주특별자치도 소유의 도유지가 됐다. 이에 지금은 제주도에 임대료를 내고 빌려 쓰고 있다.

임대 중인 부지는 평평하고 넓은 들판을 의미하는 제주어 ‘벵듸’에 앞이 훤하게 트여있다는 의미가 더해져 ‘앞벵듸’로 불리는 드넓은 초지다. 

앞벵듸에서 목축을 해오던 옛 납읍리 주민들은 비바람이 불 때 소들이 피해 쉴 수 있도록 방풍림을 심기도 했다. 누구나 가릴 것 없이 소를 키웠던 주민들이 직접 목장부지 곳곳에 심어둔 것이다. 

납읍리 주민들은 납읍공동목장이 곧 앞벵듸이고, 앞벵듸가 곧 납읍공동목장으로 여겨 오래전 선대 때부터 이 일대를 가꾸고 관리해왔지만 도유지가 되어버렸다며 억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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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공동목장의 ‘앞벵듸’는 평평하고 넓은 들판을 의미하는 제주어 ‘벵듸’에 앞이 훤하게 트여있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바리메오름 서쪽 앞가슴으로 너른 벵듸가 펼쳐져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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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공동목장의 ‘앞벵듸’는 평평하고 넓은 들판을 의미하는 제주어 ‘벵듸’에 앞이 훤하게 트여있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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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공동목장을 탐방하고 있는 탐나는가치 맵핑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그러나 마을공동체가 잘 형성된 납읍공동목장 조합원들은 마을의 각종 어려움도 함께 헤쳐갔다. 조합은 납읍리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져가자 조합원마다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조합은 납읍초등학교 학생 수가 줄어들어 분교가 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을 비롯한 납읍초 출신들의 기부금에 조합 차원의 기금을 보태 19세대의 다세대 주택을 지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세대에 무료로 주택을 빌려주면서 학생모집에 크게 기여했다. 제주도내 첫 사례다. 

이를 통해 납읍초는 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2021년 현재 납읍초등학교는 140여 명의 학생이 꿈을 펼치는 공립초등학교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게이트볼장 조성에 기부금 1억 원을 내놓고, 마을회관을 짓는데 조합 기금 약 3억 원을 전달하는 등 수익금 중 일부를 마을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 등에도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목장조합에서 납읍마을에 기부한 기금은 약 10억원에 달한다.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 골프장 숙박시설이 들어설 때도 ‘밭이웃’이란 옛정을 살려 도움을 주기도 했다. 골프장 사업자가 숙박시설을 세울 당시 측량을 해보니 7000여 평에 달하는 목장부지가 포함됐던 것.

조합은 골프장의 딱한 사정을 듣고 밭 너머 이웃이라는 대의로 땅을 매각해줬으며, 매각 수익금은 한림읍 금악리 일대 목장용지를 구입하는 등 목장용지 확대에 투자했다.

애월읍 납읍리 출신과 그 후손으로 구성된 390여 명의 조합원이 목장을 지키고 있는 납읍리목장조합은 매해 정기총회를 열어 조합원들에게 예결산 보고를 통해 조합 운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조합원들에게는 일년에 단 한차례, 정기총회 참여시 20만 원의 회의비를 환원 차원에서 지급하고 있다. 

건강한 조합을 만들고 지속가능한 목장 운영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어려움은 다른 목장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축산업의 쇠퇴와 맞물려 목축환경은 급속히 악화되고 관광목장 실패로 목장수입은 갈수록 줄고 있지만 광활한 부지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숱한 개발 압력에도 꿋꿋하게 마을목장의 원형을 최대한 지켜내며 중산간 보호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지만 별다른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연간 5000만 원에 달하는 각종 세금과 임대료 등이 지출되는 상황에서 목장부지를 매각하지 않고 지켜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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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을 둘러보고 있는 탐나는가치 맵핑 프로젝트 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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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목장에는 인근 지역에 공급할 물을 저장하는 시설도 설치돼 있다. ⓒ제주의소리

진석완 조합장은 “그나마 납읍은 덜 하지만 목장 매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면적에 준해 재산세가 나오는데 이 상태로는 재산세를 납부할 수도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초지재생과 자연 보호에 기여하고 있는 만큼 지방세 감면조례를 만들어 세금을 조금 감면해줬으면 한다”며 “이대로 라면 제주에 있는 목장들은 당초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난개발되거나 개발업자에게 땅을 팔아 재산세를 충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총회를 거쳐 자본검증이 끝난 사업자를 모집하거나 조합이 직접 컨설팅을 받아 관광목장을 운영하는 등 목장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마을공동체도 유지하고 제주의 자연도 보호할 방안을 찾아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은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지역의 다양한 의제를 주민 스스로 발굴하고 발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한 뒤 해결까지 모색하는 도민참여형 프로젝트다.

첫번째 주민발굴 의제로 ‘마을공동목장’을 택한 프로젝트팀은 지난 8월 금당목장과 남원한남공동목장(머체왓숲길), 9월 하원공동목장, 10월 신례리공동목장, 장전공동목장, 11월 상명공동목장을 방문한 바 있다.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프로그램은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제주 곳곳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mapplerk3’를 내려받아 회원 가입한 뒤 커뮤니티 검색에서 ‘Save Jeju’를 검색, 가입하면 된다.

이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곳곳의 가치들을 영상과 글, 사진 등을 통해 기록하면 된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더라도 홈페이지(mapplerone.net/savejeju)에서 공유된 가치들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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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에 모여 진석완 조합장의 말을 듣고 있는 탐나는가치 맵핑 프로젝트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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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키울 당시 물을 먹였던 '쇠물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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