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픽 1위 평화로 노형 다랑곶과 서광 남송이, 어원은?
트래픽 1위 평화로 노형 다랑곶과 서광 남송이, 어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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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쉰 아홉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최근 교통량 조사에 의하면, 제주에서 교통 트래픽(Traffic) 1위가 평화로인 노형에서 무수천(無愁川, 근심이 사라진다는 내)구간과 중산간에서는 동-서광녹차밭-신화역사공원-영어교육도시다. 노형은 신제주와 구제주 도심을 연결시키면서 다랑곶(月朗)이 뒤를 받치고 있다. 반면에 서광은 남수리(Flying Eagle, 남송악)오름과 넙게오름 다랑곶이 마을의 수호신이다.

1. 노형동(老衡洞)

ⓒ제주의소리
제주시 노형 오거리. ⓒ제주의소리

왕복 2차 서부산업도로는 제주시와 모슬포를 연결하는 39km의 준고속 도로로, 현재 평화로이기도 한 이 도로는 2002년에 왕복 4차선으로 확장됐다. 고향 서광에서 제주시 진입 시 만나는 노형마을과 월랑마을, 서부산업도로는 정난주(1773-1838)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걸어갔던 유배길이기도 하다.

1950~1960년대 초 공부를 잘했던 이공숙 교장은 가끔씩 서광에서 제주시까지 여덟 시간을 걸어서 제주 사범학교를 다녔다. 당시에는 광챙(廣靑)리에서 제주일주도로버스를 타기 힘들 뿐 아니라 버스비도 비싼 편이었다. 노형동(老衡洞)은 설촌 유래에서 지형이 배와 같고 큰 못에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형태라 하여 노형(櫓形)에서 찾고 있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조선조 문헌이나 「탐라순력도」에는 노형(老兄)으로 표기되고, 구한말에 세워진 묘비(墓碑), 가축의 낙인(烙印)에도 ‘老兄(노형)’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삼군호구가간총책(三郡戶口家間摠冊)」에는 ‘老衡(노형)’이라 표기되고 있다. 이후 老兄, 老衡을 혼용하다가 ‘老衡(노형)’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노형동에는 연동 서쪽, 현재 한라의료원과 남녕고 간에 위치한 말머리 내(馬頭川)를 경계로 서쪽 서부 산업도로를 따라 길 남쪽, 즉 천백도로 동쪽의 원노형(原老衡)을 기점으로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다. 동쪽의 월랑(月朗)마을부터 정존 마을, 광평(廣坪) 마을, 월산(月山) 마을, 해안(海安)마을이 차례로 이어져 있다. 충남 아산에도 월랑마을이 있다.

2. 월랑마을의 다랑곶

월랑은 가구 분포가 차남동산, 진밭, 막산이왓, 족은바량밭, 큰바량밭(소와 말이 오줌똥을 받는 밭) 등으로 산재되어 거주한 것으로 보아, 1500년경 ‘더렁굴’이란 명칭의 유래에 근거하여 발량밭, 바량밭이 나오고, 이후 더렁굴→달랑굴→달은 월(月), 랑은 ‘밝다’는 의미로 랑(朗)→월랑(月朗)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다랑곶의 곶은 곶자왈(곶자왈 수와 나무 목藪木)과 장소(곳, Place)를 의미하는 말이다.

어쨌든, 지금 월랑마을의 도로이름도 다랑곶 1길, 2길, 3길 등으로 표기된다. 월랑초등학교 장승심 교장(博士)이 보내온 자료를 보면, 월랑마을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앞곶(저지대로 월랑남쪽과 정존마을에서 도두 쪽으로 흐르는 물길로서 땅이 비옥하고 넓어서 농사도 잘 되고 생산물이 견실한 곳으로 유명함)이 있는데 앞 곶 동쪽은 동반월(東半月), 서쪽은 서반월(西半月), 이 양반월(兩半月)이 모이면 만월(滿月), 만월 시에는 온 세상을 밝힐수 있어 월랑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지도에는 월랑화촌(月朗花村): 달월의 달, 밝을 랑, 꽂 화의 꽃을 취하여 ‘다랑곶’이라 나와 있다. 예를 들어 제주시 노형동 다랑곶 3길 19 삼성주택 등으로 표기된다. 그러므로 다랑곶은 즉, 월랑(月朗) 마을로 풀이된다. 광평(廣坪) 마을도 너븐 드르, 넓은 드르, 넓은 들판. 즉, 넓고(廣) 평평한 들평(坪)로 풀이된다. 

3. 서광리 남송이 오름과 다랑곶, 제주 제일의 옛 사냥터

서부산업도로에서 동광을 지나면 나오는 마을이 서광리다. 서광서리 오설록 남송이 오름(339m)은 하늘을 날고있는 독수리 형태를 보인다. ‘날=날다’에서→‘남’으로, 독‘수리’ 취(鷲)가 합쳐져 ‘남수리(Flying Eagle)’ 오름에서 ‘남송이’ 오름으로 변천됐고, 사람들은 ‘남소로기(鳶)’오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편, 박용후(朴用厚)선생은 남송이 오름을 남송악(南松岳)이라고 표기하면서 ‘남송이’는 어원미상이라고 했다. 남송이 오름 앞에는 오설록 녹차밭, 신화 역사공원과 영어교육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송이 오름에서 약 3km 걸어 내려오면 중간에 만나는 곳은 석수밭(石鷲田)과 꽝수밭(骨鷲田), 곶자왈에서 삭다리(삭정이) 나무를 하고 지고 온 짐을 여기 돌 쉼팡에서 부려놓아 잠시 땀을 닦고 이어 서광마을, 해발145미터 생기(生氣, Vitality)동산의 너럭바위에 물이 고여 마시는 동산물이 있고, 그 주위에는 오래된 팽나무 숲이 마치 독수리 ‘텅애’ 모양이 ‘물통’을 만나면서 한발 나가면 앞 자락에 이갑부 훈장의 ‘이말이 뭐고’ 공덕비(功德碑)가 서있는 광화사가 있다.

독수리가 앉아 있는 형태로 모슬봉, 산방산, 비양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기(氣)의 흐름을 느끼는 생기동산, 인도에는 독수리날개를 펼친 모양이 바위가 있는 라즈기르(王舍城), 영취산(靈鷲山, 73m), 부처가 꽃을 들자 제자 가섭만이 빙긋 웃었다는 염화미소(拈花微笑)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說)했다는 현장, 국내는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가 있는 산 이름도 영취산 서광서리와 동리 사이에 넙게오름이 있고 다랑곶(月朗藪)을 만난다. 서광동리에서 넙게오름 진입로에 두 개의 비석이있는데, 대정 현감을 지낸 강이진(1858-1861)의 선정비와 강재오(1882-1883) 거사 비(碑)다. 두 분 대정현감은 부자(父子)지간이다.

큰게(Crab)모양이 넙게오름(廣蟹岳)을 오르면 다랑곶, 한라산, 모슬포와 중문, 한림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정현감들이 사냥터가 된 넙게 오름과 남송이오름 들판(꿩 노루 등이 많아 독수리가 많이 서식, 독수리 관련 지명이 많다). 오름 정상에는 마시는 넙게 물이 있고 넙게 물건너 정상에는 어릴 때 선친께서 농사를 지은 ‘개다리왓’이 있다. 1794년 갑인년 대흉년에 개다리(犬足) 하나와 밭을 바꿨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옛 면사무소가 있던 관전밭도 있다. 다랑곶을 넘고 내려오면 힘이 장사인 오칠방묘(墓)가 있다. 서광동리에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엮어 ‘광해악의 노래’로 연극 공연을 2017년 두 차례 했다. 본글의 원고는 이창화 교장, 이만형 서광동리 전이장의 자문을 받았다. 감사드린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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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그대로 2021-12-06 19:14:16
걸어서 여덟 시간
물론 왕복이겠지요?
배움의 목마름이 그토록 간절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날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옛모습을 상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9.***.***.85

김낙훈 2021-12-03 22:42:47
가난하고 어려웠던 한국사의 한 단면이자 섬이라는 한정된 곳에서 학업을 하기위하여 먼거리를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에 중학교를 왕복 사십리씩 걸어다녔다는 누이 생각이나면서 시공간을 떠나 공감합니다.
특이한 지역명이 한 마을 또는 지역의 역사인데 구전이나 문헌으로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75.***.***.96

성산 2021-12-03 21:10:08
월랑마을이란 이름이 참 예쁘단 생각은 했었는데, 어원을 알게 되니 괜히 더 정감이 들고 좋네요. 유익한 글 잘 봤습니다.
175.***.***.227

선인장 2021-12-03 05:47:49
@ 지명의 유래는 그 지역만의 문화와 역사를 총체적으로 대변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물론 더 위대하게, 더 신성하게 알려는의도에서 구전과정에서 좀 과하게 표현하는 점도 없지않다. 그러나 설화적인 측면을 뛰어넘어 객관적 증빙자료로 남아있는 기록물은 값어치가 무한하다 생각된다. 이번 교수님 글을 접해보니 어원 따라 삼천리의 프로그램을 만났다는 느낌이다. 다랑곶( 밝은 달 뜨는 곳), 남송이 ( 독수리 나는 곳) . 그동안 제주도 생활에서 무척이나 어렵고 기억이 잘되지 않던 지명이 하나둘씩 쉽게 머릿속에 연상된다. 예전에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는 말을 사투리, 방언이라 했다. 지금은 고유어로 단어 자체가 고품격화되어 있다. 세월따라 지역명칭도 변하기에 먼 훗날 고품격어로 튼실히 자리메김하면 좋겠다.
221.***.***.68

권기열 2021-12-02 18:47:13
제주도에서 추사 김정희가 걸어갔던 유배길이 있다니 충남 예산에 10여년전 김정희 서예가의 고택을 방문한 적이 있어 감회가 세롭다. 제주도에는 유명한 곳이 많아 가끔 가보고 싶은데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으니 아쉽기만 하다
218.***.***.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