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52) 되 곯게 주고 저울 눈 속이면 후손에 줄봉서 낳는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뒈 : 되(升)
* 골리곡 : 곯려, 곯게, 기준보다 부족하게 주고
* 줄봉서 : 줄봉사, 여럿의 봉사

사진=픽사베이.
장사하는 사람들이 법에서 정한 도구를, 그것도 정직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게 질서다. 사진=픽사베이.

도량형(度量衡)은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상행위에서 기본이 되는 것이다. 길이와 분량과 무게를 재는 도구가 일정한 규격으로 만들어져 나와야 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법에서 정한 도구를, 그것도 정직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게 질서다.

물건의 길이를 재는 자(척·尺))가 규정대로 사용되지 않거나, 분량을 재는 되가 크고 작아 일정하지 않거나, 저울눈을 교묘하게 속이게 되면 나라의 상도덕이 근본적으로 무너진다. 도량형의 타락하면 상업이 피폐해지고 사회가 흉용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쌀을 사고파는데 팔도에 각각 다른 되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값은 같은데 자루에 담는 쌀의 양이 다를 것이다. 저울은 눈금이 규격 제품이 아닐 때 이런 엉뚱한 거래가 이뤄진다. 장사하는 사인들이 선량한 서민들을 속이는 것이다.

눈속임하는 수단이 나와 상행위의 현장에서 마치 손재주처럼 사용할 때,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가 될 게 뻔 한 일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곡물을 사고파는 날 고샅 빈터에서 되질하는 여인의 손을 본 적이 있다. 되 가득 담고 손바닥으로 한두 번 쓸어 수평을 이루는 손놀림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감쪽같고 현란했다. 사는 사람 중에 ‘뒈 잘 뒙서게. 너미 햄수다. 그냥 박박 쓸어 불민 어떵헙니까? (되 잘 모으세요. 너무 하시네. 그렇게 박박 쓸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보리나 조 등 농산물이나 미역이며 한천을 가마니에 담아 크고 묵직한 칭 저울에 달아 무게를 달 때도 한가지였다. 추를 놓는 눈금과 저울대의 높낮이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었다. 요즘이야 길이든 분량이든 무게든 정밀한 계기(計器)들을 사용하니 거짓이나 속임수가 들어설 여지가 없으리라.

예전에 악덕 상인들에게 얼마나 당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서민들을 수없이 속여 온 나쁜 상인에 대한 혹독한 증오심에서 나온 말이. ‘뒈 골리곡 저울 눈 속이민 후손에 줄봉서 난다’이다.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었으니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좋은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런 죄업(罪業)은 당대에 한하지 않고 사후로 이어져 후손 한둘에 그치지 않고 여럿의 봉사가 나올 것이란 매서운 얘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인과응보라는 것이다.

행여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선업(善業)에 마음을 돌릴 일이다. 도량형을 속여 폭리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악덕 중의 악덕이 아닌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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