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초고령화 사회, 인권의 유효 기간은 없다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 연재를 통해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종종 노인 관련 복지 시설에 인권 강의를 가곤 한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 교육은 다른 인권 강의와 또 다른 면모가 있다. 어르신들에게 강의 도중 묻는다. “어르신, 나이 들어지믄 혼자 숟가락 떵 밥먹는게 좋지예?” 어르신들은 지체 없이 답한다. “기주게!”

어르신들과 사회 복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의 끝마무리에 필자가 만드는 대화이다. 인권 강의에서 노인들을 위한 사회 복지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사회 복지가 노인들을 위한 사회적 책임의 전부라고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어르신들은 사회적 보살핌의 대상만이 아닌 주체적 삶을 누려야 할 존엄한 인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살핌은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결국 내 삶은 내가 살고 싶은 것이다. 내 밥은 내가 내 숟가락을 들고, 내가 먹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을지라도 변함없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며 존엄한 존재이고, 그렇기를 기본적으로 바란다. 

사회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노인들도 예전의 노인들처럼 약간 수동적으로 인생을 마무리하길 원하지 않는다. 보다 적극적으로 삶을 즐기면서 살고자 노력한다. 자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욕구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치적 의사 표현도 더 적극적이 되었다. 이는 노인들의 권리 욕구도 다양해졌고, 사회적 소통에 대한 욕구도 강해졌다는 의미이다. 나이를 떠나 모든 세대들의 소통과 이해, 그리고 공감과 연대적 자세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또한 나이에 따라 한 사람의 각 시기별 삶의 모습을 정형화하고 한계적으로 정의 내리는 시기가 지났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태어나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모든 개인들은 전인적으로 인간적 존재이며,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전언처럼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존엄한 존재가 된다. 인권의 유효 기간은 이제 없다. 

사진=픽사베이.
노년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재임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노년까지 중단 없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2021년 3월 행정안전부 통계를 보면 제주특별자치도는 65세 이상 고령 비율이 15.9%로 전국 17개 행정구역에서 11위이다. 하지만 85세 이상 초고령 노인의 비율로 알아보는 “장수도”는 제주 지역이 12.50%로 세 번째로 높으며, 비율 역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에 제주에서도 노인을 권리 주체로 받아들이고, 노인들을 위한 인권적 사업 및 고민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제주시 구도심권인 삼도동에서 ‘노인인권지도’ 만들기 사업의 인권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시행했다. 해당 지역의 도의원과 주민자치센터 행정, 주민자치위원들이 적극 지원하고 참여하였다. 이 사업은 노인 인권에 대한 인식과 이해, 공감을 넓히고 노인 분들에게 인권적 차원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을 표방하였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노인인권지도를 위해 구성된 인권 옹호자 그룹의 주민자치위원들은 노인 인권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와 공감을 가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노인 인권에 대한 인식 확산의 기회가 더 넓어져야 하겠다는 큰 공감대까지 이뤄냈다. 노인들의 주체적인 삶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국제 사회에서는 노인에 대한 문제에 대해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서는 논의를 진행해왔다. 1982년 비엔나 회의에서는 ‘고령화에 관한 비엔나 행동계획’을 마련하였다. 노인에 대한 최초의 국제 문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1991년 유엔 총회에서 ‘노인을 위한 유엔원칙’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원칙은 독립, 참여, 돌봄, 자아 실현, 존엄이라는 5개 그룹의 명제와 18개 항을 표방하고 있다. 이 원칙을 통해 국제 사회의 노인에 관한 논의는 돌봄을 포함한 노인의 독립적이고 참여적이며 자아 실현에 초점을 두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2002년 마드리드회의에서는 ‘고령화에 대한 정치선언과 행동계획’을 발표하였다. 

뿐만 아니라 WHO(World Health Organization, 세계보건기구)는 활기찬 노년의 구성 체계를 기반으로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Global Network of Age-Friendly City and Community)” 프로젝트를 추진해오고 있다. ‘고령친화도시’란 나이 드는 것이 불편하지 않는 도시,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살기 좋은 도시이며, 남녀노소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도시를 의미한다. 아울러 건강한 노년을 위해 고령자들이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온 세상이 노인을 명실상부한 사회의 한 주체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권리가 충족되어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인을 위한 유엔원칙에 관한 내용은 [류은숙, 고령화시대의 노인의 인권―우리 모두를 위한 인권운동사랑방 인권문헌읽기 23호, 2006]을 참고하였다) 

과거 제주 지역의 노인들은 생계를 위한 노동에 모든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어르신들의 힘겨운 노동을 통해 우리 후손들은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이제 제주는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제주는 노동 인구의 감소, 노인 빈곤, 의료 비용 증가, 세대 갈등, 노인 여가, 노인 소외와 고독, 노인 자살 등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고령층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응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사회경제적 활동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 사회 관계, 여가 생활 등 노인 생활 실태 전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노령 시기의 개별적 개인을 지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제주도를 상상하고 입체적으로 구체화 시켜야한다. 노인 인권은 모든 연령을 통틀어 모두 다 공감하고 연대하는 삶을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년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재임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노년까지 중단 없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년은 인생의 황혼기에 젖어드는 마무리가 아니고 여전히 생생한 우리 삶의 일부이다. 노년이 유효기간이 다다른 쪼그라든 삶의 시기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존엄한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생명의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끝까지 결코 훼손할 수 없는 존엄한 존재이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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