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74) 김동현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홍콩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네 지역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예술운동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네 나라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 국적에 따른 언어가 제각각 달라 영어 일어 중국어 번역 원고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1. 부드러운 평등과 곧은 분노

대나무는 평등하다. 각자의 높이로 자라면서도 땅 속 줄기로 얽혀 숲을 이룬다. 평등한 삼투압의 힘으로 대나무는 서로의 어깨를 부빈다. 대나무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힘껏 모아 바람을 만든다. 바람이 대숲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대숲이 바람을 만든다. 스스스, 사사사, 흔들리면서도 지치지 않는 소리들 앞에서 못난 놈도 잘난 놈도 없다. 대나무는 대나무로 살고 대나무로 죽는다. 대꽃이 피면 대숲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각자의 힘으로 하늘을 향해 나아가되 모두의 힘이 다하면 함께의 시간으로 죽는다.

플라스틱이 없던 시절, 대숲은 살아있는 이들이 기댈 수 있는 공작소였다. 대나무를 베고, 자르고, 깎으며 살아간 시간이 있었다. 때로는 잘리고, 가늘어져야 살 수 있다는 것을 투박한 손끝에 새기기도 했다. 대숲은 칼이었다. 잘린 몸통을 겨누면 칼보다 단단한 분노가 되었다. 바람 불면 함께 흔들리면서도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의분(義憤)이었다. 대숲에서 우리는 부드러운 평등과 곧은 분노를 마주한다. 

대숲에 기대어 살았던 사람들은 알았다. 그 부드러운 평등과 곧은 분노가, 뿌리로 이어져 하늘로 치솟았던 시간들이, 우리들의 삶을 키운 뿌리였다. 120년 전 제주 땅에서 쏘아 올렸던 함성도 대나무 하나 손에 쥔 작은 용기들이 시작이었다. <청년 이재수전>에서 우리는 대나무의 함성을, 함께의 힘으로 버텼던 시간을 만난다. 서성봉은 그것을 ‘창의 노래’라고 이름 붙였지만 사실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외침이고, 비명이다. 매달아 놓은 죽창들은 서로 부딪힌다. 비어있는 속이 만들어 내는 소리의 울림이다. 하나가 울어야 모두가 우는 함께의 울림이다. 

사진=김동현. ⓒ제주의소리
서성봉 작 '창의 노래'. 사진=김동현. ⓒ제주의소리

여기서 눈 여결 볼 것은 칼날의 방향이다. 깎고 다듬어 칼이 된 창들은 모두 땅으로 향하고 있다. 분노는 상대가 있는 대결이다. 칼날은 바깥으로 던져야 하는 분노다. 생각해보면 모든 저항은 끝내 살아야가야 하는 삶을 긍정해야하는 분출이다. 외부로 향했던 칼날도 땅으로 저물어야 삶이 계속된다. 밖으로 향하던 분노의 힘으로, 다시 살아야 하는 삶. 그 마땅한 순리 앞에서 ‘창’은 노래한다. 창을 드는 힘으로 땅을 일구고, 땅을 일구는 마음으로 창을 들었다. 땅의 분노였고, 땅의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외침이었다. 함성이 잦아들고 분노도 언젠가는 식는다. 뜨거웠던 분노도 한소끔 식어야 단단해진다. 한 번 휘두르고 마는 분노가 아니었다. 휘두르고, 베고, 찌르는 분노의 힘으로 다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으로 땅에 엎드려 살았던 사람들. 그것을 서성봉은 <칼의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강문석의 <깃발>은 120년 전의 분노를 현재의 시간으로 담아낸다. 고정되어 있으되, 휘날리고, 매어져 있으되 끝내 펄럭이는 깃발은, 120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의 순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칼의 노래>를 들으며 <깃발> 앞에서 서 있는 우리들의 마음들은 어느새 신축년 그 해로 가서 닿는다. 그것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시간이며, 아득한 넓이로 번지는 오늘의 기억이다. 

전시장 입구 벽면을 올려다보면 이경재의 <출정>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동학의 기치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광장의 함성이 ‘민(民)’의 형상으로 함께 만난다. ‘반외세항쟁’과 ‘반외세 반봉건’을 외쳤던 그날의 출정을 오늘로 만드는 ‘출정’ 앞에서 우리는 또 다시 오늘을 극복하는 출발을 다짐해야 한다. 

2. 미세하지만 분명한 각인 

<청년 이재수>전에서 우리는 기억을 만난다. 120년 전의 시간은 과거로 흩어진 무(無)가 아니었다. 생명은 죽어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흩어지되 머무는 것이며, 머물되 작아지는 것이며, 작아지되 남아있는 것이다. 철학자 박동환은 우주 탄생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기억을 ‘영원의 기억’이라고 불렀다.(박동환, 'χ의 존재론', 사월의책, 2017) ‘영원의 기억’, 한 인간의 신체에는 생명 탄생의 순간이 새겨져 있다. 지극히 미세한 흔적이지만 분명한 각인이다. 기원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우리 몸에 각인되어 있다면 120년 전이야 오죽할 것인가. 120년 전의 함성, 120년 전의 불꽃. 그 함성에 담겼던 거칠었지만 의로웠던 숨결들, 불꽃으로 타올랐던 염원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땅에, 숨 쉬고 있는 대지에 그날의 일렁임이 여전히 있는지 모른다. 문명의 진화와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학조차도 “우리 몸속의 물이 나일강을 흘렀고, 몬순의 비가 되기도 했고, 태평양을 흘러 다니고 했다”고 말하지 않는가.(루이스 다트네르, 이충호 옮김, '오리진-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 흐름출판, 2020)

<청년 이재수전>에서 기억은 물(物)의 형태로 우리 앞에 놓인다. 고경화와 박소연의 공동작업인 <1901년 신축년 4월…>도, 고길천의 <어머니>도 물(物)로 존재하는 기억의 현재를 말한다. 고경화와 박소연은 대정읍 삼의사에 주목한다. 프로타주로 재현된 비문의 앞과 뒤는 그 자체로 기억의 어제와 오늘을 시각적으로 재현해 낸다. 고길천의 <어머니>는 이재수 모친 묘의 비석을 재현했다. ‘제주 영웅 이재수 모 송씨 묘’라는 앞면과 ‘소화 15년 3월 안인보 삼리 일동 근립’이라는 뒷면. 비를 세웠던 기억들이 거칠지만 당당한 현재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양동규는 황사평 성모상과 제주영웅 이재수 모 송씨묘를 나란히 배치했다. 성모상과 이재수의 모친의 비석.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님’을 암송하며 기도를 올리는 종교적 심성과 이재수의 모친을 기리며 세웠던 비석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그것은 특정한 종교에 국한되는 심성이 아니다. 아들을 앞세운, 의로운 죽음 앞에서, 참척(慘慽)의 고통을 겪었던 지극한 모성이다. 

사진=김동현. ⓒ제주의소리
이경재 작 '출정'. 사진=김동현. ⓒ제주의소리

1901년 신축항쟁은 천주교에 대한 거부와 반발만은 아니었다. 종교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으로, 천주라는 이름을 빙자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저항이었다. 사사로이 옥문을 깨어 죄인을 방면하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봉세관의 권세와 프랑스 신부의 권위를 사적인 권력으로 이용했던 정의롭지 못한 인간들에 대한 단죄였다.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 인간 해방을 위한 횃불, 그것이 신축년 봉기에 담긴 뜻이다. 

정유진의 <비원-타오르다>는 횃불에 주목한다. 오른손에 홰불을 든 이의 뒷모습은 그림자로 어둡다. 피어오르는 횃불은 빛나고, 먼 하늘의 빛은 파랗게 깨어나고 있다. 새벽을 밝히는 횃불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불꽃이다. 강렬한 불꽃의 심상은 강동균의 <불타는 섬>에서 절정을 이룬다. 화면의 위아래를 가득 메운 검붉은 색깔, 그 사이에 섬이 하나 있다. 한라산과 오름의 모습들이 화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원근감이 강조된 화면에서 섬은 멀게만 느껴진다. 섬을 보는 시선의 거리를 압도할만한 검붉은 색깔들. 바다를 태우고, 하늘에 치솟는 불길처럼 강렬하지만 오히려 섬은 멀리서 평온하다. 하늘과 바다를 태울 듯한 열기가 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바다 건너 열기가 섬을 태울 듯이 다가서는 것인지, 언뜻 보면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 모호함, 의미를 확정지을 수 없는 그 미끄러짐이 오히려 <불타는 섬>을 주목하게 한다. 제주 섬은 누군가에 의해 불태워지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땅이 아니었다. 용암보다 뜨겁게, 천지를 태울 듯이 분출했던 함성으로 대지를 물들였던 역동의 땅이기도 했다. 한반도에서 보면 제주가 이 땅의 끝이겠지만, 제주에서 보자면 여기는 대지의 시작이자, 기원이다. 제주 땅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고, 제주 땅이 있어서 시작되는 것이다. 불꽃도, 함성도, 분노도 제주 땅에서 시작되어 바다를 건넜다. 바다 건너온 외침을 품기도 했다. 섬은 밀려온 모든 것들을 품는 넉넉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제주는 제주로 살면서도 대양으로 열려 있을 수 있었다. 

120년 전 삼의사들의 실제 얼굴은 전해지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초상화 하나 남기지 않은 죽음이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서, 기억으로만 겨우 떠올려야 했던 삶들이었다. 그래서 비석을 세웠다. 비석이라도 세워, 비문을 새기고, 절을 올리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했던 그들이라 여길 수 있었다. 그리워하지 않았던 세월 어디 있을까. 보고 싶지 않았던 마음 왜 없었을까. 

이명복의 <남매>는 이재수와 이순옥 남매의 모습을 그려냈다. 실물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면 작가적 상상을 얼마든지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이재수와 이순옥 남매는 상상만으로 그려질 수 있는 인물화가 아니다. 실재를 재현할 수 없다면 작가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 고민의 흔적들을 생각하며 <남매>를 본다.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이재수는 왼쪽 손에 칼을 들고 앉아 있다. 단발(斷髮)을 하지 않았으니 상투를 튼 모습이다. 이순옥은 남색 치마와 분홍색 저고리를 입고 이재수의 왼편에 서있다. 화면 왼편에 작게 고종황제가 보인다. 하얀 꽃잎 분분히 떨어지는 화면의 중앙에 자리잡은 남매의 모습이다. 얼마나 닮았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용하다. 120년 전에 남겨진 얼굴들이야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 준비를 위해 조사했던 적은 수의 사진 도판들뿐이다. 충분한 참고가 될 수 있지만, 완전한 복원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의 재현을 이명복은 한 번도 함께 서 있어보지 못한 남매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남매다. 이순옥이 철이 들 무렵에는 이미 이재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평생 오빠를 사무치도록 떠올렸던 어머니의 하소연으로만 들었던 오빠의 모습이었다. 이승에서는 보지 못한 인연이 <남매>에서 맺어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기억은 충만해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수범, 양미경, 이준규 등의 작가들의 작품도 눈에 띈다. 양미경의 <한 홉의 물과 쌀, 한 치의 땅, 한 틈의 빛, 자유를 향한> 연작은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갈망을 담아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자유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다. 물 한 홉과 한 홉의 쌀, 한 치의 땅, 한 틈의 빛, 그 작은 하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자유다. 하나의 자유, 하나의 갈망. 그 하나의 염원이 결박을 풀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사진=김동현. ⓒ제주의소리
이명복 작 '남매'. 사진=김동현. ⓒ제주의소리

1901년 신축항쟁은 그 단 하나의 염원으로 들었던 횃불이었다. 잘 난 이들만 목소리를 높인 것도 아니다. 못난 놈들만 몰려 나간 무모함도 아니었다. 분노는 평등했고 횃불은 뜨거웠다. 대숲이 뿌리로 이어져 끈질기게 세상으로 퍼져가듯 싸움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120년 전의 시간, 우리는 싸우지 않고 어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싸워야 할 때 싸우고, 분노할 때 분노해야 하는, 제주 역사가 품은 그 마땅한 시간을 신축의 그 해,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기억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오늘로 살아내는 현재의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늘의 기억이 우리의 몸과 살을 만드는 역사의 섭생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신축항쟁을 그리는 이유도, 신축항쟁을 그려내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제를 오늘로 만드는 충만한 범람이며, 오늘을 내일로 나아가는 하는 역동이다.

# 김동현

문학평론가.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대학교 국문과와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국민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 우리 안의 식민지》, 《제주, 화산도를 말하다》(공저), 《재일조선인 자기서사의 문화지리》(공저) 등이 있다. 한때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제주, 오키나와를 중심에 두고 지역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제주 MBC, 제주 CBS 등 지역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사평론가로, 제주민예총에서 정책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중국어, 일어, 영어 번역본은 추후 보강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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