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재판부 "위험운전 인정되지만, 기소하지 않아 판단 못해"...멋쩍은 검찰

법원이 제주에서 2년전 발생한 소위 ‘오픈카 사망사고’ 피고인에 대한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초 경찰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위험운전치상)’ 혐의로 송치한 사건을 위험운전치사가 아닌 살인 혐의로 바꾼 검찰이 멋쩍게 됐다.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장찬수 부장판사)는 16일 살인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인천)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살인 혐의는 무죄, 음주운전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2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했다. 또 A씨에게 160시간의 사회봉사와 40시간의 준법운전 강의 이수를 명했다. 

A씨는 2019년 11월10일 오전 1시20분쯤 면허취소 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118% 상태로 제주시 한림읍 귀덕초등학교 인근에서 ‘오픈카’를 몰다 경운기와 연석 등을 들이 받았다. 

이 사고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채로 보조석에 타고 있던 피해자이자 여자친구인 B씨가 차 밖으로 튕겨 나갔고, 수개월간 집중 치료를 받던 B씨는 2020년 8월23일 숨졌다. 

B씨가 사망하기 전 경찰은 A씨에게 위험운전치상과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 받아 수사하던 검찰은 B씨가 사망함에 따라 혐의를 ‘위험운전치사’가 아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이별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B씨에게 불만을 품은 A씨가 고의성을 갖고 범행했다는 판단에서다. 

검찰과 A씨 측은 살인 고의성을 두고 다퉜고, 재판부는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망사고에 대해 형사처벌받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살인 아닌, 위험운전치사 혐의라면

형사소송법 제298조(공소장의 변경)에 검사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공소장에 기재한 공소사실 또는 적용법조의 추가, 철회 또는 변경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법원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허가해야 한다. 

또 법원은 심리의 경과에 비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면 공소사실 또는 적용법조의 추가·변경을 요구해야 한다. 

‘공소사실의 동일성’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적용된 공소사실에 대해 방어하던 피고인 측에게 다른 공소사실을 들이밀어 선고한다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해치는 행위다.  

검찰이 A씨를 기소할 때 적용한 살인 혐의는 ‘고의범’으로, 경찰이 검찰에 송치할 때 적용한 위험운전치사 혐의는 ‘과실범’으로 분류된다. 

오픈카 사망사고에 대해 재판부는 직권으로 공소사실을 변경할 수 없는 사건으로 판단했다.  

실제 재판부는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차례 검찰 측에 예비적 공소사실로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요구했지만, 검찰 측이 거부했다. 

예비적 공소사실이란, 살인 혐의로 기소했지만 살인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위험운전치사’ 혐의는 인정돼야 한다는 취지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예비적 공소사실로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적용했다면 이날 선고 결과가 달라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살인 혐의가 무죄라 하더라도 위험운전에 따른 사망사고에 책임을 물어 A씨에 대한 형량이 더 높아질 수 있었다. A씨 측도 음주운전과 자신의 과실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점에 대해서는 수차례 인정했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A씨)의 위험한 운전으로 동승자가 목숨을 잃은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 다만, 기소되지 않은 혐의에 대해 재판부가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검찰이 재판 과정에 예비적 공소사실로 위험운전치사 혐의만 추가했어도 A씨에 대한 선고가 달랐을 것이란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제주지방검찰청 관계자는 “증거관계와 법리를 엄정히 검토해 살인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다. 선고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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