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37) 구좌읍 송당리 '독립서점 북덕북덕'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고봉선 작가가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글] 

커피 향이 유난히 더 좋은 날이 있다. 여기엔 날씨도 따르지만 널따랗고 숲속 같은 분위기도 한 몫 한다. 이번에 내가 찾은 곳, “독립서점 북덕북덕”에서 마시는 커피가 그랬다. 책방지기 박장현 씨가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자 너울너울 흐르는 드립 커피 향이 내게로 와 안겼다. 커피 향이 유난히 더 좋은 날이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독립서점 북덕북덕으로 들어가는 골목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처음엔 북스테이로”

처음 봤을 때, 책방지기는 제주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부산이 고향이란다. 2015년에 제주로 와서 7년 차가 된 그는 이제 막 40대로 접어든 잘생긴 청년이었다.

딱히 목표나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제주에 왔던 건 아니다. 여행이 좋아서도 아니었고, 어디 발붙일 곳을 찾아야겠다는 의식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막연한 생각으로 제주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제주도에서 먹고살 일을 찾아야 했다. 

제주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우선 제주에 관한 책을 구매하며 읽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제주에 관한 책들이 쌓였다.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면서 그 책들로 북스테이도 함께했다. 

대지는 꽤 넓었다. 그래서인지 세 채의 집이 들어앉았어도 마당이며 주차장은 시원스레 넉넉했다. 정서적인 분위기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숲이라고 해도 될 만큼 오래된 나무도 많다. 세 채의 집 중 살림집이었던 두 채는 게스트하우스, 축사였던 한 채는 북스테이가 되었다. 

의외였다. 고객들의 호응 속에 북스테이의 선호도는 날로 높아졌다. 게다가 독립출판물들을 접하다 보니, 많은 작가가 자신의 책을 입점하고 싶어 했다. 공식적으로 책방을 오픈하게 된 이유다. 

이곳 주민이 되고, 흔히 말하는 텃세라는 것도 느껴보지 못했다. 텃밭에 있는 것을 갖다 먹으라고 하는 등 이웃은 모두 친절했다. 때로는 제주의 풍습도 알려 주셨다. 예를 들면 돌담이 무너지면 어떻게 쌓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처럼 외지인이라 모르는 것을 알려 주는 등 이웃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셨다. 여기엔 아마 그의 인상도 한몫할 것이다. 잘생긴 얼굴에 선해 보이는 인상, 누구라도 이웃으로 함께하고픈 사람이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살림집이었던 두 채(왼쪽과 가운데)는 게스트하우스이고, 축사였던 한 채(오른쪽)는 책방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풍부한 햇살과 특이한 방명록”

정신적이든 자연적이든 삶에 있어서 햇살은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그런 햇살이 독립서점 북덕북덕에는 풍부했다. 모든 것 차치하고 이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행 효과는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성향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도 여기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는 손님이라면 백 퍼센트 책방을 이용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손님들은 이곳에서 책을 읽고 작업도 하면서 휴식을 누린다. 

이곳 송당을 찾는 사람들은 숲길을 걷기 위해서 혹은 오름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게스트하우스와 책방을 겸한 이곳은 최적의 공간이다. 뒹굴고 싶으면 뒹굴고, 앉고 싶으면 앉고, 눕고 싶으면 누울 수 있는 동그랗고 넓은 야외 의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많다.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공간이다. 

우리는 대부분 책방이라고 하면 책을 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방지기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책방은 책을 판다기보다 책을 읽는 곳이다. 그렇다고 도서관의 개념은 아니다.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가지고 와서 읽다가 가는 손님도 있다. 그런 손님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탁 트인 공간으로 비쳐드는 햇살, 답답함이라고는 눈을 비비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차를 마시면서 본인이 가지고 온 책이든 서가에 있는 책이든, 눈길 닿는 대로 손길 닿는 대로 꺼내서 읽는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대단한 만족이다. 이걸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이 또한 즐거움이다. 이런 손님이 많다는 게 북덕북덕의 특징이다. 책방지기는 손님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 

제주와 관련된 책은 천 권이 넘는다고 한다. 문학사며, 역사, 여행 정보 등 장르도 다양하다. 책방지기는 이 많은 책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다. 그만큼 읽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제주 관련 책을 읽는다고 하여도 몇 권만을 접한다. 그러나 책방지기는 다양한 분야의 제주 관련 책을 읽으며 제주를 알아갔다. 그렇게 자료수집차 모았던 책은 북스테이에서 책방으로 등업되었다.

제주 관련 책을 읽으면서 책방지기에게 가장 강렬하게 와닿았던 건 제주4.3과 제주신화였다. 외지에서 온 젊은이임에도 제주를 섭렵하다시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제주를 알아가는 그가 기특하기도 했고, 또 고마웠다.

대부분 방명록이라고 하면 따로 준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곳의 방명록은 특이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리창과 유리벽이다. 이는 책방지기만의 아이디어다. 그는 마음껏 방명록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까지 마련해 놓았다. 연차가 쌓인 방명록은 이제 독립서점 북덕북덕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주차장 알림 표시와 이용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책방 북덕북덕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북덕북덕의 의미”

북덕북덕? 사전을 찾아보았다. 한곳에 많은 사람이 모여 매우 수선스럽게 뒤끓는 모양이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북적북적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북덕북덕은 좁은 곳에서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차이가 있었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찾아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일본어에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댁(お宅)’이란 뜻을 지닌 오타쿠(お宅, おたく)가 있다. 오타쿠의 한국 발음이 덕후인 셈인데, 이는 마니아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오타쿠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한국에 넘어오면서 만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한 분야에 마니아 이상으로 심취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요약하면 북덕북덕은 오타쿠의 한국 발음 덕후에서 따온 마니아란 뜻의 ‘덕’과 책을 뜻하는 ‘북(BOOK)’이 합쳐진 말이다. 한마디로 책 마니아란 뜻이다. 

실제로 책방 북덕북덕에 오는 손님들은 책 마니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책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독립서점 북덕북덕을 방문할 땐 책을 구매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아도 된다. 그저 읽고 싶은 책을 읽다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구매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꽂아 놓으면 그만이다. 입장료 1만 원으로 음료와 간식을 먹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마당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독립서점 북덕북덕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의외의 책”

책방마다 판매되는 책들이 다르지만 같은 책들도 꽤 있다. 그런데 이곳에선 지금까지 다른 책방에서 전혀 보지 못했던 의외의 책이 눈에 띄었다. 작고 약한 존재라도 존중되어야 하는 생명의 소중함이 주제인 엘윈 브룩스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이다. “샬롯의 거미줄”은 전 세계 열풍을 일으킨 베스트셀러로, 1952년 출간 후 15개국 23개의 언어로도 번역되었다. 태어나 작고 약하다는 이유로 죽을 뻔한 아기 돼지 윌버, 작고 흉측한 외모의 거미 샬롯, 당찬 여자 아이 펀이 어우러져 따뜻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 책이 유독 눈에 띄었던 것은 내겐 낯익은 책이면서도 헌책인데 세 권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수업할 때 샬롯의 거미줄이 필독서로 선정되었다. 수업 전에 아이들과 영화를 봤는데 잊히지 않는 ‘펀’의 대사가 있다. 

어미의 젖꼭지는 열 개뿐이다. 그런데 새끼는 열 한 마리가 태어났다. 가장 약한 새끼, 무녀리가 빨 젖은 없다. 이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이다. 펀의 아버지 애러블 씨는 도끼를 들더니 무녀리를 안고 헛간을 나선다. 펀이 막아선다. 그리고 외친다.

“작게 태어난 게 죄인가요? 나도 작게 태어났으면 죽였겠네요?”

약하다고 죽이는 건 옳지 못한 일이라며 아빠에게 외치던 펀의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떻게 이 책이, 더군다나 헌책이 세 권이나 있을까. 책방에서 판매되는 책은 책방지기가 준비한 것도 있지만 그 외도 많다. 우선 책을 들고 와서 읽던 사람이 일부러 두고 가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살롯의 거미줄”이 이 경우였다. 책방을 방문했던 손님이 책을 보내주는 일도 있다. 책은 공간이 필요하다. 공간이 부족하면 더러는 처리할 수밖에 없다. 마침 그런 경우에 있는 사람이 기증하는 것이다.

내게도 책은 반가우면서 또 골칫거리다. 책꽂이가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공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책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공간은 언제나 그대로다. 그렇다고 책을 버릴 수도 없다. 이전처럼 책이 귀한 게 아니다 보니 누군가에게 줘도 썩 반기지도 않는다. 기증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런데 이렇게 필요한 곳을 만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안에서 바깥을 바라본 풍경이다. 유리에는 방문객들의 방명록으로 가득하다. 책방지기는 방문객들을 위해 도구까지 갖춰놓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북스테이와 책방”

북스테이로 있을 때와 서점이란 이름을 내건 후의 차이는 크다. 무엇보다도 서점이 되고 나서 작가들로부터 책을 입고하고 싶어 하는 연락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제주 작가만이 아니다. 육지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독립출판물은 수없이 나오지만 입점은 쉽지 않다. 책이 출판되면 작가들은 직접 검색하고 입고 제안을 보낸다. 자비 출판과 독립출판이 많은 요즘이다. 출판해도 판매처가 없다는 뜻이다. 작가 스스로 판매처를 뚫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책방이나 작가는 서로 윈윈하는 셈이다.

대형서점에 들어가지 못하는 책들, 팔릴 기회는 없다. 작은 책방에라도 입고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을 입고할 수는 없다. 책방지기의 취향에 맞아야 한다. 그러므로 입고를 원하는 책은 일일이 선별해야 한다. 북덕북덕의 책방지기에게는 제주와 관련이 되어 있느냐 아니냐가 가장 큰 선별기준이다. 

짐작했다시피 독립서점 북덕북덕에서는 유통과정을 거쳐 책을 주문하지 않는다. 작가들의 입고 제안을 살피고 선별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워낙 많은 연락이 오기 때문에 선별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책이란 게 그렇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은 있으나, 책이라는 사실만 같을 뿐 장르가 다른 것처럼 취향도 모두 다르다. 손님 중에서도 책이 잔뜩 꽂혀 있음에도 ‘볼 것도 없다’고 하면서 돌아서는 사람이 있고, “우와! 책이 진짜 많다. 우리 집에 이만큼 있었으면 좋겠다.” 하며 감탄사를 내뱉는 사람도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은 기존에 축사였던 건물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고양이와 독서모임”

2년 전부터 아메리칸 쇼트헤어 종인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예전에 난 고양이라면 무조건 기피하는 현상이 있었다. 여기엔 예부터 전해오는 고양이에 대한 전설과 특히 애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막내아들이 덥석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분양받아 왔다. 자식이 뭔지, 아들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자 난 아무렇지도 않게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독립서점 북덕북덕에도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페르시안 종인 이 고양이는 참으로 우아했다. 영업장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낯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을 보면 반가워하고, 예뻐하는 것도 안다. 의외로 애교도 많다. 주인을 보면 야옹야옹 하면서 반길 줄도 안다. 이 두 마리의 고양이는 이제 책방에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다.

책방 앞에도 두 개의 고양이 밥그릇이 놓여있었다. 책방지기가 캣맘이라는 뜻이다. 내가 책방에 있을 때 길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 마리의 새끼를 거느리고 있었다. 길고양이는 책방 앞이 자기 집이라도 되는 듯 자리 잡고 새끼들에게 젖을 먹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이들은 도망가지도 않았다. 아마도 캣맘의 손길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았다.

책방지기가 이끄는 건 아니지만, 책방에서는 여러 팀의 독서 모임도 이뤄진다. 공간을 대여해주는 것이다. 동쪽에서 이뤄지는 몇몇 독서 모임은 북덕북덕만이 아니라 여러 군데의 책방카페를 순회하면서 이어간다. 이들 모임의 구성원들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혼자만 읽는 것과 같이 읽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 깊이가 다르다. 이게 곧 독서 모임의 효과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고양이 한 마리가 책방 탁자에서 놀고 있다. 뒤편으로 책방지기가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고양이 한 마리는 천장에 올라가서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중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은 예약제로”

책방에 오는 손님들에게 그래도 하루 한두 권씩은 책을 판매하는 편이다. 문제는 한두 권 판매로 책방을 꾸려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작은 책방이 버티기 힘든 이유이면서 순수하게 책방만 하는 곳이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브런치 카페나 디저트 카페, 소품 등 다른 업종과 같이하는 곳이 많다. 그나마 책방을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책방에서는 하루에 책 한 권 팔기도 땀나는 실정이다. 

독립서점 북덕북덕은 오픈할 때부터 아예 예약제로 시작했다. 예약제만이 책방을 효율성 있게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4년 전, 책방지기는 제주도에 있는 책방이란 책방은 거의 다 가 봤다. 대부분 하염없이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좋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책방지기가 보기엔 비효율적이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 온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문을 열고, 또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건 영업이 아니다. 답은 예약제밖에 없었다. 예약한 시간에 예약한 손님만 받기로 했다. 예를 들어서 예약한 팀이 두 팀이면 그 팀의 일원만 이용할 수 있다. 운이 좋은 손님은 1만 원이란 입장료로 책방을 전세 낼 수도 있다. 한 잔의 차와 함께 책을 읽다가 고양이랑 놀면서 즐기는 등 혼자서 공간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시간대별로 한 팀 두 팀 정도만 예약을 받지만, 인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예약제로 나가자 책방은 종일 문을 열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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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독립서점 북덕북덕 내부 헌책 판매대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경험도 없으면서 책방지기는 어떻게 예약제를 생각했을까? 책방을 시작하기 전, 그가 둘러보았던 책방은 대부분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구경하는 곳이었다. 들어와서 소품 가게를 구경하듯이 쓱 훑어보고는 사진이나 한 장 찍고 나가버렸다. 사진이라도 안 찍고 가면 마음에 드는 책이 없어서 그러나보다 할 텐데, 그도 아니었다. 이것만큼 책방지기를 힘 빠지게 하는 건 없다. 이는 어찌 보면 책방지기에 대한 모독이었다. 손님과 책방지기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가 되어야 했다.

책방지기는 책방을 예약제로 시작한 곳은 북덕북덕이 처음일 거라고 말한다. 처음엔 책방이 무슨 예약제냐면서 어리둥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숲길을 걷다가 책방을 발견하고 들어오는 손님도 하루 열 명 정도는 된다. 이들도 예약제라는 사실을 알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약제로 바뀌는 곳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의식도 바뀌는 추세다. 

숙박업소를 하면서 책방지기는 깨달은 게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들고 다니며 좋아하는 공간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온전히 책에만 집중하고 싶어 했다. 책방지기는 이런 책 마니아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기로 했다. 예약제는 그런 분들과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예약제로 시작하자 자연스레 수요도 따랐다. 

그렇다고 모든 책방이 예약제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책방이 주업이거나 다른 업종과 같이하는 곳은 어차피 종일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책방지기이면서 강의를 나간다거나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는 다르다. 그들에겐 예약제가 썩 괜찮은 방법이 될 것도 같다. 독립서점 북덕북덕은 얽매이지 않기 위해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독립서점 북덕북덕 주차장의 일부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염원 아닌 염원”

나 역시 마을책방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책방을 다니기 전엔 책도 기왕이면 싸게 사는 게 경제적이며 또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책방에 다니면서 이런 나의 의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마을책방을 다니기 전, 나는 한 달에 평균 10만 원 상당의 책을 인터넷으로 구매했었다. 그러나 이 책들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그저 읽어야 할 책들이었다. 그런데 책방에서 만나는 책은 다르다. 일 예로 이번 독립서점 북덕북덕에서 나는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저자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 책임편집, 역자 정지인, 출판 마로니에북스)”을 구매했다. 이 같은 책은 동네책방이 아니고서는 발견할 수 없다. 나는 중학생들에게 세계사 관련 영화를 종종 보여주고 있다. 영화 검색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찰나 이곳에서 발견한 이 책이 얼마나 반갑던지. 마을책방의 힘이다. 점차 많은 이가 마을책방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게 되고, 마을마다 작은 책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염원 아닌 염원도 생겼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독립서점 북덕북덕에는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외에도 길고양이 가족이 있다. 이 고양이는 수컷이고, 암컷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대부분 길고양이는 사람을 보면 도망가는데, 이곳의 길고양이는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길고양이도 캣맘인 책방지기가 챙기고 있었는데 그 영향인 것 같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휴일과 책”

휴일에 책방지기는 뒹굴뒹굴 뒹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날씨가 유혹할 때는 해변으로 숲으로 드라이브를 떠난다. 이 얼마나 멋진 젊음인가! 때로는 다른 책방에 가서 어떻게 운영하는지도 살핀다. 이 또한 얼마나 사업자다운 행동인가! 누가 뭐래도 마음껏 뒹굴면서 원초적인 본능으로 지내는 게 가장 휴식다운 휴식이다.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할 때였다. 오리엔테이션에서 회장님이 말씀하신 한 대목이 떠오른다. 독서수업을 하노라면 읽어야 할 책이 만만찮다. 그런데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하다. 이때 회장님께서는 일주일 중 하루는 종일토록 책만 읽는 날로 정하면 좋다고 하셨다. 하루에 일주일 치의 책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아니, 휴일은 오히려 더 바쁘다. 그러나 보니 지금의 나는 밤새는 게 일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 참말로 속상한 일이 있었다. 이때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빠져 속상했던 일은 잊어버렸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 책은 시름을 잊게 해주는 존재다. 책방지기에게 책은 무엇일까? 그에게 책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다. 그렇다. 혼자 있어도 책과 있는 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휴식을 취하면서 캠프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독립서점 북덕북덕은”

책을 좋아하시나요? 고양이는요? 그렇다면 지금, 음료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는 곳 구좌읍 송당리 ‘독립서점 북덕북덕’으로 가보세요. 우아함을 자랑하는 페르시안 종의 고양이와 함께 숲과 오름이 있어서 일석다조의 힐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책을 판매하기보다는 도서관에서처럼 책 읽는 풍경을 더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있습니다. 단돈 1만 원으로 휴식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찾아가는 길: 제주시 구좌읍송당6길 38-1 제2동
블로그: blog.naver.com/bookotaku
예약: 전화(010-6254-3040)와 블로그 양쪽에서 가능합니다.
이용 요금: 1인 1만 원 기준이며 음료와 간식이 제공됩니다(성인, 청소년, 유아 동일).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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