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백신 접종으로 괜찮아지나 했는데 백신 효과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코로나 장기화에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더해갔고, 평범한 일상에 대한 그리움은 커졌다. 코로나와 어쩔 수 없이 공존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정부 정책이 ‘위드 코로나’로 전환된 배경이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가 발생하고, ‘With Corona’ 정책 하에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모임 인원과 영업 시간을 제한하는 조치가 다시 내려졌다. 하지만 이전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코로나만큼은 아니어도 최근 우리에게 익숙해진 용어가 있는데, ‘양적 완화’라는 단어다. 최근에 발생한 경제 위기에 처방전으로 자주 쓰였던 통화정책인데, 코로나 위기와 맞물려 다시 등장했다.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는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등의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직접 풀어 경기 부양을 꾀하는 통화정책이다. 일본이 아베노믹스라는 이름하에 2000년 이후 이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최근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해 6년 동안 3차례에 걸쳐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양적 완화와 양극화

사람을 위해 돈이 있는 것인데, 돈이 돈을 낳는 세상에선 그렇지 않은가보다. 양적 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나온 돈은 실물경제를 죽지 않을 만큼만 살렸다. 풀린 돈은 생산과 고용 회복으로 가지 않았다. 코로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미치지 않았다. 양적 완화로 풀린 돈은 코로나 위기를 투자 기회로 삼는 이들의 손에 넘겨졌다. 엄청나게 늘어난 돈은 부동산과 주식으로 몰렸다. 그러면서 이 땅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대면 경제는 침체된 반면, 언택트 경제는 호황기를 맞아 상권의 양극화가 초래됐다. 

자영업자의 아우성이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영업 제한이 단기간이면 감내할 수 있겠지만 이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었다. 그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어쩔 수 없는 조치라지만,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방편은 너무나 적다. 돈이 풀렸다고 하는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양적 완화 정책이 트리클 다운 정책과 효과 면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트리클 다운(trickle-down)’은 ‘낙수 효과(落水效果)’로 번역되는데,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뜻이다. ‘트리클 다운 정책’은 정부가 투자 증대를 통해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인 경기가 좋아지면서 경제발전과 국민복지가 함께 향상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위로 부은 물은 넘쳐나지 않고 위에서 고이면서, 아래에서 바라는 낙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트리클 다운 효과가 없는 것처럼, 양적 완화를 통해 풀린 돈은 부동산 시장, 주식 시장에만 머물고 실물 경제로는 잘 흘러가지 않는다.  

사진=pixabay.
사회 양극화가 이 시대의 화두라면, 이를 극복할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양적 완화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꼭 필요한 정책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사회적 약자를 직접적으로 돕고 지원하는 실질적인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사진=pixabay.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 중앙은행은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 테이퍼링을 한다. 양적 완화 후에는 테이퍼링이 반드시 뒤따른다. ‘테이퍼링(tapering)’은 수도꼭지의 물줄기를 줄인다는 뜻으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자산매입 프로그램 축소 등의 조치를 통해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양적 완화와는 반대 효과를 낳는다. 양적 완화는 제로 금리에 가까운 금리 인하, 자산매입 증대를 통해 돈을 푸는 반면에, 테이퍼링은 금리 인상, 자산매입 축소를 통해 돈을 수거한다. 양적 완화는 돈을 풀면서 경기 부양을, 테이퍼링은 돈을 회수하면서 인플레이션 방지를 꾀한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크게 출렁인다. 

테이퍼링이 본격화되면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 큰 일이 일어난다. 테이퍼링으로 기준 금리가 인상될 때, 돈을 빌려 자영업을 간신히 유지한 사람들은 금리가 인상됨으로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자영업자는 코로나로 인한 영업 제한으로 피해를 입고, 이후 금리 인상에 따른 고통을 받는다. 시간을 두고 이중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이는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도 해당된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인상을 시작하면 세계에 풀린 달러가 미국으로 복귀하면서 재정적으로 취약한 몇몇 국가들은 우리나라 IMF 위기와 같은 위기를 겪게 된다. 올해 5월과 6월 2회에 걸쳐 방영됐던 KBS 다큐 인사이트 ‘팬데믹 머니’에서 (최근 ‘팬데믹 머니’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팬데믹 머니’ 다큐멘터리는 꼭 시청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최근 일어난 신흥국 경제 위기의 본질’에 대해 안유화 성균관대학교 중국대학원 교수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미국은 국내 경제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통화 완화정책을 취하고 국내 문제를 극복하면 거기에 따른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는데 그걸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왜냐면 달러는 해외로 수출이 되니까. 대신에 (달러가) 흘러 들어갔던 신흥국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되는 거죠. 왜냐면 부동산이 올라가고 금융자산의 가격이 올라가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미국에서 양적완화 했던 것을 다시 거둬들이면 신흥국들의 올랐던 자산 가격이 떨어지게 되면서 그 나라에 경제 위기가 오고 다시 미국이라는 안전 자산처로 (달러가)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게 과거 40년 동안 전 세계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극복되는 과정에서 많은 신흥국이 겪었던 위기의 본질이었던 거죠.”

양적 완화 조치가 과연 올바른 정책인지 묻고 싶다.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좋은 방안이라고 하나, 그 돈이 실물경제가 아닌 화폐경제만 살찌운다면 과연 바른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규모 부양책은 코로나 경제 위기로 고통 받는 약자를 직접적인 대상으로 해야 한다. 양적 완화 조치는 경기 침체를 벗어나려는 극약 처방과도 같은 것이나,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은 실로 심각하다. 안 그래도 문제되는 사회 양극화를 더 벌어지게 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는 점점 더 멀어진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은 어디에?

전통적인 재정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 케인즈 식의 재정정책으로 돌아가야 한다. 재정지원금을 확대하고, 코로나 상황에 어렵더라도 고용 및 취업 등에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양적 완화 정책을 피할 수 없다면, 그만큼 더 재정지원금을 늘려야 한다. 

양적 완화 정책은 경기 회복에 필요한 정책일지 몰라도, 매우 비윤리적인 정책이다. 돈은 풀렸는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는가? 부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고, 빈자의 호주머니는 텅텅 비었다. 있는 것마저 내놓게 되었다. 양적 완화 정책의 후유증은 이후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들이 떠안는다. 돈이 엄청나게 풀린 만큼 그것을 거둬들일 때 생기는 후유증은 풀린 돈만큼 커진다. 그 후유증은 사회적 약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IMF 때를 생각해보면 될 것 같다. 부자들은 헐값에 나온 부동산을 경매를 통해 구입했고, 주식을 사들였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하고 사회 안전망은 무너졌다. 

노동가치는 땅에 떨어졌고 자본가치는 하늘로 치솟았다. 현실에 드러나는 여러 지표들을 보면서,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할 청소년들은 몇 명이나 될까? 양적 완화가 경제 대침체에 대응하는 방안이라고는 하나, 이로 인해 양극화라는 상처는 노동과 자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로새긴다. 풀린 돈이 한쪽으로만 흐르는 세상에선 노동과 자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기는 무척 어렵다.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회 양극화가 이 시대의 화두라면, 이를 극복할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양적 양화 정책과 그 후의 테이퍼링 정책’은 사회 양극화를 더 심화시킨다. 커다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물론 달러 패권을 쥔 미국이 이 정책을 취하는 이상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양적 완화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꼭 필요한 정책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사회적 약자를 직접적으로 돕고 지원하는 실질적인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경제 회복 후 사회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데, 이를 과연 바람직한 정책이라 할 것인가? 양적 완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시행하는 마당에 ‘기본소득 정책’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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