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98) gradually 서서히

grad·u·al·ly [grǽdʒuǝli] ɑd. 서서히 
새헤에는 아멩 바빠도 혼 걸음씩
(새해에는 아무리 바빠도 한 걸음씩)

gradually에서의 grad-는 ‘걷다(=walk)’를 뜻한다. 이 grad-라는 어근(語根)에서 나온 낱말로는 grade ‘등급(等級)’, graduate ‘졸업(卒業)하다’, upgrade ‘승격(昇格)시키다’ 등이 있다. gradually의 어원적 의미(etymological meaning)는 ‘걸어가는 속도로’이다. ‘한꺼번에(=all at once)’가 아니라 ‘단계를 한 계단씩 밟는(=step by step)’을 뜻한다. 영국의 작가 T.H. White(1906-1964)는 그의 저서 『Sword in the Stone』에서 인간이 ‘시간(時間)’이란 개념(notion)을 만든 이유를 다음과 같이 통찰(insight)하고 있다. 

Time is not meant to be devoured in an hour or a day, but to be consumed delicately and gradually and without haste.

(시간은 한 시간 혹은 하루 동안에 빨리 써버리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나누어 천천히 쓰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두르고 있다. 아니, 서둘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입에 달고 사는(get around with something attached to one's mouth) 말이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This is not the time for this).”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 때라는 것인가. 우리들의 ‘지금’은 이처럼 언제나 텅 빈(empty) 상태로 있다. 오직 미래를 위한 준비로 바쁘다. 초등학교(primary school)에서는 중학교(middle school)를,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high school)를,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로 바쁜 것이다. 좋은 대학이 좋은 직장(well-paid job)을 보장하고, 좋은 직장이 우리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보장해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연금(pension)이나 적금(installment savings) 등 각종 보험(insurance) 같은 것들에 의해 ‘오늘’을 조금씩 깎아내며 ‘내일’을 사들이려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불투명한 앞날(uncertain future)을 투명한 앞날로 만들기 위한 것이겠지만, 정말로 불투명한 것은 ‘내일’이 아니고 ‘지금’이며, 어두운 곳도 ‘저 멀리’가 아니라 ‘자기 발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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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서두르고 있다. 아니, 서둘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아무리 바빠도 한 걸음씩 자기만의 pace를 유지하도록 하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Life is the pace, not the race.
(인생은 이기는 게 아니라 즐기는 거지.)

- 미국 드라마 《Desperate Housewives》 중에서 -

영어에서 race가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한 “속도 경쟁(competition of speed)”을 뜻한다면, pace는 걸어가는 속도로서의 “자기만의 속도”를 뜻한다. “삶에는 속도를 높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다.”라는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의 말도, “인생은 속력이 아니라 방향(direction)이다.”라는 괴테(1749-1832)의 말도 삶에서의 속도는 race가 아니라 pace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충동적으로(impulsively) 급히 하는 일치고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불안(anxiety)과 서두름(haste)을 통해 얻는 것도 전혀 없다. 일을 차분히 제대로 하다 보면 속도는 언제나 충분히 따라오게 되어 있지 않은가. 다가오는 새해에는 아무리 바빠도 한 걸음씩 자기만의 pace를 유지하도록 하자.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 김재원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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