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55)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모슴 : 마음
* 달르곡 : 다르고, 같지 않고

어떤 일을 시작할 때와 그 일을 끝낼 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다. 어쩌면 기미(機微) 곧 낌새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시작이 반이라 하듯 일을 시작할 때는 그 일을 실현하려는 욕구로 충만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도 하려니와 정신적으로 몰두하게 마련이다.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성취동기가 강렬할수록 그런 행태 또한 강하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집념을 가지고 억척스레 시작한 일도 뜻한 것처럼 진행되지 못하면, 점차 느슨해지면서 애초의 적극적 자세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다.

시종여일(始終如一)이란 말은 쉬운데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초심(初心)을 잃지 말라, “혼번 호슴 먹어시민 끝꺼지 혼 모슴으로 하여사주.(한번 마음 먹었으면 끝까지 한마음으로 해야지.)” 한 어른들 말씀이 대충 해본 말이겠는가. 

일을 흐지부지하다 실패하기 쉬우니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지녀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운, 실로 진정이 담긴 말이다. 

레미콘 차량이 로켓 모양의 커다란 통을 쉴 새 없이 빙글빙글 돌리며 길거리가 좁다고 달린다. 건축 현장의 독촉으로 숨이 가쁜 모양새다. 급하거든 짊어진 그 통이라 멈추고 갈 일이지. 시종일관 단 한 번 쉬는 일이 없다. 

기회가 있어 업자에게 물었더니, 그럴 수밖에 없게 돼 있었다. 

레미콘은 시멘트와 모래를 적정한 비율로 배합한 것으로, 건축에 없어선 안되는 필수적인 질료(質料)다. 한데 현장까지 운반하는 과정에서 흔들어 주지 않으면 바로 굳어 버린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레미콘을 가득 채운 차량이 시종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작은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됐다. 작가라는 사람이 나태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글쓰기를 게을리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단절이 온다. 단절은 앞과 뒤를 잇는 유대를 끊어 놓는 것. 그 뒤는 퇴행과 추락이다. 그러니까 결국, 양질의 작품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진=픽사베이.
가진 게 있을 때 다르고, 가진 게 없을 때 다르기 쉬운 게 보통 사람의 마음이라 함이다. 중요한 것은 항상심(恒常心)을 잃지 않는 일일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비단 글쓰기에 그치랴. 학생들의 공부, 농부들의 농사, 상인들의 장사, 어부들의 조업 또한 매한가지다. 이런 소소한 일상다반사가 그러하거니, 행여 한 나라의 정사(政事)가 그런다면 이거야말로 망국지본이 아닐 수 없다. 나랏일이 아닌가. 

‘들어갈 때 모슴 달르곡, 나올 때 모슴 달르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 아닌가.

유사하게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실 때 모슴 달르곡, 엇일 때 모슴 달른다.(있을 때 마음 다르고, 없을 때 마음 다르다)’ 

가진 게 있을 때 다르고, 가진 게 없을 때 다르기 쉬운 게 보통 사람의 마음이라 함이다. 중요한 것은 항상심(恒常心)을 잃지 않는 일일 것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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