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동서남북 나뉜 제주섬] ② 표면화된 '동-서 갈등'...도시 인프라 개발속도 역차별 호소

서울의 세 배에 달하는 면적을 지닌 제주. 섬 한가운데 자리한 한라산의 존재로 인해 누대로 제주는 남과 북, 동과 서로 생활권이 뚜렷하게 나뉘었다. 이로 인해 인구 70만명에 불과한 제주특별자치도는 산남·북, 또는 동·서 지역간 크고 작은 갈등이 늘 상존해 왔다. 이미 해묵은 과제인 산남·북 갈등은 물론, '제주 제2공항' 논란으로 발현된 동·서 간 갈등은 제주의 지리적 특성과 행정적 구조에 기인한다. [제주의소리]는 임인년 새해를 맞아 지역갈등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 편집자 주

지난해 2월 제주지역 최대 갈등현안을 담판짓기 위해 실시됐던 '제주 제2공항 도민의견 여론조사' 결과는 여러 의미에서 지역사회에 큰 과제를 남겼다. 전체 도민사회는 반대 의견이, 제2공항 성산읍 주민들로 좁히면 찬성 의견이 우세한 결과가 나오면서 근 1년이 지나는 오늘날까지 갈등을 매듭짓지 못했다.

특히 여론조사 결과 발표 이후 제주 동쪽과 서쪽 지역 간 갈등 민심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제2공항 건설 기대심리가 반영된 탓인지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의 찬반 의견이 극명한 차이를 보이면서다.

당시 2개 기관에 의뢰한 여론조사 중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서는 제주시 동부 읍면지역에서는 제2공항 사업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53.5%로 '반대한다'는 41.0%에 비해 13.5%p 차이가 났고, 서귀포시 동부 읍면지역은 '찬성' 68.7%, '반대' 27.0%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반면 제주시 서부 읍면지역은 '반대'가 60.9%로 '찬성' 30.4%보다 2배 정도 높았고, 서귀포시 서부 읍면지역도 '반대'가 57.3%로 '찬성' 32.3%를 크게 앞섰다.

엠브레인퍼블릭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한 양상을 띄웠다. 제주시 동부 읍면지역은 '찬성' 54.1%, '반대' 39.1%, 서귀포시 동부 읍면지역은 '찬성' 71.2%, '반대' 26.2%로 찬성 의견이 주를 이뤘다. 반면 제주시 서부 읍면지역은 '찬성' 33.8%, '반대' 61.2%로 집계됐고, 서귀포시 서부 읍면지역은 '찬성' 35.4%, '반대' 59.5%로 상반된 결과가 도출됐다.

결국 전체 여론조사에서는 제2공항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 비율보다 더 높게 나타났고, 이로 인해 그동안 감춰졌던 불화까지 표면화됐다. 그동안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제주 안에서도 동쪽과 서쪽 지역 간의 불균형 문제는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해 2월 제주 제2공항 도민 여론조사 결과 발표 이후 제주 동쪽과 서쪽 지역 간 갈등 민심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제2공항 건설 기대심리가 반영된 탓인지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의 찬반 의견이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도민 전체 여론조사에서는 제2공항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 비율보다 더 높게 나타났고, 성산읍민을 대상으로한 조사에선 제2공항 찬성 의견이 반대 의견보다 높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는 상대적으로 서쪽보다 동쪽 지역의 발전 속도가 더뎠다. 최근의 추세도 마찬가지다.

부동산통계정보시스템 R-One에 따르면 2018년 1월 1일부터 2021년 12월 31일까지 제주지역의 평균 지가 변동률은 3.014%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읍면 지역 중에서는 제주시와 인접한 애월읍의 지가 변동률이 5.152%로 가팔랐다. 동쪽으로 동(洞)지역과 맞닿은 조천읍도 3.320%로 높았지만, 애월읍과는 차이가 확연했다.

이 밖에도 서쪽 지역인 제주시 한경면 1.635%, 한림읍 1.574%, 서귀포시 대정읍 5.275%, 안덕면 4.402%의 지가 변동률과 동쪽 지역인 제주시 구좌읍 3.607%, 서귀포시 남원읍 2.047%, 표선면 1.915%, 성산읍 1.622% 등으로 나타났다. 도서지역인 우도면(-0.591%)을 제외하고, 토지개발허가제한에 묶인 성산읍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차이를 보였다.

2010년에서 2020년까지 변화된 제주도 인구통계를 살펴봐도 애월읍 2만8381명→3만7898명, 한림읍 1만9988명→2만4609명, 대정읍 1만6934명→2만3451명, 안덕면 9749명→1만2523명으로 늘어나는 동안 조천읍 2만1255명→2만5905명, 구좌읍 1만5071명→1만6129명, 성산읍 1만4483명→1만7072명, 표선면 1만1018명→1만2691명으로 증가하는 수준에 그쳤다.

결과론적으로 접근하면 개발 속도의 차이는 여러 요인이 존재한다. 영어교육도시·신화역사공원 등 대규모 개발사업의 영향도 컸고, 제주공항의 위치가 서쪽으로 보다 치우쳐져 있다보니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도 주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상하수도·교통 등의 도시인프라 측면에서 상대적인 차이를 보였다. 

당장 옛 서부산업도로에서 왕복 4차로 확장 공사 이후 '평화로'로 이름을 바꾼 1135지방도는 서부지역의 젖줄이 됐다. 평화로의 완공 시기는 2002년이었다. 이에 반해 제주시에서 표선면을 연결하는 97번지방도 '번영로'의 완공시기는 2013년이었다. 가장 활발한 인구 유입과 개발이 이뤄지던 시기에서 비껴난 때다.

완만한 해안가를 거닐 수 있어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된 해안도로도 한 줄기로 쭉 연결된 서쪽 지역과는 달리 동쪽의 도로 상황은 열악하다. 해안으로 길이 뚫리지 않은 곳도 많고, 인도조차 조성되지 않은 곳도 부지기수다. 상하수도관이 연결돼있지 않아 개발 부담이 크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이는 곧 지역주민들의 박탈감을 불러일으켰다.

조천읍 주민 강현상(41)는 "육지에서 손님이 찾아와도 굳이 서쪽 지역으로 안내하게 된다. 동쪽으로 와봤자 여름철 함덕해변 말고는 모시고 갈만한 곳이 있겠나"라며 "주민으로써도 즐길거리가 있길 하나, 놀거리가 있길 하나. 조천의 밤은 항상 깜깜하다"고 하소연했다.

구글어스를 통해 바라본 한반도 야간 위성사진. 타원형의 제주섬은 서쪽에 비해 동쪽 지역이 상대적으로 어둡다.
구글어스를 통해 바라본 한반도 야간 위성사진. 타원형의 제주섬은 서쪽에 비해 동쪽 지역이 상대적으로 어둡다.

부동산 사업자 A씨는 "근본적으로 대규모 개발사업의 호재가 있었던 서쪽과는 달리 동쪽은 별다른 기회가 없었다. 교통이나 교육 등의 여건에 있어서도 선호도의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며 "동쪽지역은 환경보전지역이 많고, 산업적으로도 1차산업 비중이 높아 개발이 뒤쳐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설명했다.

A씨는 "동쪽은 교통이나 상하수도 기반시설이 약해 상권도 형성되지 않았고, 개발 부담도 훨씬 크다. 수도관 몇 십미터 연결하려다보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소요되는데 엄두를 낼 수 있겠나"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역대 도지사들이 대부분 제주 동쪽 출신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서귀포시 중문 출신의 원희룡 전 지사 이전, 이른바 '제주판 3김'으로 불리며 민선 도입 이후 도지사직을 나눠가졌던 우근민, 신구범, 김태환 전 지사의 고향은 각각 우도면, 조천읍, 구좌읍 등 죄다 동쪽 출신이었다. 이로 인해 동부 주민들은 상대적 역차별까지 호소하고 있다.

김병수 구좌읍 이장단협의회장은 "우리 지역은 인프라가 없다. 교통은 물론 주민들을 위한 교육이나 복지 인프라도 없다"며 "2010년도 들어서면서 서쪽으로 모든게 쏠리다보니까 이제 행정은 물론 의회에서도 우리 지역을 신경써주지 않는다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김 회장은 "다른 읍면에 비해 인구수가 너무 적어서 이러는 것 아니겠나, 그런 생각을 스스로 많이 하게 된다. 올해부터는 12개 마을이 뭉쳐서 활성화해보자 노력하려고는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무너져버렸다"며 울분을 토했다.

구좌읍 지역구의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원은 "억장이 무너져내린다. 한두번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기본 인프라는 물론, 국제자유도시 선도 프로젝트에 들어간 사업들까지 다 서부지역이다"라며 "동부지역은 중산간도로도 확장하지 못해 떠들고 있는 상황이다. 광령리에서 상가리까지 이어지는 중산간 도로는 이미 2014년에 4차선 확장 완공된 반면, 동쪽은 봉개에서 조천 구간까지라도 확장이 됐나. 삽질은 커녕 볼펜으로 선도 못 긋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노형을 중심으로 제주시가 팽창하다보니 동서균형 발전에 대한 관심도 없다. 이쪽에서만 주구장창 서러운 소리를 하는데, 자원순환센터며, 하수처리장이며, 쓰레기와 하수는 다 동쪽으로 보내려고 한다. 동쪽이 쓰레받기냐"라며 "선진화된 교육·의료 인프라라든지, 연구단지·산업단지가 됐든지, 지역에 파생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라고 고충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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