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56) 단 하나뿐인 고쟁이를 팔아도 아들 공부는 시킨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소중이 : 고쟁이
* 아덜 : 아들

이 말엔 깊은 속뜻이 내포돼 있다. 그 속뜻을 음미해야 말속에 스민 부모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낼 수가 있다.

‘소중이’가 어떤 옷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소중이는 (제주방언으로 표준어로는 ‘고쟁이’) 고쟁이라 해서 한복 입는 여자의 속옷의 하나다. 속옷 위, 단속옷 밑에 입는 아래 속옷으로, 통이 넓지만 발목 부분으로 내려가면서 좁아지고 밑을 여미게 돼 있다. 쉽게 얘기해 치마 안에 입는 헐렁한 반바지 모양의 옷인데, 여름철에 많이 입으며 바람이 잘 통하게 무명, 베, 모시 따위를 홑으로 박아 만들었다.

이 어떤 옷인가. 어미가 입던 치마저고리나 무슨 덧옷가지도 아닌 속옷이다. 팔아 돈살 옷이 없으니, 그 속옷이라 팔아 아들 공부시킬 학자금을 마련해야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아들 공부만은 시켜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담겨 있다. 배우지 못해 겪은 냉대와 설움 때문이다.

그렇지만 살아가는 형편은 결코 녹록지가 않다.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집안 사정이다. 오죽 힘들었으면 그 어머니, 자기가 입는 ‘속옷을 내다 팔아서라도’라 했겠는가.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촬영한 하귀국민학교 정문 앞 모습.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촬영한 하귀국민학교 정문 앞 모습.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어렵고 힘든 가운데도 방책을 찾는다 해서 궁여지책(窮餘之策)이라 해 오거니와 혹여 그 어머니(부모) ‘궁하면 통한다(窮則通)’고 굳은 믿음을 가졌던 건 아닐까.

자고이래 우리 제주는 자녀 교육열이 유난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굶어 가면서도 자녀 교육은 시켜야 한다고 여겼다. 지역에 있는 학교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이왕이면 육지 명문 학교에 진학시켜야 훌륭하게 성장해 좋은 직장을 갖게 되리라는 꿈을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야 자기들처럼 땅을 파며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실제로 밭을 팔거나 마소를 처분해 가며 자식 공부 뒷바라지한 예가 셀 수 없이 많고 많았다. ‘소중이’ 수준이 아니다. 다만 과거엔 아들과 딸 차별이 너무 심했다. 1950년대만 해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여자아이가 마을에 몇 명에 불과했으니까. 오로지 ‘아들’이었다. 아들 지상주의에 꽁꽁 갇혀 있었다. 

‘단소중일 폴아도 아덜 공분 시킨다’, 

이 말엔 처음부터 끝까지 아들이지 딸이 들어설 구석은 없다. 이젠 아들 딸 차별이 없다. 천지개벽했지 않은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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