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동서남북 나뉜 제주섬] ③ 개발 일변도 벗어나 역발상 필요...중장기적 행정체제 개편도 과제

서울의 세 배에 달하는 면적을 지닌 제주. 섬 한가운데 자리한 한라산의 존재로 인해 누대로 제주는 남과 북, 동과 서로 생활권이 뚜렷하게 나뉘었다. 이로 인해 인구 70만명에 불과한 제주특별자치도는 산남·북, 또는 동·서 지역간 크고 작은 갈등이 늘 상존해 왔다. 이미 해묵은 과제인 산남·북 갈등은 물론, '제주 제2공항' 논란으로 발현된 동·서 간 갈등은 제주의 지리적 특성과 행정적 구조에 기인한다. [제주의소리]는 임인년 새해를 맞아 지역갈등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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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최상위 법정계획으로 지난해 12월 확정 고시된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은 제주의 균형발전과 미래공간 수요 대비를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특히 동서남북 4개 권역으로 나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 제주시와 서귀포시 간 행정구역을 넘어선 산업, 관광, 교통, 환경 분야 등 제주자치도의 통합조정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제주 지역거점의 산업·서비스 인프라를 집약해 자립적 성장역량을 강화하고, 인구감소 우려 지역은 집약적 관리를 강화해 지역특성에 부합하는 공간구조적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다만, 포부와는 달리 방법적인 접근에 있어서는 여전히 미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다 적나라하게 '화려한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화려한 말잔치' 안돼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에서 실제 제주 균형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내세운 계획은 크게 △스마트 혁신도시 조성 △글로벌 특화교육도시 조성 등 2개 사업이다. 이중 글로벌 특화교육도시 사업은 기존의 서귀포시 대정읍 영어교육도시와 연계해 은퇴자 교육을 포괄하는 예체능·취미 중심의 교육기관을 유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뜩이나 가장 급격한 변화가 이뤄진 기존 마을에 요리학교, 승마학교, 해양레저학교, 골프학교 등을 추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사업인 '스마트 혁신도시 조성'의 경우 제주 동쪽 지역을 타깃으로 뒀다. 제주시가지, 서귀포시가지와 제주도 서부의 영어교육도시 등 각 지역별로 거점도시가 있으나 동부에는 거점도시가 없어 타 지역에 비해 낙후되고 발전기반이 미흡하다는 접근이었다. 상업·업무시설, R&D센터, 주거단지 등을 복합화하고, ICT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도시 조성을 목표로 내세웠다.

다만, 이 계획은 불투명해진 제주 제2공항의 건설이 전제돼야 한다. 용역 과정에서 제2공항과 연계된 내용을 제외시켰지만, 최초 구상 단계에서부터 제2공항 배후도시로서의 기능을 염두에 둔 것으로 차기 정부의 제2공항 추진 향배에 따라 허명의 문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근본적으로 개발 일변도의 계획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뒤따른다. 도정 중심의 각종 계획이 오늘날과 같은 제주도 난개발의 폐해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해안가와 중산간 곳곳을 파헤친 유원지, 우후죽순 들어선 리조트 등의 시설이 더이상 제주와 맞는 옷이 아니라는 점은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사업승인만 받아놓고 아직 첫 삽 조차 뜨지 못한 사업이 부지기수다.

도민들의 인식도 변화되고 있다. 제주 제2공항 사업을 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높게 나타난 것은 현대 개발사에 있어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약 5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가 재원이 투입되는 사업임에도 도민들은 사업 반대를 택했다. 일반적인 국책사업에 대한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이 나타나기는 커녕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사업을 도민들이 되려 거부한 것이다.

이는 도민들이 제2공항 개발에 따른 소득 증진보다 지속가능성, 환경 등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를 추구함에 따른 결과였다. 제주의 매력이 천혜의 자연경관에 있는 만큼 개발에 따른 기대 편익보다 더 높은 가치를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달라진 인식, 당장의 개발이익보다 청정자연 선택 

외부인들의 시선 조차 제주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 제주관광공사가 지난해 7월 여름철 제주여행을 계획하는 국내 관광객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름 휴가지로 제주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응답자의 66.9%가 '청정 자연환경'을 꼽았다.

제주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도 '자연경관 감상'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75.9%에 달해 압도적이었다. 중복응답이 가능한 질문에서 박물관 방문, 호캉스, 쇼핑 등을 선택한 답변은 20%대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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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 개발'은 '원형 보존'의 가치로 치환되는 결과를 낳았다. 상대적으로 개발이익이 뒤떨어진다고 평가되는 제주 남쪽과 동쪽 지역은 이제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고 있다.

제주에서 생태관광을 개척한 고제량 제주생태관광협회 대표는 "지역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은 자연도, 마을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이전에는 개발을 통한 화려한 시설을 꿈꿨지만, 오늘날에는 남겨진 모습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재발견하고, 그 가치를 현 시대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고 대표는 "동쪽지역만 하더라도 서쪽보다 훨씬 많은 자연환경이 보전됐기에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지질공원 등 국제적인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었다"며 "생태관광이든, 생태교육, 치유 프로그램 등 지금 가진 자원의 가치를 충분히 주민 참여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느덧 제주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제주삼다수의 사례도 기존의 자원이 잘 보전됐기에 가능했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전세계적으로 환경보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의무가 됐다. 환경부는 2020년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생태계서비스 지불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보호지역, 생태우수지역의 토지소유자 등의 생태계 보전·증진 활동을 보상하는 제도다. 갖춰진 제도를 활용해 지역 주민들의 역할을 찾을 수 있다.

오는 3월부터 시행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도 자원의 가치를 보상하는 여러 계획이 포함됐다. 특히 지자체 차원에서 녹색성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원시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이유있는 기초자치단체 부활 주장

중장기적으로는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위해 기존 행정체제 개편의 필요성도 대두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지리적으로 양분한 현재의 행정체제로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다.

제주도정 중심의 기존의 체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주민들의 의견을 아우를 수 없는 구조였다. 기계적인 형평성 논리에 가로막혀야 했고, 인구수 등 숫자를 바탕으로 한 판단이 이뤄질 수 밖에 없었다. 즉, 해당 지역 주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행정체제개편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고, 한때 제주를 동서남북으로 분할해 4개 시군으로 회귀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청사 배치나 공무원 조직 등의 요인으로 4개 권역으로 나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돼 국회의원 선거구와 유사한, 제주를 3개 권역으로 나누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인구 50만명이 넘어도 제주시는 법인격이 없는 '행정시'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특례시로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실현 가능성을 놓고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치안 서비스도 동부경찰서와 서부경찰서, 소방 편제도 동부소방서와 서부소방서로 나뉘는 등 행정 편의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근본적으로 기초자치단체 부활의 필요성도 대두되지만, 이 경우 제주특별법을 전면개정하는 등 장기적인 과제로 분류되고 있다.

이상봉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장은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행정서비스의 직접적인 접촉의 기회를 늘리려는 본질적인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며 "행정구역을 먼저 조정하는 것이 1단계고, 체제를 그대로 갈 것인지,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할 것인지는 추후 도민공감대를 형성해서 가져나가야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서귀포시 같은 경우 민원 만족도가 제주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성산읍에서 대정읍까지 범위가 넓지만, 인구수는 19만명이기 때문에, 정책도 빠르게 집행되고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제주시의 경우 50만명이라는 인구수 때문에, 시장의 공직 장악력도 떨어지고, 민원 만족도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전임 시장들이 퇴임하며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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