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23) 힐마 아프 클린트 평전, 율리아 포스 지음, 조이한 김정근 옮김, 풍월당 

힐마 아프 클린트 평전, 율리아 포스 지음, 조이한 김정근 옮김, 풍월당. 2021. 사진=알라딘.

예술가는 제대로 평가를 받아야 지속가능한 제도이다.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비평과 화랑, 미술관이라는 미술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미술 제도의 관문을 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은 그러나 수많은 난관에 봉착한다. 예술도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고착된 고정 관념의 벽이 가장 크다. 새로운 예술은 그래서 늘 시간이 좀 지나야 제대로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이 소개하는 화가 또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전반기의 완고한 틀 속에 갇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물이다. 

“힐마 아프 클린트라니! 그런 이름의 화가가 있었던가? 도대체 왜 그녀의 이름은 미술사에 쓰이지 않았을까?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가올 세대를 신뢰한 이 사람은 누구일까? 이 영성 화가를 움직이게 만든 동기는 무엇인가? 그녀가 달성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누가 미술사를 쓰는가? 누가 배제되었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다.”

출판사 ‘풍월당’은 이렇게 자문하면서 이 책을 냈다. 이렇게 두툼한 책을 낼만 한 화가인데, 인지도는 매우 낮기 때문이다. 클린트보다 훨씬 유명한 클림트가 있다. 19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화가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1862년에 태어난 그는 아르누보 계열의 화려한 장식적 그림으로 유명하다. 성과 사람, 죽음의 상징적인 그림으로 세기를 뛰어넘는 사랑을 받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화가이다. 클린트와 클림트는 똑같은 1862년에 태어났다. 전자는 오스트리아의 남성 화가, 후자는 스웨덴의 여성 화가이다.

이 책은 이렇듯 알려지지 않은 화가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했다. 이 책의 저자 율리아 포스는 훔볼트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편집 책임자(2007-2017)로 일한 언론인 출신으로 현재 니더작센 주 뤼네브르크의 로이파나대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예술칼럼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다윈의 그림들. 진화론의 견해들. 1837-1874, 찰스 다윈 입문서, 하얀 벽 뒤 등의 저서를 냈다. 그는 2008년에 스톡홀름에서 처음으로 힐마 아프 클린트의 그림을 본 후 글을 썼고, 그의 아카이브를 방문한 후 스웨덴어를 배우면서 이 화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큰린트가 작성한 125권의 노트를 연구하고 스톡홀름 등 유럽 전역의 여러 아카이브를 거치며 연구한 결과물이다.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1862-1944)는 스톡홀름 북쪽 솔나 시에 있는 카를베리 성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심령주의 강령회에 참석했으며, 10대 후반에 사립미술학교에 다녔고, 20대에 스톡홀름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화가로서 전람회에 출품한 힐마는 당대의 완고한 남성중심주의라는 한계에 부딛혀 예술적 성취를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그는 좌정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아이리스 뮐러-베스터(Iris Müller-Westermann) 같은 큐레이터는 “힐마 아프 클린트는 100년전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미래는 지금이다.” 라는 말로 클린트의 예술에 찬사를 보냈다. 

힐마는 자신의 현재를 미래로 던져버린 예술기이다. 여성화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남성중심주의 사회의 편견을 뚫고 위대한 예술가로 우뚝 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당대의 권력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런데 이 화가는 거꾸로다. 그는 자신의 사후 20년이 지난 후에야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라고 정해놓았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그 답답한 편견 너머 새로운 세상에서 평가받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는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를 살아낸 예술가로서 자신의 길은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다는 점을 예견한 것이다.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넘어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는 점보다 중요한 것은 힐마의 예술이 시대를 앞서 미래를 내다보았다는 점이다. 그는 과학과 정신성을 예술적 표현으로 통합한 위대한 예술가이다. 19세기 유럽은 다윈의 진화론을 비롯해, 분자와 원자, 양자의 존재를 밝혀내고, 천문우주의 비밀을 풀여내기 시작한 자연과학의 시대이다. 자연과학의 지적인 진화는 힐마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와 함께 그의 예술에서 중요한 요소는 정신성(Spirituality’)의 문제이다. 흔히들 ‘영성(靈性)’으로 번역하곤 하는 이 ‘정신성’이라는 단어는 자연과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 삶의 궁극의 문제들에 관한 지향이다. 

역사시대 이래 지금까지도 인간 삶과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종교라는 제도와 그에 의탁하는 문화는 자연과학이 밝혀내는 진리와 충돌하며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이 자리를 대신하는 영역이 바로 정신성의 영역이다. 힐마는 자연과학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신지학에 대한 관심으로 정신성의 영역을 파고 들었고 그것을 그림으로 풀어냈다. 기실 예술의 효용성이 화폐가치의 담보물로 넘어가고 있는 마당에, 힐마 아프 클린트와 같이 세기를 건너뛰는 위대한 선구자를 만나는 일은 예술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정신성의 문제와 만난다는 점을 100년전에 이미 예견한 필마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21세기 오늘을 사는 지구인들에게 커다란 축복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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