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시인 강은미가 두 번째 시집 ‘손바닥선인장’(한그루)을 펴냈다. 8년이란 꽤 긴 시간을 지나 꺼내보인 새 책에 대해 출판사는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나의 아픔을 응시하는 위안의 시”라고 소개한다.

새 책은 ▲눈의 노래 ▲여름의 지문 ▲손바닥선인장 ▲튼튼한 하루 등 4부로 나눠 시 50여편을 실었다. 책 말미에는 현택훈 시인이 발문을 적었다.

앞서 간 사람도 뒤따르는 사람도
뽀드득 뽀드득 제 발소리에 놀라며
차라리 비바람 치는 폭야가 그리웠으리라

눈이 내린다는 것
그것은 공포다

숨소리에도 눈은 녹아
동굴 속 폐부가 환히 드러나면

기필코 눈 뜬 자들은 살아 나가지 못했으리라

- ‘눈의 노래’ 중에서

누군가의 손금을 읽는 데 매번 실패하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에 매번 긁적이고
당신이 건너왔던 길 나무의 수액 빨아먹으며
겨우 한 글자 해독하고 나면 또 아지랑이
태어나긴 하였으나 죽기도 하였으나
소문만 무성한 여백 점 하나면 족할 것을

- ‘각주’ 중에서

올해도 여지 없이 울음방을 차렸구나
울고 싶은 이들 하나둘 불러 앉혀
초식성 목청들끼리 꾸역꾸역 꺼억꺼억,

먼저 간 선배는 어느 별에 닿았는지
누구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기에
후렴구 한목소리로 해방가를 부른다

들녘에 묻혀서도 막살지 않은 저들
한 음보 한 구절씩 음정박자 또박또박
하얀 밤 갈라진 박꽃이 심지들을 모은다

- ‘공한지의 밤’ 중에서 

출판사는 현택순 시인의 표현을 빌려 “강은미는 알아차리는 능력을 지닌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더불어 “강은미의 시선은 가난한 유년, 일상의 비애, 상처받은 여성 자아에 오래 머물러 있는데, 그 시선은 특히 제주의 아픈 이야기를 비켜 갈 수 없다. 표제작에 등장하는 ‘손바닥선인장’을 비롯해 ‘분꽃’, ‘순비기꽃’, ‘동백’ 등 제주를 상징하는 꽃을 통해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을 함께 호명한다. 월령리 무명천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손바닥선인장’과 강정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강정’ 연작시는 그런 시인의 면모를 잘 드러내는 시”라고 강조했다.

출판사는 “타인의 아픔과 지역의 역사적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은 자신의 아픔을 응시하며 치유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비애와 슬픔을 넘어 공감과 연대로 나아가려는 그간 시인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시집”이라고 소개한다.

강은미는 제주 출생으로 201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 ‘자벌레 보폭으로’(한국문연·2013)과 산문집 ‘정오의 거울’(지혜·2016)을 펴낸 바 있다.

103쪽, 한그루,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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