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제주와 자치 이야기](1) ‘중앙집권적 관치’ 행정부지사 反자치적 제도

제주특별자치도는 지금 도지사가 공백 상태이다. 원희룡 전 지사가 대선 출마를 이유로 지사직을 중도에 사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만섭 행정부지사가 도지사 대행을 맡고 있다. 프로필을 찾아보니, 충남 서천 출신이고 제주와는 별다른 인연도 없던 행정안전부 공무원이다. 

이처럼 ‘특별자치’를 한다고 하는 제주특별자치도의 행정부지사는 제주도민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임명되는 자리이다. 도의회의 동의 절차를 거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최고 수장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방자치 부활 이전의 ‘중앙집권적 관치’ 시절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말만 특별자치, 실제로는 ‘중앙집권적 관치’

언론보도를 보니, 그 도지사 권한대행이 제주2공항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한다. 작년 제주도민 여론조사에서 제주2공항 반대의견이 높았던 것도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다. 이것이 무슨 특별자치이고, 이것이 무슨 민주주의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지방자치 부활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는 중앙집권의 잔재 때문이다. 지금 행정부지사가 도지사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곳은 제주특별자치도 외에도 경상남도, 경기도가 있다. 이들 도에서도 국가공무원인 행정부지사가 도지사 대행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공무원이 행정부지사를 맡는 근거는, 지방자치법과 그 시행령에서 시·도의 부시장, 부지사를 국가공무원으로 임명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지방자치법 110조 2항 및 시행령 73조 2항). 시·도지사가 제청권을 갖지만 행정안전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이니, 사실상 행정안전부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도(道)의 경우에는 행정부지사 임명 대상이 일반직 국가공무원으로 제한되니, 결국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이 임명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에도 이런 식으로 제도를 만든 것은 행정안전부(구 내무부)의 자리를 챙기려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임명되는 행정부시장, 행정부지사들은 시·도의 사무를 총괄하고, 소속 공무원을 감독하는 권한을 갖는다(지방자치법 시행령 73조 4항). 그야말로 지방자치단체의 2인자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도지사가 궐위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1인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방자치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의 부단체장은 단체장이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게 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지역주민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고 지방의회의 의사와도 전혀 무관하게 지방자치단체 집행부의 2인자가 결정되는 구조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임명되는 행정부지사는 지역주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인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가 진정한 ‘특별자치’를 하려면, 이런 잘못된 제도부터 뜯어고치자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도지사, ‘뜨내기’ 국가공무원의 임명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도지사가 필요할 것이다. 사진은 현재 도지사 권한대행을 수행 중인 구만섭 행정부지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뜨내기 행정부지사가 제주2공항 추진?

더욱 문제는 2006년부터 특별한 자치를 하겠다던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마저도 이런 ‘중앙집권적 관치’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44조 2항에서는 ‘제주자치도에 두는 부지사 1명은 국가공무원으로 임명한다’라고 한번 더 확인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중앙에서 임명되는 행정부지사는 ‘뜨내기’이다. 특별자치가 도입된 2006년 7월 이후에만 10명의 행정부지사들이 제주특별자치도를 거쳐갔으니, 1명의 평균 재임 기간이 2년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뜨내기’라는 표현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이런 ‘뜨내기’ 행정부지사는 반민주적이고 반자치(自治)적인 제도이다. 지역주민들에 대한 책임성도 없는 무책임한 제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주도지사 중에 이런 말도 안되는 중앙집권적 관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중앙에는 약하고 도민 위에는 군림하는 행태를 보인 지사들이 아니었는가? 

제주가 진정한 ‘특별자치’를 하려면, 이런 잘못된 제도부터 뜯어고치자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도지사, ‘뜨내기’ 국가공무원의 임명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도지사가 필요할 것이다. 

# 하승수 변호사는?

1992년 공인회계사 시험, 1995년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지만,  정작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 실행위원과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6년부터 약 4년간 국립 제주대학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으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12년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와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풀뿌리 지방자치를 향한 [하승수, 제주와 자치이야기]를 매월 한차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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