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 사이] (1) 고충석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前 총장

21세기 들어 세계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코로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단어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월 13일 0시 기준 사망자는 44명에 이르고, 누적 사망자는 6210명을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 숫자로만 따지면 코로나는 제1차 세계대전 못지않은 재앙이 되고 있다. 코로나는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여러 방면에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어떤 분야도 코로나로 인한 변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언제 종지부를 찍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가 가져온 급격한 변화에도 다행히 K방역을 내세우며 정부와 국민이 힘을 합해 코로나에 잘 대응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부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얻은 자명한 결론은 국가가 미래에 대비하여 교육, 안전, 의료, 국민건강 등의 공공목적에 지속적으로 재정을 투자한 나라는 코로나에 그런대로 잘 대처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공분야에 대한 투자는 당장 경제적 이윤이 나는 사업이 아니므로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재정투자를 주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간은 속성상 수익구조가 불투명한 공공사업에 투자하기를 꺼린다. 공공사업은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표가 나는 사업도 아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야 성과가 나오는 사업이다. 박정희 시대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화학공업 육성사업이 그랬고 김대중 시대의 정보고속도로 구축이 그렇다. 당대 정치인들의 강력한 반대는 물론 측근들에서마저 환영받지 못한 사업들이었다. 그러나 두 정치지도자가 문명사적 통찰력을 가지고 이 사업들을 밀고 갔다. 그 효과는, 한 창 지난 후에야 나타났고 혜택은 엄청났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스웨덴은 코로나 방역체제 구축에 있어서 허술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올해 들어 오미크론 변이가 빠르게 퍼지면서 미국에서 하루 신규확진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신규확진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실제 신규확진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간 미국은 공공목적에 투자하는 재정 규모를 계속 줄여 왔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공공의료 보험제도 자체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투자가 소요되고 기득권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기득권에 포획된 정치인들은 의료보험 도입을 기피한다. 돈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사(私)보험을 이용하지만 그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큰 병을 얻으면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Knock Down the House)”이라는 미국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봤다. 2018년 중간선거에 4명의 여성이 뛰어들어 세상에 충격과 영감을 주는 용감한 이야기다. ‘의료보험은 인권’이다 라고 절규하는 한 출마자의 대사 한 토막이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미국은 세계경찰 국가로서 무기 개발 등에는 엄청난 군사비를 쓰면서도 의료, 교육, 안전 등에는 재정투자를 소홀히 해서 코로나 사태가 더욱 악화하였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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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전형으로 알려진 스웨덴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다. 의사가 턱없이 모자라고, 민간병원 비율이 매우 낮아 질적 차원은 고사하고 양적 차원의 의료서비스가 거의 가뭄 상태이다. 최근 EU 보건 보고서에 의하면 코로나 이전에도 스웨덴은 전체 환자 중 20%가 넘는 환자가 전문의를 만나는 데 석 달 이상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과수술을 받고 싶은 환자 중에 다섯 명 중 한 사람은 최소한 석 달 이상 기다려야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더욱이 이런 여건에서 코로나에 대한 방비는 속수무책이었다. 방역체계 붕괴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만 것이다. 인구 1천 40만 명가량의 스웨덴에서 1일 확진자 수는 2만 3천 명을 넘기고 있다. 이것이 복지 낙원이라고 하는 스웨덴의 현주소다. 스웨덴 정부가 집단감염에 속수무책 방관할 수밖에 없는 것은 환자를 수용할 능력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의료보험 정착과 의료인력양성, 건강관리체계구축, 정보통신 기술 활용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코로나 사태에 직면해서도 방역(방패) 국가의 기능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이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공공투자와 제도적 축적이 낳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우리나라 의료인력의 전문성과 사명감에 박수를 보낸다. 그 노고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방역체제 구축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전문 의료인력은 더 양성해야 한다. 특히 공공의료 시설을 확충하고 그 시설에 일정한 기간 의무적으로 복무할 의사들을 더 많이 배출해야 한다. 배출방식은 기존의 의과대학을 활용하는 것보다, 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하여 배출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대체로 의사들이 지방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수도권을 선호하기 때문에 돈을 잘 벌 수 없는 공공의료기관에 종사할 의사들은 다른 방식으로. 모집하고 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다 보류한 공공의료대학원 설립은 다음 정권에서 재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시장 대 국가의 관계에 있어 ‘작은 정부론’은 큰 힘을 받지 못할 것 같다. 우수한 인력, 효율적 조직, 지속할 수 있는 강력한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취약한 정부로는 이 시대의 총체적 안전 위험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쟁점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가 아니다. 어떤 형태의 정부냐의 선택만 남아있다. 중국과 같은 중앙집권적이고 통제적인 큰 정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실용적 차원에서 문제해결력이 뛰어난 똑똑한(smart) 정부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함이다.

이를 위해서 특히 연결자로서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K방역이 그런대로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 네트워크 플랫폼(network platform)을 설계하고 디지털(digital) 기술을 기반으로 정보이동과 소통이 원활해지도록 촉진하는 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정부가 발동하는 접종시스템에 시민이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지배구조(governance)를 창출해내야 한다. 코로나 초기에 강한 봉쇄 조처를 한 중국 같은 나라의 이례적인 사례도 있지만, 코로나 대응은 강압보다는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접근할 때만이 요사이 논쟁이 되는 방역패스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유능해야 한다. 그러나 지각 있는 시민 개개인의 협조 없이 유능한 정부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코로나를 겪으며 깨닫게 된 교훈이다. 포스트(post) 코로나 시대에서도 총체적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패 국가로서의 위상을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이제 한국은 우리의 특수성을 고려한 한국형 방패 국가 모델 정립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코로나를 그 계기로 삼아야 한다. 

 
▲ 고충석 제주국제대 총장.

 고충석은?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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