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자의 교단일기]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모둠식사

10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등교해서 점심시간마다 오순도순 모여 점심을 먹곤 했다. 서로 반찬을 나눠먹고 뺏아 먹으면서도 자리 만큼은 꼭 친한 친구끼리 모이기 마련이었고, 어느 날 도시락 팀에서 혼자 떨어져 나가거나, 다른 친구들의 자리로 옮겨 간다면 그것은 분명 그들 사이에 이상전선이 형성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늘 혼자서 먹는 아이,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들고 다니며 끼니를 해결하는 아이들의 각양각색의 이유를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이때였다. 그래서 선생님들에게는 점심시간이 학급의 교우도를 파악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학교급식이 시작된 지도 10여 년이 되었다. 그 사이 바쁜 현대생활에서 어머니들의 일손을 덜어주고, 영양 면에서 균형 잡힌 식사가 이루어졌으며, 경제적 빈부차를 느끼지 않는 평등한 식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교급식의 기여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학교생활에서 점심시간이 사라지고 급식시간만 존재하게 되면서 2% 정도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점심이 ‘點心’ 즉, ‘마음을 건드리다.’는 뜻인데도 함께 밥을 먹고 음식을 나눔으로써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아주 가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식사로 사육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면 호강에 겨운 소리라고 야단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반은 한 학기에 두 번 모둠식사를 한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온 식구가 큰 양푼 주변에 둘러 앉아 밥과 나물과 온갖 밑반찬을 몰아넣어 비벼먹던 비빔밥. 그 비빔밥을 모둠별로 만들어 나눠 먹는 것이 모둠식사이다. 축구나 제기차기, 풍선 터뜨리기 등을 하고 나서 시장기가 몰려올 때쯤 하는, 급식을 하지 않는 토요일의 점심식사이다.

10년 전, 나는 제주시의 어느 남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토요일 오후에 짝수 대 홀수로 나누어 축구경기를 한 후 운동장 스탠드에서 첫 모둠식사를 했다. 양푼과 수저, 밥, 콩나물 무침, 고추장, 참기름이 전부였다. 모둠별로 가지고 온 음식을 모두 양푼에 쏟아 비볐는데, 아이들은 ‘이걸 과연 먹을 수 있을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이 만든 음식에 누구도 선뜻 숟가락을 갖다 대지 않았다. ‘지저분하다.’, ‘완전 개밥이다.’며 드러내놓고 비난하는 아이가 있었는가 하면 끝끝내 한 숟가락도 입에 대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몇 발치 떨어져서 구경만 하다가 시장이 밥이라고 입 속 한 굴레 가득 밥을 담아 넣던 몇 아이들이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다.

   
 
 
지난해에 다시 모둠식사를 시도했을 때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식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서 있는 아이들을 비집고 ‘맛있다.’ ‘맛있다.’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윗배에 소복이 내려앉은 과다한 밥 때문에 나는 종일 끙끙대야 했다. 내가 몇 순배 돌면서 호들갑을 떨고 난 후에야 ‘정말 맛있어요?’하면서 한두 명이 달려들고, 음식 남기면 죄받는다는 으름장에 억지로 먹어치웠던 것이다.

   
 
 
두 번째가 되면서 모둠식사는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추장과 참기름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좋은지, 나물은 무엇을 넣어야 좋은지, 참치나 볶은 고기를 넣으면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용기는 어느 정도 커야 좋은지 등 스스로 모둠식사법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한데 모아놓고 비벼 먹는 비빔밥이, 서로 어울려 비비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 깊은 삶의 전통과도 같은 맥락이기에 쉽게 아이들에게 파고들었는지도 모른다. 비빔밥만 먹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누드김밥, 주먹밥이 등장하고, 다양한 김치나 밑반찬이 마련되어 풍부한 식단이 되기도 했다.

   
 
 
왁자지껄 떠들며 소리를 질러대서 아수라장이 되고, 간 맞추느라 여기저기 밥이나 반찬을 떨어뜨려 난장판 된 교실, 칠칠하거나 아니면 퍽퍽한 밥 등도 회를 거듭하면서 점차 세련되어 갔다. 아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식사까지 완벽하게 끝내고 뒤처리할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요령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자기들 먹기에 급급해 하던 아이들이 선생님 몫을 아예 떼놓거나, 친한 선후배에게 준다며 참치 캔에 덜어두는가 하면, 맛보라고 밥 한 숟가락, 손으로 찢은 김치 한 가닥을 입안에 꾹 질러 놓고 가기도 한다.

   
 
 
친구들에게서 오랫동안 따돌림 당해 오던 빈이는 모둠식사 때만 되면 운동장 구석을 배회하여 찾으러 다니게 하더니, 올해부터는 열심히 식재료를 가져와 모둠식사에 동참하고 있다. 어디 숨었다가 다시 바깥세상에 나왔는지 ‘벤또’나 보온도시락이 등장하고, 한 어머니는 따끈한 밥을 지어 학교로 배달하기도 했다.

   
 
 
   
 
 
밥은 신이 우리에게 주는 초자연적인 영양분이면서, 그 이상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한데 어울려 즐겁게 밥을 먹을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은, 시간을 아껴 공부하게 하는 것이나 학생의 기본생활태도를 길러주려는 의도 만큼이나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밥상머리교육’을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와 마음을 터놓고 싶을 때,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을 때 ‘식사나 같이 하자.’고 한다. 우리 사회의 어떤 일이든, 시작과 갈무리는 식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혹자는 구성원들이 얼마나 잘 어울려서 즐겁게 밥을 잘 먹느냐에 의해 한 해의 결실이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학기를 마무리 짓는 회식은 어른들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끼리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 고산중 교사 ]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