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인들과 차별화되는 ‘육성’으로 독창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제주 시인 김규린이 최근 본명 김지연으로 세 번째 시집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를 선보였다.

김지연 시인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나 199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한 뒤, 필명 김규린으로 시집 「나는 식물성이다」, 「열꽃 공희」로 상처와 열망을 풀어낸 바 있다.

시인은 10년만에 출간한 이번 시집으로 삶의 비의와 존재에 대한 질문과 허기, “모든 골짜기 밖에서 반짝거리는” 것들을 찾아가는 위무의 시선을 나눈다.

폭우, 난데없이

김지연

퉁퉁 분 물살 위로
떠다니는 찌꺼기 한 점이 삶이라고
믿지 않겠다
휘두르면 손톱 끝에 찍혀나오는 가벼운 윤리와
치부 위에서 환하게 여문 신파적 꽃씨들
교과서처럼 짓눌린 표정으로 꽃씨를 받는
나는 물이다
누워 바라보면 제거하기엔 너무 깊은 강
가슴께 꼬깃꼬깃 소외의 키를 잡는 시간과
시간에 얹힌 구름들
온몸 새겨온 손톱자국을 다시 한번 강에 뿌리며
도저히 어찌 못할 욕망은 프리미엄인 게라고 마음 고쳐먹기까지
강은 도도했고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
말씀 한 줄로
일어서는 날개를 내려치진 못했다

폭우―
물살 잠잠한 강심으로
난데없이 내리꽂힌
한낮의 정사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중에서

김지연 시인.

시인은 그의 산문에서 자신의 전생이 나무였을 거라고 확신한다. “어둠을 밀고 나왔을 때 새로운 화면의 배면이 환하게 눈에 띄었다. 나무였다”고 고백한다. “식물은 자신의 뿌리박기가 한 생애의 주제라는 진실”을 잘 알고 있기에 줄곧 식물성을 지향한다.

시집은 그의 어린 날, 스무 살, 마흔을 지나오는 풍경을 오롯이 담고있다. 시인은 “비뚤비뚤 흘려 적은 것일지라도 가지에 받쳐진 목숨은 모두 빛나는 거라고「먼나무 열매」” 스스로 다독이며 “위대한 식물”로 거듭난다.

133쪽, 애지,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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