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양영준 전 미주 4.3유족회 준비위원장, 현 미주 4.3유족회 기념사업위원회 부회장

양영준. ⓒ제주의소리
양영준 전 미주 4.3유족회 준비위원장, 현 미주 4.3유족회 기념사업위원회 부회장 ⓒ제주의소리

지난해 말 오랜 기간 국회에 계류 중이었던 4.3특별법이 통과됐다. 4.3사건에 대한 더 깊은 연구와 배·보상의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가히 기쁜 날이 아닐 수 없었다.

70여년의 긴 세월 동안 자식들이 상처받을까, 자식들 미래에 주홍글씨가 새겨질까, 그 끔찍했던 4.3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입밖으로 쉽게 내뱉지 못했던 그 피묻은 한스런 마음들의 깊이를 유족들이 아니고서는 쉬이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해맑은 날 오름에 부는 겨울 찬바람처럼 세월은 무덤덤한 무채색의 색깔로 제주의 영령들을 고스란히 받아 드렸고 그 아픔을 이어받은 유족들의 시간도 주름이 지고 흰머리 날리는 모습으로 바꾸어 놓아버렸다. 세월이 참 빠르고 저만치 흘러가 버렸다.

어릴 적 깊은 적막과 어둠에 둘러싸인 밤이면 내 어머니도 빠른 세월을 붙잡아 놓듯 가끔씩 눈물을 훔치면서 ‘외삼촌이 도새기 우리에 숨어있었어’, ‘외삼촌이 멀리 북촌에서 와신디 다행인지 불행인지 동네 청년 하나가 죽어부난 그 이름으로 바꿘 죽창 매언 토벌대에 들어가난 살았쩌’, ‘난 어릴 적 소꿉친구들 어서 다 한날한시에 다 죽어부런’.

밤에 나즈막히 내뱉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로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고 어머니 마음속 지도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 시절 제주4.3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어머니 역시 북촌에서 아버지와 많은 친척을 잃은 상처가 남아 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었다.

20살에 겪은 그 비참한 나날들의 기억들을 내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미국 방문길에서야 마치 사진을 머리에 찍어 놓았다가 조각품을 완성하듯 내 영혼에 똑똑히 새겨 주셨다.

늙은 내 어머니 마음속 지도들의 경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에 북촌이 고향인 그녀가 전한 이야기는 이러했다.

자신은 나의 아버지를 만나 다행히 한림면으로 떠나서 목숨을 부지했지만 남아 있던 외할아버지는 무장대에 습격당해 죽은 군인 두 명을 동네 어른들과 함께 수레에 싣고 함덕에 있던 군 지휘소를 찾아갔다가 현장에서 총살당했고 군인 피살에 대한 보복으로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음력 12월19일 추운 날씨에도 외할머니는 아침 일찍 물질을 갔다 와서 밥을 짓고 숟가락을 뜨려는 순간 군인들이 몰려와 다들 소학교 운동장에 모이라고 소리치며 총으로 협박했고, 겁에 질린 외할머니와 이모들은 소학교 운동장으로 모였고 집은 군인들에 의해 불에 타기 시작했으며 외양간에 있던 소 다섯 마리는 꼼짝없이 불타 죽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이고 나니 군인들이 대략 50명씩 모아놓고선 한 그룹 한 그룹 끌고 갔고 총소리가 울리고 나면 다시 끌고 가서 죽이고….

외할머니와 이모들은 제일 마지막 그룹에 속해 학살이 시작된 지 한참이 흐른 뒤 해가 서산에 뉘여갈 무렵 갑자기 지프차가 나타나더니만 사격 중지를 명령했고 마지막 그룹에 있던 외할머니와 이모들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외아들이었던 외삼촌은 당시 농업고등학생이었는데 학교 휴교령으로 고향으로 가던 길에 북촌 학살 소식을 듣고선 누나가 있는 한림으로 발길을 돌려 앞서 언급한 데로 돼지우리에 숨어 있다가 죽은 동네 청년의 이름을 써가며 겨우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내 어머니 뿐일까?

몇 해 전 4.3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모식에 내 고향 한경면 지부 천막을 찾아갔는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길 건너에 살던 내 친구의 어머니가 와 있었고, 심지어 같은 올레길 친척 삼촌의 숙모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릴 적 늘 같이 놀던 친구의 어머니가 희생자의 자식이었고, 심지어 늘 의지하며 살던 친척 숙모가 유족이었다니…. 거기다 친척 삼촌은 일본에 돈 벌러 갔다 간첩으로 몰려 10년 넘게 조작 간첩으로 투옥된 39명의 제주출신 희생자 중 한 분이셨다. 

그 숙모는 부모를 4.3사건에서 잃었고, 고향 떠나 시집온 곳에선 남편이 간첩으로 누명을 써 10년 넘게 감옥 생활까지 했으니 그 맘이 오죽했을까. 파도가 심한 날도 물질 간다고 동네 해녀들이 말릴 정도로 억척스럽던 숙모님이다.

일제강점기도 견뎌냈던 질긴 민초들의 삶들은 왜 그리 고달파야 했을까.

가해자는 피해자들을 잊지만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고 한다.

내 어머니와 이웃들 그리고 많은 제주도민들은 당시 7년 동안 벌어진 학살의 현장에서 피해자로 살아야 했다. 그 아픔들은 고스란히 그 자녀들에 대물림됐고 현재도 미래의 시간도 늘 그렇듯 무덤덤한 듯 흘러 점점 옅어져 가고 미래의 언젠가는 잊혀질 지 모른다.

먼 이국땅에서 제주도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저절로 찾아보게 된다. 예능 프로그램이든 다큐멘터리든 제주의 풍경은 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하지만 그 풍경 너머 저들이 저리 좋아 찾는 곳이 바로 4.3영령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던 학살터임을 알고 있는 나는 살아생전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와 외가 친척분들 그리고 그 한을 가슴에 안고 평생을 산 어머니를 떠 올릴 수밖에 없고, 세월이 더 가기 전 4.3영령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함을 느낀다.

그 노력 중의 하나가 한해 1000만명이 넘게 방문하는 제주공항을 ‘제주4.3평화국제공항’으로 명칭을 바꾸자는 의견일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 이곳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사람 목숨보다, 사람들의 상처보다 더 귀한 이념이 없고 더 소중한 사상이 없음을 알리는 큰 길목이 되리라 믿는다.

꿈과 추억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제주는 평화로운 곳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평화의 섬 제주에서 보내는 며칠간의 여정 속에 4.3을 기억하게 하고 부활케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부디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하며 다음 고향 방문은 제주4.3평화국제공항을 통해 가고 싶다. / 양영준 전 미주 4.3유족회 준비위원장, 현 미주 4.3유족회 기념사업위원회 부회장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도지사 후보로 선출된 박찬식 제주가치 대표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제시한 제주신공항(4.3평화국제공항) 구상도. 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의 북쪽 활주로를 해상 교량식 활주로에 연결(이미지 윗부분 검정색 점선)해 기존 해안도로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인근 마을 항공소음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했다. 외국의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교량식 활주로의 지상부와 해저부 모두를 용도에 맞게 활용하면서 항공기의 이착륙 횟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복안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도지사 후보로 선출된 박찬식 제주가치 대표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제시한 제주신공항(4.3평화국제공항) 구상도. 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의 북쪽 활주로를 해상 교량식 활주로에 연결(이미지 윗부분 검정색 점선)해 기존 해안도로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인근 마을 항공소음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했다. 외국의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교량식 활주로의 지상부와 해저부 모두를 용도에 맞게 활용하면서 항공기의 이착륙 횟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복안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도지사 후보로 선출된 박찬식 제주가치 대표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제시한 제주신공항(4.3평화국제공항) 구상도. 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의 북쪽 활주로를 해상 교량식 활주로에 연결(이미지 윗부분 검정색 점선)해 기존 해안도로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인근 마을 항공소음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했다. 외국의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교량식 활주로의 지상부와 해저부 모두를 용도에 맞게 활용하면서 항공기의 이착륙 횟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복안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도지사 후보로 선출된 박찬식 제주가치 대표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제시한 제주신공항(4.3평화국제공항) 구상도. 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의 북쪽 활주로를 해상 교량식 활주로에 연결(이미지 윗부분 검정색 점선)해 기존 해안도로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인근 마을 항공소음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했다. 외국의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교량식 활주로의 지상부와 해저부 모두를 용도에 맞게 활용하면서 항공기의 이착륙 횟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복안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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