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도내 요양보호사 현장인력 4000명 밑돌아…“노동강도 보다 왜곡된 시각 더 힘들어”

코로나 사태 속 제주도내 모 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일하는 모습. 

‘지칠대로 지쳤다’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코로나19 사태 속 제주 요양보호사 대부분이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에 빠졌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020년 본격화된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햇수로 벌써 3년째를 맞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 뒤 벌써 세번째 설 명절을 맞을 만큼 장기화되면서 요양보호사들의 피로감도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현장과 동떨어진 요양보호사 통계 

제주에 장기요양기관은 요양시설과 주야간보호시설, 방문기관 등을 모두 포함해 237곳이며, 2021년 말 기준 237곳 시설 이용자는 8138명이다.

제주에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자는 약 2만20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열악한 처우 등으로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전체의 1/5도 되지 않는 4000명을 밑돈다. 지난해 말 기준 장기요양기관에서 일하는 근무자는 사회복지사와 차량 운전자 등을 모두 포함해도 4943명뿐이다. 

정부는 요양보호사 1명이 어르신 2.5명을 돌보는 것을 기준으로 잡고 있다. 도내 장기요양 시설 8138명의 어르신을 요양보호사 약 4000명이 돌보고 있다고 추정할 때 요양보호사 1명 당 약 2명의 어르신을 돌보고 있다는 것인데 정부 기준 2.5명보다 상황이 낫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담지 못한 통계다. 

장기요양기관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24시간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양보호사 1명 당 약 2명의 어르신을 돌본다는 통계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 지적하는 것은 4000명이 1년 365일 내내 24시간 일해야만 가능한 수치기 때문이다. 

도내 시설은 업무 특성상 야간 근무자가 필수라서 2교대 혹은 3교대로 운영하고 있다. 또 휴가가는 직원들도 있을 경우엔 실제 도내 요양보호사 1명이 6명 정도의 어르신을 돌보는 것이 현실이다. 돌보는 어르신에는 치매 환자도 상당수여서 돌봄의 노동강도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일반 근로자처럼 연차가 쌓일수록 급여가 오르는 시스템도 아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급여수가가 정해져 있고, 시설 이용자 1명에 대한 수가가 정해져 있다. 

2022년 노인요양시설 1등급 급여수가는 1일 7만4000원 정도다. 예를 들어 1등급 이용자 30명이 있으면 1일 약 222만원(7만4000원X30일)이 시설로 들어온다. 어르신들의 식비 등 시설운영비와 요양보호사의 급여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제주도는 고시에 따라 각 시설은 받는 수가의 일정 비율을 인건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방문목욕이 49.8%로 비율이 가장 낮으며, 방문요양이 86.6%로 인건비 비율이 가장 높다. 

요양보호사가 1년차이든 10년차이든 관계없이 운영비를 제외한 금액에서 요양보호사의 임금이 책정되기에 연차가 쌓인다고 해 급여가 오르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구조다. 

코로나 사태 속 제주도내 모 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일하는 모습.

  코로나 장기화, 요양보호사 수급 시급하다 

지난해 말 기준 제주도 전체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 대비 16.3%로, 전체 인구대비 노인인구가 14%를 넘어선 고령사회다. 서귀포시의 경우 20%를 돌파하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노인인구 비율은 갈수록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요양시설 이용자도 당연히 늘어나고 있다. 요양보호사 수급이 시급한 상황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요양보호사들의 업무나 노동강도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세졌다. 시설을 찾던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시설 이용자들은 코로나 고위험군에 속하는 어르신들이다. 코로나에 매우 취약해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외부인들의 방문과 접촉이 철저히 제한됐다. 

그동안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았던 시설 청소와 환경정비, 이·미용, 목욕 등을 모두 요양보호사들이 도맡게 됐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업무의 가중을 차치하더라도 요양보호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자신만의 일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소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시간이 언제부턴가 사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들은 백신접종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매주 4차례 코로나 유전자증폭검사(PCR검사)를 받고 있다. 코와 입속을 휘저어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PCR검사를 이미 제주 요양보호사들은 만 2년 동안 각자가 수백차례나 받았다.

고위험군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 요양보호사 대부분이 주변인과의 접촉도 피하고 있다. 가끔씩 지인들과 만나 술 한잔, 차 한잔하던 것도 코로나 사태 속 요양보호사들에게는 사치가 된 셈이다.

도내 요양보호사 대부분이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에 빠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번아웃 증후군은 어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사람이 극도의 신체·정신적 피로를 느껴 무기력증 등에 빠지는 증후군이다. 

일각에서는 요양보호사 번아웃 후폭풍까지 우려하고 있다. 

익명의 복지 계열 공무원 A씨는 “요양보호사들이 봉사라는 이유로 버티고 있다. 자원봉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까지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자원봉사자들이 늘기 시작하면 심신이 지친 요양보호사들이 한꺼번에 그만둘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속 제주도내 모 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일하는 모습.

  “내 가족, 내 부모님 모신다는 마음으로”

코로나 사태로 요양보호사들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기 불가능했다. 외부인의 출입이나 접촉을 철저히 제한하고 있어 기자도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 인터뷰로 현장의 상황을 들어볼 수 있었다. 

16년차 요양보호사 강모(53)씨는 “일손이 정말 모자라다. 급한 일로 직원들의 휴가 등이 겹치면 요양보호사 1명이 10명 넘는 어르신을 돌보는 상황도 오기도 하는데, 어르신들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어 밥 먹을 때도 의자에 앉아있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면서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끊겼다. 지금은 고사리손 하나도 아쉬울 정도다. 요양보호사 모두가 ‘봉사’라는 마음 하나로 버티고 있다. 내 가족, 내 어르신을 모신다는 마음으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4년차 요양보호사 박모(56)씨는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심신으로 지친 상황이다. 얼마 전 조카가 다른 지역에서 오랜만에 제주에 왔는데, ‘PCR검사 받고 음성이 나와야 만날 수 있다’고 말해야만 할 때 너무 속이 상했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치매를 앓는 어르신도 다수 계시다.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경우엔 신체적으로도 너무 힘이들 때가 많다. 치매 어르신들은 본인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순간에는 힘들지만, 잠시 뒤 웃으시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오면 힘든 생각이 사라지기도 한다. 몸도 마음도 고되지만 모두 내 가족, 내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할 뿐”이라고 했다.

요양보호사 10년차 이모(43)씨는 “요양보호사 직업 특성상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돼야 하고, 어르신들을 돌봐야 하기에 육체적인 노동도 필수다.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이 관절 쪽에 병을 앓는다. 일종의 직업병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전에는 몸과 관절의 피로를 풀기 위해 사우나를 다녔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사우나엔 아예 가지 못하고 있다.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평소 근력 운동을 해왔는데, 코로나로 운동시설도 가지 못하고 있다. 대신 집에서 조금씩 운동하고 있다. 퇴근해서 PCR검사를 받고, 결과 나오면 출근한 뒤 일하고 퇴근하는 것이 반복돼 나만의 생활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시설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의 바깥 외출도 극히 제한되고 있다. 외부와의 접촉이 단절되다보니 요양시설 어르신들의 심리상태도 당연히 불안정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 

익명의 요양보호사는 어르신들도 시설에 갇혀 살다시피 해 스트레스가 늘어 요양보호사 등을 향한 말과 행동이 코로나 이전보다 거칠어졌다고도 귀띔했다. 

기자가 요양보호사 취재를 위해 만난 사람들 모두가 꺼낸 공통의 주제가 있다. 바로 '노인학대' 문제 였다.  

극히 일부 시설, 일부의 잘못된 행동으로 대부분의 요양시설과 성실히 일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이 학대한다는 오해를 받아 큰 상처가 된다는 얘기다. 

열악한 근무 환경보다 요양보호사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지칠대로 지친 요양보호사에게 이중고, 삼중고의 고통을 던져주고 있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따라 도내 요양보호사들은 설 명절 연휴에도 편안하게 가족들과 쉬지도 못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각 지자체의 복지 담당 공무원들과 긴급 화상회의를 가져 오미크론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대처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요양보호사들에게 일정의 위로금과 특별휴가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제주도 이순심 노인장수복지과장은 “현재 제주도 차원에서 요양보호사들을 위해 연차 수당이나 교통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에 따라 힘들어하는 요양보호사들이 많이 늘었다. 위로금 지급과 특별휴가 등을 중앙부처에 지속적으로 건의 중”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