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59) 떡 간 데는 떼어먹고, 말 간 데는 더 붙는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간 듼 : 간 데는
* 떼여 먹곡 : 떼어 먹고
* 더 부튼다 : 더 붙는다

당연히 떡은 먹다 보면 축나게 마련이다. 끊어 먹다 보면 양도 줄어들고 그 수도 줄어들지 않는가. 먹는 음식이라는 게 다 그렇다. 

하지만 말은 다르다. 어떤 사실이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치는 사이에 달라져 버린다. 말에 말이 더 붙었으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어늣새 그럴싸하게 내용이 바뀌어 있기도 한다. 듣는 이의 귀에 거스르지 않아 듣기 좋게 꾸며지는 것이다. 이른바 글을 좋게 한다고 화려한 말로 다듬어 윤문(潤文)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간신배들이 아첨하며 말고 얼굴빛을 좋게 해서 임금에게 알랑대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를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낯빛이라 이른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말 간 데 말이 더 붙어’ 본질을 흐려 버릴 수도 있을 것 아닌가. 그러니 자고이래로 말을 경계하라 일렀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은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작자 미상의 시조 한 수가 이런 말의 속성을 잘도 간파(看破)했다.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시작하면 절제가 안되는 게 말이다. 많은 말은 오히려 의사 결정을 어렵게 할 뿐임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되니 안타까운 일이다. 말이 더 붙으면서 본래의 뜻이 상당히 왜곡되거나 엉뚱한 내용으로 변질되는 수도 있다. 실제 적지 않은 경우다.

ⓒ픽사베이
말을 삼가야 한다. 한마디로 함축하거니와 다변(多辯)은 다변일 뿐 결코 달변(達辯)이 아니다. ⓒ픽사베이

가다 오다 화(禍)를 자초하는 수도 있다. 말을 적게, 할 말만 하는 것은, 곧 화를 뿌리쳐 가면서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다. 말을 삼가야 한다. 한마디로 함축하거니와 다변(多辯)은 다변일 뿐 결코 달변(達辯)이 아니다.

“아이고, 요놈에 주둥이, 홋솔 참지 못해영. 큰일 내와 부러시녜게, 아이고 요놈에 주둥이허곤.(아이고. 이놈의 입, 조금 참지 못해서 큰일 내여 버렸잖으냐.)“

그래서 옛 어른들이 거듭 힘주어 말했다. “들은 말은 들은 데 버리고, 본 말은 본 데 버리라”고. 말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 것이다. 참 지헤로운 말이 아닌가.

‘떡 간 듼 떼여 먹곡, 말 간 듼 더 부튼다’ 이치 정연한 말이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실천하면 자신의 삶에 이롭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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