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사이] (2) 고충석 제주대 명예교수, 前 총장

우도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우도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설 명절에 내 고향은 우도를 떠올려 본다.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향이라고 해서 변변하게 이바지한 것이 없다. 그럴 힘도 없었다. 지난날은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가지 못했고 그나마 최근엔 자주 우도를 찾는 편이다. 내 고향 우도는 늘 나를 키워준 정신적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식들에게 마치 가훈처럼 “너희들이 인생을 살면서 어렵고 힘들 때는 너희 선대들이 운명처럼 부딪히고 살았던 우도의 칼바람과 거친 파도를 생각하라”라는 말을 자주 해준다. “거기서 너희들은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도 사족으로 붙인다.

나는 우도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산호사 모래사장이 있는 동네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가면 지금은 더 유명해진 산호사 모래사장에 가끔 들른다. 그때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 달리기 시합에서 꼭 1등을 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대회 일주일 전부터 바지 끝을 끈으로 단단히 묶고 모래를 허리부터 발목까지 가득 채우고 달리기 연습을 하는 소년과 마주한다. 모래사장이 패도록 죽으라고 연습해도 성적은 늘 3등에 그쳤던 키 작은 왕고집 우도 소년, 바로 어릴 때 내 모습이다. 그를 떠올리며 나는 혼자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묘한 행복감에 젖어 들곤 한다.

노산 이은상은 시 ‘가고파’ 후편에서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세상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라고 노래했다. 가난이 뭔지, 출세가 뭔지, 사랑이 뭔지 모르고 철부지 개구쟁이로 살았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이렇게 우도는 낡은 서랍 속의 사진처럼 나의 유년 시절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10대 관광지로 불리고 있는 우도는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고 있다. 일 년에 200만이 넘는 인파가 우도를 찾는다고 한다. 오로지 우도를 방문하기 위해서 제주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시인 이생진은 우도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곤밥 한 그릇. ⓒ제주의소리
곤밥 한 그릇. 사진 출처= [KBS제주, 제주어 다큐드라마 불휘지픈 제주 33화 - 곤밥 한사발] 영상 캡처

내 어린 시절에 우도는 엄청나게 못 살았다. 우도뿐 아니라 당시 제주 전체가 전반적으로 가난했다. 그래도 우도는 풍부한 어장을 기반으로 한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산업 형태를 띠고 있어서 그런대로 먹고는 살았다. 요새는 우도 땅콩이 유명하지만, 그 당시에는 땅콩재배 농가는 없었다. 우도 산 미역과 우뭇가사리가 전국에서 가장 유명했다. 고구마를 말린 빼떼기도 유명했는데 전분용으로 인기가 있었다. 우도 산 우뭇가사리를 건조해서 만든 식자재인 한천은 일본과 홍콩으로 수출되었다. 우도에서 우리 집은 살림살이가 꽤 넉넉한 편에 속했다.

나는 초등학교를 일곱 살 때 입학했다. 힘도 고집도 무척이나 셌다. 그래서 친구들은 별명을 ‘팔갑선’이라고 붙여줬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에게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학교는 왜 안 간다는 말이냐?”라고 물으셨다. 어이없게도 내가 고집을 피운 가장 큰 이유는 곤 밥(쌀밥) 때문이었다. 당시 제주도 농촌 동네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 퇴물을 집집이 돌리는 풍습이 있었다. 더욱이 우리 동네는 高氏 집성촌이라서 뒷날 아침 집집이 제사음식을 돌렸다. 그 제사음식에 ‘곤 밥’이 있었다. 당시 곤 밥은 부잣집에서도 먹기 힘들었다. 그나마 우리 집은 귀한 손님이 방문할 때 가끔 보리와 쌀을 섞은 ‘반지기’를 먹을 수 있었다. 대부분 좁쌀밥이나 보리밥을 먹을 때이니 쌀밥을 먹는 것은 정말 어쩌다 한번 오는 기회였다. 설사 쌀밥을 먹을 형편이 되는 부자들도 공동체적인 시각에서 나 혼자 쌀밥을 먹는다는 것이 계층 간 위화감을 유발하는 요소라 생각했다. 당시에는 과시적 소비를 자제하던 때였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소위 ‘염치’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 동네는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살았고 제사가 많아 곤 밥을 먹을 기회가 간혹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학교에 간 뒤에야 제사상에 올렸던 곤 밥이 우리 집에 배달되어 학교에서 파하고 돌아오면 나의 몫이 생각만큼 남아 있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왜 내가 없을 때 곤 밥을 가져오느냐며 차라리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무척 엄했던 아버지도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결국, 난 학교를 한두 달 다니다 그만두고 말았다. 8살이 되어 제 나이에 다시 입학해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때가 1950년대 말이다. 곤 밥은 그 시대에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통계에 의하면 50년대에는 아사하는 인구가 매년 5~6만은 되었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불에 미치지 못하던 절대빈곤의 시대에 나타난 사회현상이다. 북한도 58년 전에 김일성이가 국민에게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고 약속을 했다. 지금까지 고깃국은 고사하고 이밥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난 죄밖에 없는 북한 인민들이 얼마나 더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야 할 할 것인지 가엾기 짝이 없다.

그로부터 세월은 많이 흘러, 이제는 곤 밥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신기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곤 밥은 다이어트하는 사람에게는 기피의 음식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섰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천 불에 이른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중에 이런 쾌거를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세계 경제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면 경제성장에 비례해서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도 그만큼 높아졌는가. 재미있는 보고서를 하나 인용해보자. 지난해 말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 조사는 매우 흥미 있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동 센터는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전 세계 17개 나라 1만 7,000명을 대상으로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를 물었더니 대부분의 나라가 건강이나 가족을 꼽았다. 다음으로 직업, 물질적 행복 순이었다. 이에 반하여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1위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보고서가 있다. 전 세계 사회과학자들이 40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세계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가 그것이다. 여기에 의하면 인간은 경제력이 커질수록 생존 그 자체보다 자기표현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치관이 전환되는데 한국만은 예외였다고 한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800달러쯤 되던 1981년이나 3만 달러를 훌쩍 넘은 현재나 여전히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형성되었는데도 여전히 돈타령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물신 숭배 전통이 아마 오늘날의 경제성장을 견인해내는 힘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행복론은 이야기가 다르다. 돈이 많다고 행복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는 선까지는 돈이 행복을 결정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선을 넘으면 돈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은 재산을 가져도 공허와 공복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히려 돈이 너무 많아서 불행해진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행복을 위해서는 돈이 중요하다는 현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균형이다. 돈이 행복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와 적절히 균형을 유지할 때 행복의 승수효과는 올라간다는 점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예컨대 가족, 건강, 일. 창조행위 등에 있어서 장애가 있다면 그 행복은 매우 제한받는다. 식물의 성장을 위해서는 산소, 수소, 유황 등 10대 필수 영양소들이 중요한데 이 가운데 한 가지만 부족하면 다른 요소가 아무리 넘쳐나도 식물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최소율의 법칙’이 인간 행복론에도 유익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심리적 기저도 행복에 이르는 중요 변수다. 아무리 행복의 여건이 부족해도 마음만은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적게 가져도, 적게 소비해도, 세속적으로 출세하지 못해도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마음의 근육을 잘 단련시켜야 한다. 그래서 니체도 행복은 훈련이라고 갈파하지 않았는가. 임인년 설날 아침이다. 올해 한 해도 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자. 그러면 행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고충석은?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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