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104) asylum 망명, 보호

asy·lum [ǝsáilǝm] n. 망명, 보호
이져불지 말아사 헐 아관파천(俄館播遷)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아관파천(俄館播遷)

asylum은 a-(=without)와 syl(=right of seizure)의 결합이다. asylum의 어원적 의미는 ‘붙잡아 갈 수 없음’을 뜻하지만, 오늘날에는 an orphan asylum(고아원), an asylum  for the aged(양로원)와 같은 ‘보호시설(facilities for protection)’이나 관헌(authorities)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교회나 성당 등의 ‘피난처(shelter)’를 뜻하거나 ‘피난(refuge)’, ‘망명’, ‘보호(protection)’ 등의 뜻으로 쓰인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오늘 2월 11일부터 1년여 동안 고종과 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official residence)으로 피신했던 사건이다. ‘아(俄)’는 러시아를 ‘관(館)’은 ‘공사관(公使館)’의 관을 뜻하며, ‘파천(播遷)’은 ‘임금이 도성(capital city)을 떠나 난리를 피하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아관파천(俄館播遷)’에는 국왕에 대한 일본의 노골적인 폄하(explicit disparaging)의 뜻이 담겨 있으며, 당시 외국에선 대부분 ‘망명(asylum)’이라고 했다. 실제로도 고종은 한양도성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파천이 아니고 외국 대사관(embassy) 또는 공사관으로 피난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일본 공사관, 일본인들이 발행하던 한성신보(漢城新報)와 친일파들(Japanese collaborators)만이 ‘파천’이라고 불렀다.

기울어가는(declining) 나라의 왕들이 그렇듯 고종 역시 ‘비운의 왕(star-crossed king)’이었다. 1863년 왕의 자리에 오른 그는 1907년 강제 퇴위(forced to abdicate the throne)될 때까지 44년간 나라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시기 동안 조선과 대한제국은 너무도 무력했다(powerless). 급변하는(rapidly changing) 세계의 흐름 속에서 제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할 뿐이었다(run about in confusion).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at the tender age of 12) 왕이 된 고종은 흥선대원군의 꼭두각시(puppet)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고종이 20대가 되자 이번엔 부인인 명성황후가 전면에 나서(step to the front) 흥선대원군과 맞섰다(stand up to). 이처럼 고종은 정작 늘 권력의 중심에서 반걸음 벗어나(half a step away) 있었다.

1890년(고종 27)에 러시아인 사바틴(A.I.Sabatin)이 설계한 르네상스 양식의 러시아 공사관 건물. 출처=서울시 중구청.
1890년(고종 27)에 러시아인 사바틴(A.I.Sabatin)이 설계한 르네상스 양식의 러시아 공사관 건물. 출처=서울시 중구청.

그러던 1895년, 고종을 두려움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assassination)한 을미사변이다. 러시아를 등에 업었던 명성황후를 제거한 일본은 노골적으로 내정간섭(interference in domestic affairs)을 시작했다. 국정은 친일파와 친러파 등이 뒤섞여 혼란에 빠졌고,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없이 독자적인 판단(independent judgment)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고종은 고심 끝에(after much consideration) ‘아관파천’이란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상황과 이유를 떠나 왕이 ‘도망(escape)’을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치욕스런(disgraceful) 일이었다. 최후의 보루(the last bastion)가 되어야 할 궁궐은 주인을 잃은 채 텅 비어버렸고, 그렇게 한 나라의 위엄(dignity)과 자존심(pride)도 뭉개졌다. 일 년 뒤에 러시아 공관에서 궁궐로 돌아온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하지만 10년 뒤인 1907년 강제로 퇴위되고, 대한제국은 1910년 일본의 식민지(colony)로 전락한다. 

2022년 대선(presidential election)이 목전에 다가온 지금, 아관파천 당시의 한반도(the Korean peninsular) 주변 상황이나 작금의 상황(the current situation)은 사실상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물론 우리나라는 그동안 엄청난 경제 성장(economic growth)을 이뤄냈지만, 중국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주변 국가들(neighboring countries)과 비교할 땐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뒤처진다(fall behind). 특히 최근엔 동북아시아(Northeast Asia) 각국의 갈등(conflicts)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고, 군비 경쟁(armament race) 또한 불붙고 있다. 국내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엔 친일파, 친중파, 친러파, 쇄국파(seclusionists) 등으로 갈려서 우리나라의 뜻과 힘을 한데 모으지 못했다면, 지금은 진영 간 좌우이념 대립(ideological confrontations between the left and the right)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아관파천이 남긴 쓰라린 교훈(bitter lesson)을 기억해야 한다. 그 치욕스런 역사와 그 치욕스런 오늘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 김재원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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