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61) 새끼돼지는 두세 번째가 굵고 튼튼하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자릿도새기 : 새끼돼지
* 두싀 불차 : 두세 번째(次)
* 윤진다 : 굵다. 튼튼하다, 옹골차다

옛 선인들은 사시사철 밭 갈아 씨 뿌려 김매고 거둬들였을 뿐 아니라, 소나 말, 돼지와 가금류인 닭을 기르며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밭농사만 아니라 가축을 기르는 데도 온 정성을 다 쏟았다. 지금처럼 돈만 가지면 해결되는 시대가 아니어서 직접 생산해 살림을 꾸리다 남은 것을 시장에 대가 팔아 살아갈 밑천을 장만했던 것이다. 여인들은 날씨를 보아가며 웬만하면 바다로 나가 물질해 해산물을 캐고 따다가 가계에 충당했음은 말할 것이 없다.

밭 갈고 짐 나르는 데 큰 몫을 하던 소와 말은 농경시대를 살았던 옛 분들에게 없어선 안되는, 단순히 가축을 넘어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었다. 쇠막(외양간)에 우마가 있느냐 없느냐, 또 있으면 몇 마리나 있느냐가 부(富)를 가늠하는 척도가 됐음은 물론이었다.

마소에 비할 바는 아니나, 그에 못지않은 것으로 돼지를 꼽게 된다. 자녀의 혼인 날짜를 잡을 때 집 통시(돼지를 키우던 재래식 제주의 측간)에 있는 돼지를 셈에 넣을 정도였다. 

우선 택일기를 얻고 집에 돼지가 어느 정도 큰 놈이 있으면, 살았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통시에 돼지 두 마리를 기르기도 한 것은 미리 대사(大事)에 대비하고자 한 방책이었으니, 여간 지혜로운 게 아니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돼지는 가용(家用)을 마련하는 데도 적잖게 유용했다. 워낙 다산(多産)이라 한꺼번에 열 마리가 넘는 새끼를 낳기도 했다. 그게 다 돈이다.

‘자릿도새긴 두싀 불체가 윤진다’에는 비록 새끼돼지를 낳는 횟수는 줄이더라도 최대 수익을 얻고 보자는, 자그마치 경제 원리가 함축돼 있다. 사진=픽사베이.

하지만 무조건 많이 낳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몇 달 뒤 가축시장에 내다 팔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살 사람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튼튼한 것을 원한다. 크고 기운 찬 것을 먼저 고르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돼지는 한 생에 다섯 번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한데 낳는 횟수가 거듭할수록 새끼가 눈에 띄게 작고 약해진다고 한다. 이왕 먹이 주면서 정성을 다해 키워 낳는 새끼가 굵고 튼실해야 잘 팔릴 것 아닌가. 잘 팔린다 함은 조금이라도 값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다. 다섯 번째로 갈수록 지난번에 비해 낳는 새끼의 덩치가 작고 약해지는 걸 그냥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세 번째 낳는 새끼를 선호했다. 그 기간에 구정물(곡식의 겨를 타 돼지에게 먹이던 음식물 찌꺼기를 설거지한 물)이나마 거르지 않고 잘 먹였다. 그런 허드렛 먹이지만 잘 먹이면 그만큼 잘 크던 게 돼지였다.

‘자릿도새긴 두싀 불체가 윤진다’에는 비록 새끼돼지를 낳는 횟수는 줄이더라도 최대 수익을 얻고 보자는, 자그마치 경제 원리가 함축돼 있다. 오랜 농촌 생활에서 얻어낸 값진 경험칙이 아닐 수 없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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