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롱뇽 관찰일기] (4) 2월5일~2월10일

‘제주도롱뇽 관찰일기’는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이자 ‘고봉선의 마을책방을 찾아書’ 필자로 독자들과 익숙한 고봉선 작가가 쓰는 생명 이야기입니다. 필자가 10여 년전 제주 항파두성의 장수물에서 우연히 마주친 도롱뇽 알이 매번 훼손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매년 꾸준히 이들을 관찰해왔습니다. 제주도롱뇽은 몇 안 되는 한국고유종으로, 도롱뇽이 살고 있다는 건 청정지역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이 멸종된다는 것은 질병 확산과 지구 기후위기를 알려주는 경고등인 셈입니다. 제주도롱뇽이 이곳에서 맘 놓고 살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는 필자의 호소는 결국 나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자는 우리 모두의 호소이기도 합니다. 도롱뇽 알의 첫 산란에서 마지막 산란까지 관찰일기 연재가 이어집니다. / 편집자 글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05일 토요일 밤 11시 30분

낮 12시 39분, 산간엔 대설주의보가 내렸지만 간간이 눈발만 날릴 뿐, 산뜻하면서도 차갑게 보이는 구름이다.
낮 12시 39분, 산간엔 대설주의보가 내렸지만 간간이 눈발만 날릴 뿐, 산뜻하면서도 차갑게 보이는 구름이다.

옆새우와 어머니의 사삼

준수와 함께 장수물로 갔다. 물이 줄어든 것 외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그 많던 연가시도 어디로 갔는지, 장수발자국엔 옆새우만 부메랑이 날 듯 슝 슝 움직이고 있다. 
새우라고 하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난 딱새우나 새우젓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웃집 이춘아 삼춘을 찾아갔다. 미루다가 듣지 못한 어머니의 4⸱3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같이 총을 맞았다는 것까지뿐, 워낙 말이 없으셨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춘아 삼춘도 자세히 모르고 계셨다. 2019년 4⸱3 행사 때 구 도립병원(중앙성당 옆)에서 전시했던 글을 꺼내 보았다.

당유자 / 고봉선

꽃다운 스무 살에 총알 품은 내 어머니 
살아야 했느니라 살아야 했느니라 
당유자 칼질을 하며 전해 들은 그 사월 

중천의 붉은 해도 사색이 되더란다 
다리에 총알 빼듯 박힌 씨앗 뽑아내며 
노랗게 잘린 끝에서 진액 질질 흐른다

2019년, 93세가 되자마자 영면에 드신 어머니. 어머니 영정 사진을 바라본다. 뭐라고 한마디 하실 것만 같은 표정, 아프다. 어머니가 눈을 감은 후에야 묻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 이야기들이 가슴에서는 끝도 없이 쏟아진다. 하지만 어머니께선 입으로 쏟아내지 않는다. 어리석게도 난 어머니가 사진 속에서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4‧3 피해자 접수 기간에도 극구 신청을 마다하시던 어머니. 떠올리기조차 싫었으리. 아니, 모든 것 다 놓아도 그날의 분노만큼은 놓지 못했으리.

스물두 살 가을 어느 날 늦은 오후, 외할머니께 등 떠밀린 어머니는 이웃인 춘아 삼춘과 산으로 달렸다. 강세기왓을 막 지났을 때, 길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겁에 질린 어머니가 돌아서며 돌담을 넘는 순간이다.

탕! 탕!
어머닌 밭담 안으로 뒹굴었다. 밭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밭이었다. 총알 하나는 손에 맞았고, 하나는 장딴지를 파고들었다. 가시자왈에 숨었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손을 머릿수건으로 감쌌다. 

“분명히 (총에) 맞았는데…….”
총에 맞은 꿩을 찾듯 밭담 너머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들와들 떨다가 어두워지자 어머니는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길에는 그 사람이 버티고 있었다. 순식간에 집으로 가는 길이 사라지고 말았다.

어머니의 파래진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은 질토래비를 불렀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총알 독이 심장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허벅지를 묶으라고 했다. 어머닌 당유자 칼질을 하면서, 그때 좋은 사람을 만나서 살았다고 하셨다. 

총알을 박은 채 누워만 계셔야 했던 어머니, 장딴지엔 심한 농이 앉았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 일곱 살 때 돌아가시고, 외삼촌도 숨어 계셨다. 외할머니와 이웃 삼춘은 어머니를 삼태기에 눕히고 이웃 마을 의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헝겊을 둘둘 말아 각짓불에 심지를 심듯, 약을 바르며 오래도록 치료받았다.

그러나 낫지 않았다. 후에, 숯불에 칼을 달구고 마취도 없이 총알을 빼냈다. 총 맞은 날부터 총알을 빼는 날까지 묶었던 흔적, 영면에 드는 순간까지 허벅지가 움푹 패 있다. 그날을 잊을 수 없는 이유다.

춘아 삼춘은 등에 총을 맞았다고 하셨다. 다행히 총알은 몸을 관통하여 앞으로 나왔다고 했다. 춘아 삼춘은 동네 사람의 부축으로 집에 온 뒤 의원한테 갔다. 의원이 임신이라고 했다. 
누군가 민물새우를 먹으면 낫는다고 하면서 일고여덟 마리를 잡아다 주었다. 삼춘은 그 새우를 먹고 나았다고 했다. 아기도 무사히 낳았다. 우린 그때 태어난 아기를 화자 언니라고 불렀다. 

이후 나는 민물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정말 새우가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를 민물새우는 넘치도록 많았다. 

김병수 박사의 말에 의하면 장수발자국에 있는 건 옆새우라고 한다. 옆새우는 마치 부메랑이 날아가듯 움직였다. 가만히 보면 돈벌레처럼 보이다가 쥐며느리처럼도 보였다. 

옆새우가 서식하는 곳에는 가재가 살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가재는 옆새우를 먹이로 삼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글쎄다, 장수물에서 놀아봤어야 어릴 적 가재를 잡던지 할 텐데, 어릴 적 놀던 곳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고성천이 주 무대였다. 난 가재라는 걸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옆새우의 종류는 많지만 난 일일이 그들을 파헤칠 생각이 전혀 없다. 나무 위키에 따르면 가재가 1급수의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정보가 있지만, 가재는 2급수 중 빈부수성(수질을 생물학적 조건에 따라 네 단계로 분류할 때, 가장 오염도가 낮은 수역에서 나타나는 특성)이 유지되는 물에서까지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옆새우는 1급수 환경에서만 서식할 수 있다. 환경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옆새우는 그 서식처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도롱뇽이 살고 옆새우가 사는 곳, 장수발자국이 1급 청정수라는 증거다.

2월24일, 장수발자국 안에서 촬영한 옆새우다. 좁은 공간에 꽤 여러 마리가 살고 있다.
2월24일, 장수발자국 안에서 촬영한 옆새우다. 좁은 공간에 꽤 여러 마리가 살고 있다.
낮 12시 34분 남실, 알집 속에 든 알은 들깨 씨앗도 같고 무 씨앗처럼도 보인다.
낮 12시 34분 남실, 알집 속에 든 알은 들깨 씨앗도 같고 무 씨앗처럼도 보인다.
낮 12시 36분 서실이다.
낮 12시 36분 서실이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6일 일요일 밤 10시 40분

오후 2시 2분, 장수물 입구 서남쪽 하늘이다.
오후 2시 2분, 장수물 입구 서남쪽 하늘이다.
오후 2시 7분, 남실 무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알집이다. 몇 개의 알이 살아 있다.
오후 2시 7분, 남실 무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알집이다. 몇 개의 알이 살아 있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7일 월요일 밤 10시 50분

오후 5시 35분, 장수물 입구에서 바라본 북쪽 하늘이다.
오후 5시 35분, 장수물 입구에서 바라본 북쪽 하늘이다.
오후 5시 33분, 산란장 남실이다. 밭담 쌓을 만한 크기의 돌을 중심으로 알이 몰려 있다. 물이 줄어들면서 돌담 절반이 물 위로 드러났다.
오후 5시 33분, 산란장 남실이다. 밭담 쌓을 만한 크기의 돌을 중심으로 알이 몰려 있다. 물이 줄어들면서 돌담 절반이 물 위로 드러났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8일 화요일 밤 11시 10분

오후 4시 35분, 이미 어둠에 접어들었다는 듯 낮에는 하얗던 구름이 까맣게 되어 해를 삼키고 있다. 장수발자국 입구에서 바라보는 서남쪽 하늘이다.
오후 4시 35분, 이미 어둠에 접어들었다는 듯 낮에는 하얗던 구름이 까맣게 되어 해를 삼키고 있다. 장수발자국 입구에서 바라보는 서남쪽 하늘이다.

도롱뇽 보호 표지판이 세워지다

도롱뇽 보호 표지판을 세우는 날이다. 환경정책과 허창훈 주무관님께 연락을 받고 장수물로 갔다. 생각보다 여러 사람이 와 있었다. 알고 봤더니 장수물 둘레를 돌면서 쓰레기를 줍는 등 환경을 정비하는 직원들이었다. 허창훈 주무관님께서는 표지판을 세우러 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고 했다.

그분들 역시 장수발자국에 도롱뇽이 알을 낳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호의 필요성은 의식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런데 오늘 도롱뇽 보호 표지판을 세우는 현장에서 딱 마주쳤다. 그들은 이제 산란기 동안엔 솔잎도 함부로 치우지 않겠다고 했다. 뿌듯했다. 이 정도만 되어도 도롱뇽 보호 표지판을 세우는 효과는 충분히 드러나는 셈이다. 한 분은 나에게 도롱뇽 알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냇가로 내려가서 세 군데의 산란장을 보여드렸다. 

그분들이 떠나고, 표지판을 세울 차례다. 우리 마을 리사무장 아들인 지운이는 멀리서만 바라보자니 좀이 쑤시나 보다. 장수발자국 머리로 올라가더니 표지판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 지운이는 이미 장수물 도롱뇽 지킴이다.

드디어 표지판이 세워졌다. “우리 함께 살아요.”를 주문하는 표지판은 인자한 모습으로 경고하듯 달래듯 장수발자국을 내려다보고 있다. 오늘이 있기까지 허창훈 주무관님의 노고가 많았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오후 2시 22분. 올해 3학년이 되는 지운이가 도롱뇽 보호 표지판을 세우기 위해 작업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 마을 리사무장 아들인 지운이는 이미 장수물 도롱뇽 지킴이다.
오후 2시 22분. 올해 3학년이 되는 지운이가 도롱뇽 보호 표지판을 세우기 위해 작업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 마을 리사무장 아들인 지운이는 이미 장수물 도롱뇽 지킴이다.
오후 3시 무렵에 세워진 제주도롱뇽 보호 안내판이다.
오후 3시 무렵에 세워진 제주도롱뇽 보호 안내판이다.

이곳 장수물은 제주도롱뇽의 마을입니다. 길고 가는 몸, 짧은 다리가 인상적인 제주도롱뇽은 몇 안 되는 한국고유종으로, 고목 밑에서 쉬다가 거미나 곤충, 지렁이 같은 먹이를 찾아 밤이 되면 활동합니다.

제주도롱뇽은 1월 말부터 4월 말까지 작은 개울이나 물웅덩이에 알을 낳으며 투명하고 길쭉한 알주머니에는 약 50여 개의 알이 들어 있습니다.

도롱뇽이 살고 있다는 건 청정지역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이 멸종된다는 것은 곧 질병 확산과 지구 기후 위기를 알려주는 경고등인 셈입니다. 제주도롱뇽이 이곳에서 맘 놓고 살 수 있도록 보호해주세요. 

우리 함께 살아요.

오후 2시 20분, 남실 동쪽으로 붙은 알집이다. 알에선 콩나물 뿌리 같은 게 보인다. 알집 하나엔 네 개의 알이 하얗게 부풀었는데 왜인지 모르겠다.
오후 2시 20분, 남실 동쪽으로 붙은 알집이다. 알에선 콩나물 뿌리 같은 게 보인다. 알집 하나엔 네 개의 알이 하얗게 부풀었는데 왜인지 모르겠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9일 수요일 밤 11시 30분

오후 1시 35분 장수발자국 입구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하늘이다.
오후 1시 35분 장수발자국 입구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하늘이다.
오후 1시 42분, 물이 줄어들면서 남실 한쪽 끝 알집이 말라가고 있다.
오후 1시 42분, 물이 줄어들면서 남실 한쪽 끝 알집이 말라가고 있다.
오후 1시 43분, 장수발자국에 들렀던 사람들이 나가고 있다.
오후 1시 43분, 장수발자국에 들렀던 사람들이 나가고 있다.

저녁 7시가 되자 한두 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말라가던 도롱뇽 알집이 생각났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이 뛰었다. 

비가 내린다. 도롱뇽이 장수발자국에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수업을 마친 뒤 아들을 앞세우고 장수발자국으로 갔다. 그러나 아직은 이른 시간인가 보다. 내려가는 계단엔 폭포처럼 물이 세차게 흐르는데, 장수발자국엔 도롱뇽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냇가로 내려갔다. 손전등을 켜고 살펴도 도롱뇽은 없다. 서실에 가서야 겨우 수컷 도롱뇽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비야, 제발 충분히 내려다오. 도롱뇽들이 알을 낳을 수 있게 말이다.

오후 9시 55분 서실, 수컷 도롱뇽 한 마리가 보인다.
오후 9시 55분 서실, 수컷 도롱뇽 한 마리가 보인다.
오후 9시 58분, 장수발자국으로 내려서는 계단에는 폭포처럼 물이 흐르고 있다.
오후 9시 58분, 장수발자국으로 내려서는 계단에는 폭포처럼 물이 흐르고 있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0일 목요일 밤 10시 55분

오후 1시 19분, 장수발자국 위 도로에서 서북쪽을 향해 바라본 하늘엔 구름이 날고 있다.
오후 1시 19분, 장수발자국 위 도로에서 서북쪽을 향해 바라본 하늘엔 구름이 날고 있다.
오후 1시 13분, 위에서 내려본 남실이다. 지난밤의 비로 남실이 물에 잠겼다.
오후 1시 13분, 위에서 내려본 남실이다. 지난밤의 비로 남실이 물에 잠겼다.

엊저녁 내린 비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새로 낳은 알도 없었다. 겨우 서실 바위 밑에서 암컷 도롱뇽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제 2월도 중순이다. 곧 산란의 절정으로 접어든다는 뜻이다. 올해는 도롱뇽들도 장수발자국에서 맘 놓고 알을 낳을 수 있겠지. 장수발자국을 지켜줄 표지판이 있으니 든든하다. 

 

# 고봉선 작가는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