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④ 내면을 성찰하며 걷는 제주올레 3-A코스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제주올레 3코스는 2008년 9월 27일 온평리 ‘동개맛, 터웃개’에서 9코스로 개장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올레 코스가 재조정되면서 3코스로 명명되었다. 그 후 2015년 5월 23일 3-B 코스가 개장되면서, 3-A 코스로 변경된 가장 ‘지럭시’가 진 올레이다. 구간은 온평리 ’동개맛‘에서 표선리 당케 백사장까지  20.9km, 53리이다.

온평리 터웃개. ⓒ윤봉택
온평리 원담. ⓒ윤봉택

하지만 신풍포구 ‘머럭’에 있는 ‘거린’ Y형 올레에서 3-A·B 코스가 합류되기에 즐기면서 오름과 벌판 목장 그리고 해변을 차례로 순례할 수 있는 멋진 코스이다. 하여 삶이 무척 고단하실 때 순례하라고 추천하고픈 코스가 바로 제주올레 3-A이다. 통오름·독자봉에서 쉼표를, 김영갑 갤러리 마당에서 미로를 걸으며 내면을 성찰하다 보면 어느덧 자신이 제주오름이 되어 활화산으로 움틀거리는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A 코스는 올레가 긴 만큼 지나는 마을 또한 많다. 성산읍 온평리를 시작으로 신산리·난산리·삼달리·신풍리·신천리·표선면하천리·표선리 등 여덟 마을과 오름 두 개를 지나는 만큼 볼거리 느낄 거리 또한 다양하다.

온평리 서포구. ⓒ윤봉택

3-A·B 거린코스는 인연의 땅 온평리 ‘터웃개’에서 시작된다. 2분 남짓 거리에 도댓불 지나면 뱃머리 ‘섯개맛’이 물살 풀어 오고, 떠난 배들이 만선 가득 닻 내리는 포구의 내음을 읽을 수 있다.

‘섯개맛’이라 부르는 온평리 서포구의 ‘안케머리’에서 A·B코스로 나눠지고 나서는 다시 15km 지점 신풍포구 초입에서 ᄒᆞᆫ올레로 만나 신풍목장에서 잠시 높새ᄇᆞᄅᆞᆷ으로 ‘검불리다’가 표선 당캐포구 ‘한모살’ 백사장에서 마무리된다. A코스에서 마을로 들어서면 ‘거머리’와 ‘너덩팟’이 이어지고, 온평리의 고씨 입향조가 살았던 ‘고치모루’라 부르는 ‘고치밋동산’을 지나면 일주도로이다. 

온평리 거머리. ⓒ윤봉택
온평리 너덩팟. ⓒ윤봉택
온평리 고치밋동산 입구. ⓒ윤봉택

여기에서 750m 나아가면 지금의 ‘열운이’가 설촌 되기 전 주민들이 거주하였던 ‘묵은 열운이’가 있다. 이곳 지형이 다른 곳보다 높아 구름이 자주 뒤 덮이는 곳이지만, 이곳에서는 구름 사이로 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열운이(閱雲里)라 불렀다고 한다. 멀지 않은 곳에 "서펜한집"이라는 ‘묵은열운이당’이 있다. 온평리와 신산리 경계인 3km 지점 주변은 온통 돌밭이 있는데, 옛날에 군사들이 이곳에 진을 쳤다고 하여 ‘진생이’라고 하며, 올레 좌우에는 아왜나무가 우거져 있다. 

온평리 묵은열운이. ⓒ윤봉택
신산리 진생이. ⓒ윤봉택

신산리로 들어서면 ‘양에골’이라는 골새가 있고, 그 ‘거린질 가름’ 신산리 ‘뒷벵듸’에 ‘보절·부자율’이라 부르는 명당이 있다. 마을 구전에 따르면 이곳에 묘를 쓰면 자손이 부와 명예를 누린다고 하였는데, 현재는 강(康)씨 선묘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새모슬·난초들·난야리·난뫼·난미라 부르는 난산리이다. 난산리에는 바다가 없지만 유건에오름·나시리오름·모구리·통오름 등이 있어 더 아늑한 중산간 마을이다.

신산리 양애골 보절. ⓒ윤봉택
난산리 검질웨기. ⓒ윤봉택
난산리 국제모루. ⓒ윤봉택
난산리 서당골 신목. ⓒ윤봉택

올레 따라 난산리 마을 서쪽으로 들어서면 ‘검질웨기’ 지나 5km 지점 건너 ‘국제모루’라고 하는 ‘포제단’ 터가 있고, 좀 더 마을로 들어서면 ‘서당골’ 입구 길가에 ‘서당’ 신목이 물색을 날리고 있다. 좀 더 가면 지난날 마을 총회를 개최하여 풍헌을 선출하였던 ‘면회모루’이다. 이곳에서 정자가 세워진 ‘설겡이머물’을 지나다가 난산리에서 8대 삶을 지켜오신 87세 병자생 김응숙 삼촌을 만났다. 큰아들이 나랑 동갑이라시며 마을 지명에 대하여 말씀을 주셨다. 올레 걷는 드릇팟 마다 놈삐 수확이 한창이다. 돌담을 지나 ‘꽝머드니’에서 왼쪽으로 돌아서니, 난산리와 신산리 경계점인 통오름이 황토 흙을 ᄒᆞᆫ골체 담아 앉아 있다. 

난산리 면회모루. ⓒ윤봉택
난산리 설겡이머물. ⓒ윤봉택
난산리에서 8대 삶을 지켜오신 87세 병자생 김응숙 삼촌. ⓒ윤봉택

통오름 초입 오른쪽엔 ‘영산이골’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오래전 오조리 강씨 집안에 영리하고 총명한 영산이라는 하인이 있었는데, 그가 모시던 강씨 집안 인세 공이라는 분이 세상을 떠나자, 영산이는 상주에게 좋은 묘 터가 있음을 알려주니, 상주는 그곳에 묘를 쓰게 하였다.”고 전한다.

난산리 통오름 초입. ⓒ윤봉택
통오름 영산이골. ⓒ윤봉택
독자봉. ⓒ윤봉택
삼달리 독자봉과 오송이. ⓒ윤봉택

통오름에서 신산리 독자봉은 한 뼘 거리이다. 독자봉수 터를 지나 내려서면 신산리 지나 삼달리가 코 앞이다. ‘통오름알’에서 ‘오송이’이 지나면 길섶 소공원에 작은 ‘소뭇기연못’이 있고, 11km 지점 ‘접시왓’을 넘으면 마을 초입이 ‘골진밧’이다. 뫼미모루·와강이라 부르는 삼달리는 선비의 고향이다. 이 마을 선비 강성익(1747~1819)은 정조 24년 윤4월 26일 제주의 흉년에 대비한 곡물 보관 저장법과 국둔마 관리에 대하여 상소하였고, 정조가 이를 사리에 맞게 처리함으로써 강성익은 도민의 칭송을 받게 되었다. 후에 낙향한 강성익은 고향마을에 헌수단(獻壽壇)을 세워 이러한 성상의 만수를 기원하였는데, 이곳을 헌수단이라 하였다. 그 헌수단에는 “성상여천聖恩如天 성상께서 내려주신 은혜가 하늘과 같아/도보무지圖報無地 보답하고자 하여도 달리 보답할 곳이 없습니다/근이설단謹以設壇 이에 삼가 성상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단을 세워/배헌만수拜獻萬壽 만세의 수를 드리옵니다/上之卽位五年甲子四月三日 微臣 康聖翊 순조 즉위 5년(1804) 갑자년 4월 3일 미천한 신하 강성익”이라고 하여 삼달1리에 헌수단이 세워져 있다.

삼달리 소뭇기연못. ⓒ윤봉택
삼달리 접시왓. ⓒ윤봉택
삼달리 골진밧. ⓒ윤봉택
삼달리 헌수단 입구. ⓒ윤봉택
삼달리 헌수각. ⓒ윤봉택
삼달리 헌수단비. ⓒ윤봉택

남쪽으로 내려서면 김영갑 갤러리가 있다.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과의 만남은 1999년 한라식물사랑회가 창립되면서 동인들과 함께 답사하던 중 성읍2리 작가의 작업실에서 처음 만났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박훈일 관장이 갤러리를 맡아 온갖 일을 다 하고 있음이 안쓰럽다. 바로 아래에서 점심을 찍고 ‘춘댕이골’ 못미처 서쪽으로 돌아서니 ‘물진밧’이다. 골 따라 13km 지점 지나 신풍교차로 건너면 신풍포구이다. 이곳에서 3-A·B코스 거린올레가 하나 되어 표선 당케 백사장까지 이어진다.

김영갑갤러리. ⓒ윤봉택
삼달리 물진밧. ⓒ윤봉택

무작정 걸어도 좋은 이곳에선 시원한 해안선을 안고 가는 신풍·신천목장 올레에 앉아 ‘칼선도리’를 마주하며 또 다른 ‘용궁올레’를 찾아보면, 머언 바닷 길이 물마루 위로 보인다. 신천 지나 천미천 세월교를 건너면 표선 하천리이고, 여기에서 ‘봉문이원’ 지나면 표선리 ‘한모살’ 백사장이다. 신풍포구에서 ‘한모살’까지 상세 여정은 다음 3-B 코스에서 소개하기로 하겠다.

고망난돌 용궁올레. ⓒ윤봉택
천미천 하구. ⓒ윤봉택
봉문이원. ⓒ윤봉택
표선 한모살. ⓒ윤봉택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로 격주로 공동 게재합니다. 

# 필자 윤봉택 시인은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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