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40) 우도면 ‘밤수지맨드라미’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고봉선 작가가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글]

2020년 8월에 시작한 “마을 책방을 찾아書”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여기까지 왔는데, 뒤돌아보니 아득하다. 연재 마지막은 이밤수지와 맨드라미최로 불리는 이의선⸱최영재 씨 부부의 책방 “밤수지맨드라미”에 다녀왔다. 어쩌면 가장 먼 곳, 그러나 한번 다녀오고 나면 가장 가까운 곳처럼 여겨지는 밤수지맨드라미는 우도에 있는 책방이다. 우도로 가는 길은 하귀일초에 다니는 충영, 서윤 남매와 함께했다.

밤수지맨드라미란 제주 바닷속에 사는 멸종위기의 분홍색 산호를 말한다. 부부는 우리 삶에서 멀어져만 가는 책의 모습과 밤수지맨드라미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 기억하고, 더 담아두고 더 가까이에 두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산호와 물고기처럼 조화로운 삶을 이루는 그날을 꿈꾸며 우도에 책방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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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포항으로 가는 길은 유채꽃이 화사하게 핀 봄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우도에 집을 마련하다”

올해 나이 마흔넷, 고향이 서울이라는 이밤수지는 수더분하고도 편안한 인상이었다. 빨려 들어갈 듯 유난히 큰 눈동자를 마주하자 어질디어진 사슴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부부는 결혼 전부터 시골에서 살자고 의견을 모았다. 남편은 무전여행을 하듯 개조한 봉고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집을 구하러 다녔다.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계속 어그러졌다. 그렇게 물색하다가 발길을 멈추게 한 곳이 우도였다. 2013년 겨울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이밤수지가 우도의 집을 만나던 날, 그날따라 집안이며 텃밭을 찾아온 햇살은 환장할 정도로 고왔다. 그 따사로운 햇살이 하도 맘에 들어서 ‘한 번 살아보자.’ 하고 결심하였다. 

진정한 새 출발이다. 결혼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원했던 부부는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없는 낯선 곳에서 살고 싶었다. 자신들의 손으로 집도 고치고. 기존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해보자고 했다. 결혼과 함께 우도에서 이를 실행하는 게 새로운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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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목동항에 내리면 우도의 상징인 소상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달라진 우도”

지난 2009년 6월 7일, 난 제주도 한 바퀴 도보 여행 중 16일째 되던 날 우도에 들렀었다. 그런데 다시 보는 우도는 그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어촌이었던 섬은 어느 순간 농촌이 되고,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이젠 상업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에 내가 본 우도는 나지막하고도 탁 트인 섬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큰 가마솥에 땅콩을 볶으며 젓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도 지금은 기계화되었다. 부부가 이주하던 때와도 많이 달라졌다. 하물며 10년이 넘은 지금, 그때 그대로일 것으로 생각하는 내가 어리석다.

너무 달라진 우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그 발전 뒤엔 숨겨진 것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업화란 이름 아래 환경이 파괴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숨겨진 너머에서 우선시 되는 것들, 문득 이스터섬과 투발루가 생각났다.

풍부한 천연자원에 온화한 기후를 지닌 남태평양의 이스터섬은 거대 석상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정치체제와 노동력을 갖춘 나라다. 그러나 이 섬의 문명은 소멸하고 말았다. 왜일까? 주어진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도 9개의 섬 중 2개의 섬은 이미 잠겼다. 문제는 해수면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러는 이민을 떠나고 있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 무조건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을 친구처럼 보살피며 살아온 투발루 국민은 환경오염 물질을 내버린 적이 없다. 이산화탄소도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놓이며 국가 포기선언을 해야 했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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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검멀레해수욕장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편리란 이름 뒤에 숨은 일회용품”

이 작은 우도의 문명 냄새를 걱정한다며 꼴깞 떠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문명을 이루고 사는 한 변화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멈춰 있으면 발전도 없지만 살아남기도 힘들다. 변화는 필요하다. 다만 변화는 미래를 위한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배에서 내린 우린 버스 매표소로 가서 표를 끊은 다음 버스를 탔다. 그리고 이밤수지가 일러준 대로 전흘동 해녀탈의장 앞에서 내려달라고 기사님께 부탁했다. 그러나 우리가 탄 버스는 그곳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검멀레해수욕장에서 내리고, 해안도로 순환 버스가 오면 타라고 했다.

40여 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우린 가까이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으며 땅콩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일회용품을 남용하지 않는 것, 가장 가까이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기본이다. 더군다나 급격한 변화와 발전 속에서 환경을 생각한다면, 가게에서 먹는 사람에게까지 일회용 용기에 담아서 주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게 주인은 우리가 주문한 아이스크림을 일회용 용기에 담아 주었다. 왜였을까? 여기엔 아마도 편리란 이유가 따를 것이다. 우도에 있는 상가 대부분이 일회용 용기를 이용한다고 했다. 난 우도의 이런 사실들이 더 안타까웠다. 적극적으로 우도를 지켜야 할 사람은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과 주민이기 때문이다.

우도엔 지금 리조트가 오픈을 앞두고 있다. 이는 발전과 파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제 천진항으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섬 우도가 아니라 리조트를 먼저 보게 된다. 어느 측면에서 봐도 우도의 풍경은 변하는 것이다. 막을 수 없는 변화, 상가에서 사용하는 일회용품이라도 줄여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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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 전흘동 해녀탈의장에서 내리면 100여 미터 정도의 지점에 밤수지맨드라미 책방이 있다. 충영이와 서윤이가 책방을 찾아서 앞서가고 있다. 우린 책방을 지나쳤다. 다시 돌아와야 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을 열다”

우도에서 책방이라……. 유지는 될까? 이 또한 기우인지 모른다. 관광지 순환 버스엔 손님이 꽉꽉 찼다. 이로 봤을 때 책방에도 손님은 올 거라는 뜻이다.

2017년 7월, 부부는 우도에 책방을 열었다. 서울에서 10년 넘게 회사만 다니다가 낯선 곳에서 책방을 열기란 쉽지 않았다. 이렇듯 경험이 전혀 없던 부부는 자그마치 3년이란 시간 동안 고치고 또 고쳤다. 뼈대만 남기고 다 털어낸 집, 텐트 생활을 하면서 오늘 벽채를 꾸몄다면 내일은 화장실을 꾸몄다. 그러는 동안 자만했던 마음도 돌아보게 되고, 이견 조율 등 많은 깨달음도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공들였기에 더 애착을 갖게 되었다. 

이주 후 3년이 넘는 시간을 부부는 어떻게 지냈을까? 기획과 홍보, 마케팅을 다루는 회사에 다녔던 이밤수지는 작가 한 분을 알게 되면서 전시 기획을 맡아서 하기도 했다. 남편도 톳 철이 되면 바다에 나가 일했다. 

“쟤들이 집을 고친대. 글쎄, 그런가 봐. 아마 금방 갈 거야.”

당연하지만 처음엔 이들을 경계하는 어르신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하지만 이도 잠시였다. 집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자 어르신들은 이들을 챙기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래, 진짜 살려나 보다. 니네 돈이 없을 거니까 와서 톳도 하고 뭐도 해라.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 차라리 가게라도 해라.”

동네 주민들은 일거리를 주는 등 진심으로 부부를 걱정해 주었다. 

하찮은 걱정 같지만, 의미는 컸다.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응원이자 관심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관심에서 부부는 우도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이러한 관심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장사하면서 밥은 먹고 사냐?’는 등 주민들의 관심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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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수지맨드라미 근처에서 바라보는 지미봉에 구름 한 조각이 걸려 있다. 사진=고봉선.ⓒ제주의소리

“책방을 하자”

우도에 오는 대부분 이주민은 가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부부는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출발만 생각했지 가게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 어른들은 당연한 것처럼 부부에게 무슨 가게를 할 거냐고 물었다. 처음엔 이런 질문조차도 생경했다. 

어쨌든 가게를 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우도란 작은 섬이 무색할 만큼 이곳엔 가게가 많다. 부부는 그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무슨 가게를 할까? 굴리고 굴리고 생각을 굴리다 보니 책이 있었다. 

부부는 늘 책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다. 그 갈증을 해결하는 길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뿐이다. 한동안 그렇게 책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 그러나 해갈되지 않았다. 책을 받고 보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직접 책을 보면서 만지거나 고르는 등 물성을 느끼고 싶었고, 책방 고유의 분위기도 느끼고 싶었다. 우도엔 그런 공간이 없었다. 

우도의 가게는 대부분 여행자의 패턴에 맞춰졌다. 그래서인지 어느 가게엘 가도 사람이 붐볐다. 이런 곳에서는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되었고, 오래 머무를 수도 없었다. 눈치보다는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더불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저녁에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다. 배 시간에 맞춰 모든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이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 보니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건 책방이었다. 우도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책방, 

‘우리가 책방을 하자.’

그렇게 책방을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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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관광을 즐기는 오토바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주민을 위한 책방”

막상 가게를 하자니 걱정도 설렘도 많았다. 부부는 여행자보다 우도라는 섬과 어울리는, 주민들이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최대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인테리어에 신경 썼다. 

“저걸로 먹고살 수 있을까, 요즘 누가 책을 본다고 책방을 하냐. 그냥 다른 걸 하지. 너무 걱정돼서 그런다.”

책방을 한다고 하자 주민들은 걱정부터 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동네 어르신들의 염려처럼 책방을 열었지만 손님이 없었다. 

“쟤들 큰일 났다.”

이렇게 소문나면서 부부는 또 어르신들의 걱정을 샀다. 
모든 게 그렇지만 특히나 독서는 환경이다. 나의 부모님은 먹고살기 위해 일에 매달렸을 뿐 독서 교육은 알지 못했다. 독서의 중요성도 몰랐다. 그저 읽고 싶으면 읽는 것이고 싫으면 그만이다. 그나마 읽을 수 있는 책도 흔하지 않았다.

고교 시절 나는 언니, 오빠와 함께 자취했었다. 그때 자취방에 놀러 온 오빠 친구들이 종종 말했다.

“넌 책 사는 게 아깝지 않냐? 난 당구 치는 건 아깝지 않은데 책 사는 건 아깝더라.”

아닌 게 아니라 오빠는 돈만 생기면 책을 샀다. 덕분에 난 책 읽을 기회가 많았다. 책 속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건 나의 즐거움이었다. 만약 오빠가 아니었다면 나는 영영 책과 담쌓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독서환경은 오빠다.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독서는 멀어진다. 숲이 없는 우도엔 밤수지맨드라미가 독서의 숲을 조성하고 문식성을 키워줄 독서 씨앗이다. 우도와 어울리는 책방, 밤수지맨드라미는 여행자보다는 주민을 위한 책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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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 발견한 돌을 그대로 살려두어서 댓돌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보물섬”

이제 우도에도 해안도로 쪽은 남아 있는 옛날 집이 몇 없다. 그래도 몇몇 남은 집을 고칠 때면 연락이 오기도 한다.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라는 것이다.

부부가 보는 옛날 집은 그야말로 보물창고다. 집을 마련해서 고칠 때도 그랬고, 가게를 임대해서 고칠 때도 그랬다. 책방에 놓인 궤짝도 우도의 옛날 집에서 나온 것이다. 보물 같은 옛날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하나하나 모아 놓는 일은 우도에서 누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물건만이 보물은 아니다. 책방을 시작한 후 행복 이미지로 떠오르는 손님이 있다. 마음이 보물 같은 손님이었다. 

지금 입구로 사용하는 문은 원래 벽이었다. 어느 날 그쪽으로 문을 내기 위해 바닥을 팠다. 파다 보니 보물 중에서 보물인 제주의 돌 현무암이 나왔다. 차마 그곳을 덮을 수 없어서 댓돌 역할을 하도록 그냥 두었다. 

어느 여름날, 책방 안쪽에서 차를 마시는 손님이 두 분 계셨다. 그리고 또 한 손님이 오셨다. 손님을 맞이한 뒤 화장실에 갈 때였다. 그의 커다란 눈동자를 휘둥그레지게 하는 풍경이 있었다. 댓돌 위에 신발 세 켤레가 모범생처럼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어디선가 책방지기의 가슴에 훈풍이 불어왔다. 자신도 모르는 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풍경을 누가 훔쳐 갈까, 책방지기는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책방은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곳이다. 그런데 한 손님이 댓돌을 보고 으레 벗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아니다, 어쩌면 우리 전통가옥에서 그렇게 살아왔던 분인지도 모른다. 한 손님이 신발을 벗어 놓자 뒤에 오는 손님도 그런 줄 알고 벗어 놓은 것이다.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건 아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손님들의 마음이 귀엽고도 아름다웠다. 책방지기는 그 행복을 얼굴에 듬뿍 드러내면서 신발 신고 들어오는 곳이라고 알려드렸다. 우도에 와 살면서 책방지기는 바닥을 드러낼 줄 모르는 보물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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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내부 전체 모습이다. 충영이와 서윤이가 책을 고르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호객 아닌 호객 행위”

책방을 공사하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MBC 다큐 팀에서 연락이 왔다. 책방 공사에서부터 완공까지 취재하고 싶다는 것이다. 몇 번 거절했다. 그러자 다큐 팀은 직접 찾아왔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의미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오픈 날까지 촬영이 이어졌다. 

드디어 공사를 마치고 오픈 날이 되었다. MBC 다큐 팀에서 촬영까지 하는데 손님은 오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하는 수 없다. 이 아니면 잇몸이다. 밖으로 나가서 손님을 불러들이기로 했다. 

“저희가 책방을 열었는데 한번 들어와서 구경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렇게 호객 아닌 호객 행위로 첫 손님인 여성분에 이어 남성분까지 오셨다. 

“너무 좋은 공간이다.”

비록 호객 행위로 온 손님이지만 그들은 부부에게 용기를 주었다. 책방에 들어와 준 것도 용기를 준 것도 부부는 너무나 감사했다. 

제주 문화가 그렇지만, 나중엔 동네 분들도 오셨다. 와서는 덕담과 함께 부조도 해 주고, 책도 사 주셨다. 늘 도움을 주시면서도 미안해하는 분들도 계셨다. 하나라도 팔아주고 싶은데, 책을 몰라서 못 온다며 미안하다는 것이다. 콧등을 시큰하게 울리는 말, 부부는 주민들의 이런 마음이 오히려 감사하다. 오픈식을 마치고, 부부는 우도란 섬에서 크나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아, 이 우도의 정을 어떡할 거야!”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오며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그야말로 찐한 감동이 우도의 바닷물과 섞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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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본 밤수지맨드라미 책방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작은 행복”

마을책방의 책은 손님들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재고가 되기도 한다. 재고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을책방은 대형서점이 아니다. 그런데 대형서점에서나 다름없이 책을 다룰 때, 혹은 무례하게 책을 대하는 손님을 볼 땐 마음이 아프다. 가끔 책을 꺼내어 사진만 찍고 간다거나 소품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손님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죄송하기도 하다. 그러나 마을책방의 책은 소품으로 활용하라고 진열한 게 아니다. 자칫 재고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책들, 책 한 권 한 권이 소중하다. 

그래도 이 모든 불쾌를 덮어버릴 수 있는 고마움은 더 크고 더 많다. 밤수지맨드라미는 알다시피 섬 속의 섬에 있는 책방이다. 어디에서든 제주시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제법 먼 거리, 아니 가장 먼 곳에 있는 책방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거리도 아랑곳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 있다.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다시 배를 타야 한다. 이런 사실을 감내하고 부러 여기까지 온다고 생각하면 감사함의 크기는 더 커진다. 굳이 이곳이 아니어도 요즘은 제주에도 책방이 많다. 인터넷 서점도 있다. 그런데도 거리와 시간을 마다하고 여기까지 와준다는 건 뭉클한 감동이다. 책이 아니더라도 공간을 찾아주는 자체가 부부에겐 고마움이다. 

전날만 해도 파도가 꽤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오가던 바다는 호수인 양 잔잔했다. 갈매기가 떼를 이루고, 가마우지가 몸을 말리는 바다, 지미봉을 마주하며 우도로 들어가고 나오는 길은 아름답고도 평온했다. 

만약 책방 취재를 위해 나서지 않았다면, 난 아마 종일 잤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아름다운 여행을 즐기지도 못했거니와 오히려 피곤한 휴일이 되었을 것이다. 책방 취재란 이유를 구실삼아 우도를 오가는 동안 난 오감의 힐링을 누릴 수 있었다. 풍경과 함께 섬 속의 섬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행위 자체가 최고의 힐링이다. 우도에서 밤수지맨드라미가 사랑받는 이유다.

단골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물론 정하기 나름이다. 밤수지맨드라미에서 생각하는 단골의 개념은 보편적인 단골과 조금 다르다. 이곳엔 1년 혹은 시즌별로 한 번씩 오는 손님이 많다. 밤수지맨드라미에서는 이런 여행객을 단골의 범위에 둔다. 이런 단골이 늘어날 때마다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은 자꾸만 커간다. 이렇게 부부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감사함은 책방을 운영하는 에너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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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수지맨드라미 책방에서 내준 커피잔이 인상적이다. 70~80년대 다방 커피잔이다.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충영이와 서윤이는 구매한 책을 읽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드립커피와 어울리는 찻잔”

요새 찻잔은 흔히 머그잔이라 불리는, 잔이라기보다는 컵이다. 그런데 밤수지맨드라미에서의 찻잔은 흔히 보는 찻잔과 다르다. 어찌 보면 70~80년대 다방에서 사용하던 찻잔처럼도 보인다. 나도 예스러움을 그리고 있었던 것일까. 이 찻잔이 몹시도 반가웠다. 정수기의 버튼을 한번 누르면 물을 채울 수 있는 분량의 찻잔, 이런 찻잔은 우리 집에도 여러 개 있다. 

지금은 대소사를 치를 때 식당에서 음식을 대접하지만, 옛날엔 집에서 했다. 그러자니 적잖은 그릇이 필요했다. 이때 필요한 그릇은 부녀회에서 마련하였고, 일이 있을 땐 그걸 빌려다 사용하였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께선 그릇을 아예 사다 놓으셨다. 일을 치를 때마다 사용하고 난 뒤 그릇을 맞춰 놓아야 하는 게 성가시기도 했고, 6남매를 둔 상황에서 쓸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릇이 지금 남아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판을 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잔에 간식을 담아서 주었다. 아이스크림과 함께 커피스푼을 주면 아이들은 잔을 더 신기하게 여겼다.

밤수지맨드라미에서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냥 핸드드립으로 내리다 보니 잔도 드립커피와 어울리는 잔이어야 했다. 그래서 고른 잔이 이 잔이다. 이 잔에 커피를 마시면 맛도 더 짙거니와 향도 더 잘 맡을 수 있다. 이 모든 건 책방지기 부부의 세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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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에서 나오는 길, 갈매기가 날고 있다. 흐린 하늘에 빈혈을 앓는 듯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세계에 뜬 또 하나의 달일 것만 같은 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밤수지맨드라미는”
피곤한 날들의 연속, 쉬어도 쉬어도 더 피곤할 때 없으신가요? 어디론가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으신가요? 그럴 때 훌쩍 나서 보세요. 오가는 동안 내 몸에 쌓인 스트레스도 피곤도 모두 떨쳐낼 수 있을 겁니다. 거리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책방일 수 있지만, 다녀오고 난 뒤 알 수 있을 겁니다. 심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책방이라는 사실을요. 섬 속의 섬에 있는 밤수지맨드라미에서 가장 우도다운 따뜻함을 느껴 보세요.

찾아가는 길: 우도해안길 530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인스타: www.instagram.com/bamsuzymandramy.bookstore
블로그: blog.naver.com/bamsuzymandramy

* 이번 40회를 끝으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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