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 개교 70주년]① 한국전쟁과 4.3 광풍 이겨내 일군 ‘제주 최초 도립대학’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과 6.25 한국전쟁의 참혹한 환경에서도 인재양성에 진심을 다한 도민 열망으로 탄생한 국립제주대학교가 2022년 개교 70주년을 맞았다. 고희(古稀)의 나이를 맞은 제주대의 역사는 교육사이든 지역사이든 사회적으로 조명하고 평가해야 할 유의미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제주의소리]는 진리와 정의, 창조라는 창학이념 아래 숱한 지식인과 인재들을 배출하며 제주 현대사의 한 축을 맡아 지역과 호흡해온 국립 제주대학교 70년 영욕의 역사를 집중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은 국립 제주대학교의 첫 출범은 한국전쟁과 4.3의 포화 속에 제주도민의 뜨거운 교육열로 이뤄졌다. 1952년 도민 열망으로 탄생한 제주초급대학 개교 기념식.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뼈아픈 이데올로기의 대립 아래 빚어진 극한의 공포와 시련 속에서도 제주도민들은 자녀교육에 대한 열성으로 초중등학교를 설립하고 졸업생들을 배출해냈다. 

일제로부터의 광복 이후 도내 10개의 중등학교가 생길 만큼 교육에 대한 도민들의 열정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중등교육을 마친 도내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길은 타시도 유학밖에 없었기에 전쟁의 혼란과 경제적 부담 속에서 부모와 학생들은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제주 출신 학생들이 입학할 수 없었던 한국대학 피난분교 설립과 초급대학 제도 신설을 골자로 하는 교육법이 만들어지면서 제주에서는 대학 설립 열망이 피어났고, 도민들은 지방 유지를 중심으로 뜻을 모아 1951년 11월 5일 제주대학원을 설립했다. 

제주대학원에는 전쟁 중 혼란에다 육지부로 진출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도민들의 대학 설립 염원이 담겼다.

제주도의 인가를 받아 당시 제주읍 용담리 제주향교 명륜당을 빌어 야간제로 개설된 제주대학원은 2년 과정으로 문과 35명, 법과 50명 등 85명의 학생을 받아 문을 열었다.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1954년 제주초급대학 전경.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1954년 제주초급대학 동관. 제주 현무암을 단정하게 깎아 쌓은 건물 외벽이 단출하면서도 정겨운 모습이다.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이처럼 대학 교육의 열망을 보인 도민들은 1952년 제주향교재단과 삼성재단의 출연을 통해 기본자산을 확보하고 3월 15일 도립 제주초급대학 설립 인가신청서를 문교부에 제출, 그해 5월 축산과, 법과, 국문과, 영문과 등 4개 학교의 제주초급대학 설립 인가를 받아냈다.

당시 설립 인가신청서를 들여다보면 일제강점기부터 교육열이 높았던 상황을 언급한 뒤 육지부에 비해 높은 비율로 중등학교가 설립됐으나 고등교육 기회가 없다고 호소한다. 교육의 기회균등이라는 민주원칙에 입각, 기회를 줘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제주초급대학 설립 취지서
본도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절해고도로서 (중략) 금번 교육법 일부 개정에 따라 중학교가 16개교, 고등학교가 5개교로써 타도에 비할 수 없는 최고율의 중등 및 고등학교가 당국의 영단적 조치로써 설립 개편되어 과거에 정상적 교육을 받지 못하였던 도민에게 고등교육의 문호를 개방하였음은 도민으로서 경하하여 마지않은 바이나 (중략) 본도의 특유한 천연자원의 개발과 문화향상에 관한 종합대학을 설치하기 위하여 본도 삼성시조제사재단과 향교재단을 통합하여 국립 제주대학을 설립코자 하는 바임.

취지서에 나타난 것처럼 제주초급대학은 도민들의 교육입도 실현에 대한 비장한 결의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한국전쟁과 4.3의 혼란 속에서 제주초급대학은 아무런 시설도 확보하지 못한 채 제주향교 건물 일부를 임대해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제주초급대학 학장사무취급을 맡았던 최승만 제주도지사는 개교식에서 “제주에도 대학이 있어야 한다는 도민들의 정성과 노력이 결집으로 실현됐다”며 “비록 남의 건물을 빌려 출발하지만 머지않아 교사를 마련, 4년제 대학으로 승격하는 기초를 다져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교부 역시 설립인가서에 단서를 달고 “현재 교지 교사는 적당치 못하므로 조속히 새로운 위치를 선정해 교사와 부속건물 등의 신축과 부속 농장계획을 확립하고 위치변경인가 절차를 완료하도록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1954년 제주초급대학 강당.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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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제주초급대학 교사(校舍) 전경.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이처럼 정상적인 교육시설 확보가 당면과제였던 제주초급대학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국적 피해와 더불어 제주4.3으로 지역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당연히 거액을 투입할 여건이 안 됐다. 

이에 제주도의회는 도민 기부를 추진했고 도민 성원에 힘입어 대학은 향교 생활을 청산, 1953년 9월 옛 제주농고 운동장 한편에 교실과 사무실을 지어 이사한 뒤 곧이어 용담동에 캠퍼스를 마련해 이른바 ‘용담캠퍼스’ 시대를 열었다. 

제주농고 임시 캠퍼스 당시 제주지역 유지들은 대학의 정상적 발전을 위해서는 국립 이관이 해결책이라고 판단, 꾸준히 국립대학 승격을 추진했고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1955년 4월 6일 4년제 도립 제주대학으로 승격 인가됐다. 

승격을 원하는 도민들의 열의는 정상적인 대학의 운영이라는 목적에 맞닿아 있었다. 학교는 설립됐지만 필요한 시설의 확보가 힘들었기에 어느 때보다 국가 재정을 받아야만 했다. 

제주대학후원회가 설립되고 도민 기부가 이어졌지만, 전쟁의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도민 경제가 발전하지 못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해 운영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승격된 도립 제주대학은 6개 학과 1040명 정원으로 구성, 학과별로 법학과, 국문학과, 영문학과, 상학과, 수의학과, 농학과 등이 마련됐다. 더불어 정상적인 교육 운영을 위한 캠퍼스 확보 노력도 계속됐다.

한국전쟁 여파로 제주에 이주해 온 한국피혁주식회사는 전력과 원료 공급이 여의치 않아 휴전 이후 육지로 철수했고 그때 남긴 공장 건물과 부지를 대학이 1954년 매수하면서 자체 캠퍼스 확보를 위한 길이 열렸다.

인근 토지 2887평을 합쳐 총 4251평의 부지를 확보하게 된 도립 제주대학은 공장 건물 구조를 바꿔 강의실 13개와 교수대기실, 강당, 학장실, 사무실 등을 마련했다. 당시 건물은 제주석을 쌓아 벽체를 구성하고 목조지붕을 쌓는 등 창고 형식으로 세워졌다.

같은 해 8월에는 실습장 용지로 제주읍 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 동쪽 공군 군용지 5만 6000평에 대한 사용허가를 국방부장관에게 요청, 사용승인을 얻어내면서 완전한 용담캠퍼스(현 제주사대부고) 시대가 열렸다.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1954년 제주초급대학 첫 졸업식.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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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도립 제주대학 신입생 환영회. 사진=제주대학교. ⓒ제주의소리

#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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