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의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23) 가슴 먹먹하게 아름답고도 시린 풍경, 강원 정선의 운탄고도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를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 편집자

이 겨울 한 번쯤은 아름답고 따뜻한 내 고향 서귀포를 떠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도 매일 지내다 보면 감흥이 덜해지는 법이고, 떠나봐야 정주하는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새로워지는 법이다. 숨죽여 엎드려 있던 여행 본능도 긴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걸까. 이곳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고픈 마음이 갈수록 간절해졌다. 그럴 즈음, 강원도의 한 공기업이 올레길 성공 사례에 대한 특강을 요청해 왔다. 평소 같으면 1박 2일 일정으로 충분히 끝낼 만한 일정이었다. 허나 여행이 고팠던 나는 특강과 여행을 겸하기로 마음 먹고 강원도 정선 지역에 사흘 간 머무르기로 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에서 가장 추운 지역으로 떠나는 만큼 만만의 채비를 했다. 국토 최남단 도시 서귀포에서는 입을 일이 거의 없는 두툼한 롱 패딩과 한라산 오를 때나 아니면 꺼낼 일 없는 스패츠와 아이젠, 귀마개 따위를 꼼꼼히 챙겼다. 모처럼 정선 땅에 가는 만큼, 말로만 듣던 그 곳 하늘길도 걸어보고 몇 년 전 가봤던 정선 5일장도 들러볼 생각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계획을 세울 때부터이고, 여행의 설렘은 떠나기 전에 가장 크다는 걸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고도 ‘1340’에서 만나는 그 길, 하늘길

하이원 하늘길은 백운산 자락을 잇는 길로, 둘레길, 고원숲길, 운탄고도, 무릉도원길을 칭한다. 시작점은 마운틴 콘도에서 출발하는 둘레길 1코스, 밸리콘도에서 출발하는 무릉 도원길 1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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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올레길 조성 과정과 더불어 정선 지역길 활성화 방안에 대해 조언도 해달라는 게 초청 측의 부탁이었기에, 특강에 앞서 이곳의 하늘길부터 걷기로 했다. 이름하여 ‘하늘길’과 그 중에서도 ‘운탄고도’(運炭高道).

고도(高道)인 하늘길을 쉽게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놀랍게도 버스도, 자동차도, 그 무엇도 아닌 곤돌라였다. 1,340m에 위치한 하이원 스키장 정상에서도 트레킹이 가능한 길이 바로 ‘하늘길’이란다. 곤돌라 탑승 시간은 20여 분 정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기에 올라가는 내내 강원도의 설경을 원없이 눈으로 즐감했고, 강원도가 얼마나 산악 지형인가를 실감했다. 제주는 한라산 외로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오름 능선이 이어질 뿐인데, 이곳은 말 그대로 첩, 첩, 산중이었다! 

제주도와 강원도가 조선왕조 시절 대표적인 귀양지였던 데에는 다 그럴 만한 배경이 있었던 게다. 유배객들은 제주에서는 사면을 에두른 바다, 강원도에서는 사방을 둘러싼 산을 바라보면서 중앙과 단절된 신세임을 통절히 절감했으리라. 허나,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그 산과 바다를 즐기기 위해, 그리고 그 단절감을 맛보고 그 한적함 속에서 멍 때리기 위해 제주와 강원을 찾고 있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인간사이고 문명의 변천이다. 

곤돌라를 타고 보니 또 다른 기억도 불현듯 소환되었다. 제주올레 길과 ‘우정의 길’ 협약을 맺은 스위스 체르마트 ‘5개의 호수 길’이 떠오른 것이다. 스키마을로 유명한 알프스 산맥 산중마을 체르마트에서 그 매혹적인 정상부 모습으로 널리 알려진 마테호른 산 중턱으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서 5개 호수를 둘러보며 걷는 산중 둘레길이 ‘5개의 호수길’이다. 두 번이나 그곳을 방문해서 곤돌라가 멈추고 걷는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제주올레 길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우기도 했었는데 과연 언제나 그곳을 다시 방문할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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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하늘길은 스위스 5개의 호수길처럼 곤돌라가 멈추는 지점부인 해발 1,340m에도 연결되었다. 고도가 고도인지라 발목까지 푹푹 빠질 만큼 눈이 많이 쌓였다. 아니, 이게 등산로지, 무슨 걷는 길이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참았다. 허나, 입구를 벗어나자마자 다정하고 평화로운 숲길이, 그것도 완만한 내리막길이 나타나서 그 말을 참기를 잘했다 싶었다. 제주처럼 수종이 상록 활엽수가 아닌 낙엽송이거나 낙엽 침엽수인 일본잎갈나무라 푸르른 초록은 보기 힘들었지만, 대신 제주에선 보기 힘든 이국적인 느낌의 자작나무과인 사스레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겨울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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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동행한 하이원의 베테랑 숲길 가이드 유명선 차장이 이 단단한 물푸레 나뭇가지로 강원도 사람들은 눈길에도 걸을 수 있는 ‘설피’를 만들었다고 열심히 설명한다. 그곳 자연의 특수성이 저마다 다른 생활 문화와 생활용품들을 탄생시켰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제주 해안가에선 눈길 걷는 신발은 상상도 못하고, 필요치도 않은 물건이므로. 그렇다! 사람마다 개성이 달라서 사회와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듯이, 자연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니 여행의 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다른 아름다움을 맛보고 다름을 즐기는 것! 그것이 여행자가 갖춰야 할 덕목 아닐까.

도롱이 연못과 운탄고도, 그 슬프고도 장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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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하이원 탑에서 한 시간 여 걸어내려가자 유 차장이 하늘길 명소인 ‘도롱이 연못’에 가기 전에 꼭 들러볼 곳이 있다면서 그곳으로 안내했다. 가보니 텅 빈 눈 덮인 대지에 달랑 이 빠진 콘크리트 대문 둘. 아! 폐교된 탄광촌 초등학교의 교문이란다. 분교였다가 어엿한 본교로 승격했다가 탄광촌 폐광 바람이 불면서 학생수가 줄어들어 다른 지역 학교와 통폐합되어 옮겨 갔단다. 훗날 이를 안타까워한 졸업생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서 세운 기념탑이 교문 뒤편에 세워져 있길래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봤다. 아, 기념탑 옆면에는 양쪽으로 이곳 분교, 초등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이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이곳을 어찌 추억하고 있을까.

학교 근처의 ‘도롱이 연못’은 더 절절한 사연을 간직한 곳이었다. 평소엔 도롱이가 서식하는 산중 연못이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이 연못은 한때 광부 아내들의 성소, 기도처였단다. 막장에서 더러더러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던지라, 남편이 일을 나갔다가 돌아올 무렵이면 이곳을 서성이면서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더란다. 도롱이가 무사히 살아 있으면 남편 또한 무사한 것으로 여겼단다. 숲길 가이드 유 차장의 설명을 듣노라니, 중고교 시절 신문 방송 뉴스에서 강원도 탄광사고로 광부들이 집단으로 매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탄광 없는 제주라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던 이기적인 기억까지도.

올레길은 해녀의 길, 운탄고도는 광부의 길

‘도롱이 연못’ 근처에서 인고원숲길은 ‘운탄고도’와 또 이어졌다. 운탄고도는 본디 강원도내 곳곳의 탄광에서 광부들이 고된 막장 작업 끝에 채굴한 석탄을 운반하는 운송도로였단다. 헌데 수급 정책 개편에 따라 광업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서너 곳 탄광만이 최소한 석탄 수요만 조달하는 쪽으로 명맥만 유지하면서 이 길도 저절로 그 효용가치가 없어져버렸단다. 그러다가 십여 년 전부터 전국에 ‘걷는 길’ 조성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강원도내 지자체들이 사람이 걷는 길로 새롭게 관광자원화를 시도하고 있단다. 

2007년에 삼십 여 년 만에 고향 제주로 내려와서 ‘걸어서 제주 한 바퀴’를 도는 올레길을 내면서 가장 많이 만난 직업군은 제주 해녀 삼촌들이었다. 해발 0(제로)인 바다를 기본 축으로 마을, 오름, 곶자왈, 목장 등을 연결한 길이었기에 따지고 보면 제주올레 길은 해녀 삼촌들이 바당으로 일을 하러 가던 ‘해녀의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데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해발 1천이 넘는 운탄고도는 광부들이 아내의 기도를 뒤로 하고 일을 하러 오갔던 ‘광부의 길’이다. 한 시대의 절절하고 처절한 삶을 간직한 길을 걷는다는 건 단순히 길을 걷는 것만이 아니라, 한 시대의 역사를 몸에 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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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탄고도는 본디 강원도내 곳곳의 탄광에서 광부들이 고된 막장 작업 끝에 채굴한 석탄을 운반하는 운송도로였다. / 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나는 ‘1177 갱도’ 표지판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탄광 광부의 당시 작업 광경이 마치 박제된 것처럼 고스란히 재연되어 있었다. 입구에 서서 맞은편을 바라보니 발아래 구름이 흘러가고, 벌거벗은 나무들 군락이 도열한 채, 첩첩산중이 펼쳐졌다. 운, 탄, 고, 도. 석탄을 운반했던 그 길. 지금은 흘러가는 구름과 아름다운 산중 풍광으로 탄성이 절로 흘러나오는 걷는 길이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유 차장에게 하고 있었다. “대도시 수도권에 넘쳐나는 건 이곳에 다 없는데, 그곳에 없는 건 이곳에 다 있네요!” 그가 놀란 표정으로 그게 뭔데요, 되물었다. “너무 많은 사람, 대기오염, 미세먼지, 이런저런 소음, 높은 빌딩과 아파트와 상가들! 다 없잖아요.” “헌데 드넓은 하늘, 흘러가는 구름, 저 많은 자작나무 숲, 첩첩산과 새소리조차 안 들리는 적막! 대도시엔 없는 건 다 있잖아요!”

사흘 간 그곳 강원도에서 ‘첩첩산중과 자작나무 숲’을 원없이 보고 즐기다가 서귀포로 돌아왔다. 아, 리무진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차창 밖 바다를 보는 순간 ‘아, 난 서귀포가, 이 바다가 너무나 좋아!’라고 변덕을 부리긴 했지만... 참으로 기억에 남는 강원도의 길, 강원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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