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롱뇽 관찰일기] (5) 2월12일~2월19일

‘제주도롱뇽 관찰일기’는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이자 ‘고봉선의 마을책방을 찾아書’ 필자로 독자들과 익숙한 고봉선 작가가 쓰는 생명 이야기입니다. 필자가 10여 년전 제주 항파두성의 장수물에서 우연히 마주친 도롱뇽 알이 매번 훼손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매년 꾸준히 이들을 관찰해왔습니다. 제주도롱뇽은 몇 안 되는 한국고유종으로, 도롱뇽이 살고 있다는 건 청정지역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이 멸종된다는 것은 질병 확산과 지구 기후위기를 알려주는 경고등인 셈입니다. 제주도롱뇽이 이곳에서 맘 놓고 살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는 필자의 호소는 결국 나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자는 우리 모두의 호소이기도 합니다. 도롱뇽 알의 첫 산란에서 마지막 산란까지 관찰일기 연재가 이어집니다. / 편집자 글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2일 토요일 밤 10시 10분

하늘 전체가 회색빛이지만 온몸에 와 닿는 바람엔 봄의 기운이 들어 있다. 잠시 장수물에 들렀다. 죽은 알과 살아 있는 알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지난 1월 27일 이후 아직은 더 낳은 알이 없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낮 12시 23분 남실, 엊그제 비가 내렸지만 벌써 돌의 머리 부분이 드러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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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실 12시 25분, 암컷 도롱뇽 한 마리가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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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 28분, 아빠와 딸이 장수발자국을 보러 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아직 장수발자국엔 산란 전이다.  아빠와 딸이 산란을 관찰하고 있는 장수발자국 위로 최근 세워진 '제주도롱뇽 보호 안내판'이 보인다. 제주도롱뇽은 한국 고유종으로 청정지역에만 서식해 기후위기나 환경오염의 경고등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3일 일요일 밤 10시 50분

입춘을 넘겼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날이다. 포근함,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활짝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전혀 춥지 않다. 오히려 상쾌하다. 아마 봄기운이 들어 있어서 그럴 것이다. 는개 비가 내린다. 도롱뇽이 움직이기에 딱 좋은 날씨다.

강서랑 지후와 함께 장수물로 갔다. 아, 얼마만인가? 남실에 변화가 생겼다. 돌담 밑에 수컷 도롱뇽 한 마리가 보이고, 알집 두 개가 붙어 있다. 도롱뇽 한 마리가 알을 낳았다는 뜻이다. 지난 27일 산란 이후 처음 낳은 알이다. 그런데 돌의 위치가 이상하다. 누군가 도롱뇽을 보기 위해 돌을 건드린 것 같다. 붙어 있던 알들도 없다. 서실엔 더 많은 도롱뇽이 보이지만 새로운 알은 없다. 돌을 원 위치로 돌려 놓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남실 오후 2시 14분, 돌 뒤로 새로 낳은 알집 두 개가 있고 수컷 도롱뇽이 한 마리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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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22분, 장수물 입구에서 물을 먹은 바늘솔이끼가 꽃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4일 월요일 밤 11시 00분

촉촉하니 습기를 머금은 봄기운이 피부에 와 닿는다. 나는 주말을 꼬박 일하고 월요일이 휴일이다. 어제 일을 마친 후 마을 책방 마지막 글을 정리하다 보니 아침이 되었다. 3시간쯤 잤을까, 지부장님께서 집 앞이라며 전화를 주셨다. 호박과 무를 갖고 왔다는 것이다.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리고 같이 장수물로 갔다. 

장수물 입구에 승용차 한 대가 있었다. 누군가 와 있다는 뜻이다. 내려가면서 보니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김병수 박사였다. 

남실에는 득실득실 도롱뇽들이 몰려들어 한창 산란 중이었다. 그러나 중실에선 새로 낳은 알은 있어도 성체 도롱뇽은 좀처럼 볼 수 없다. 서실에도 몇 마리가 산란 중이었다. 돌아오는데 차 한 대가 와 멈췄다. 남자 어른 두 분이 내리더니 삼각대를 챙기고 장수물로 내려갔다. 아마도 도롱뇽을 살피러 가는 것이겠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전 11시 09분, 김병수 박사가 도롱뇽 산란현장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 위편에 '우리 함께 살아요'라는 제목의 제주도롱뇽 보호 안내판이 최근 세워졌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도롱뇽이 산란하기 딱 좋은 밤이다. 남편과 함께 걸어가다가 간만에 구시물에 들렀다. 구시물에도 종종 제주도롱뇽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산란이 이뤄지는 곳은 아니다. 다른 해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올핸 장수물보다 하루 더 빨리 산란했다. 두 마리가 알을 낳은 듯 네 개의 알집이 있었다. 그런데 체외수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뜯긴 솜뭉치에 먼지가 앉은 것처럼 너덜더덜하더니 얼마 후엔 아예 없어졌다. 누군가 청소를 한 것도 아니다. 알집엔 특히 옆새우가 많이 붙어 있었는데 그들이 다 뜯어먹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뿐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전 11시 10분 서실, 먼저 낳은 알은 연한 갈색으로 변했고, 그 위에 새로 낳은 알이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1월 25일 오후 2시 19분, 구시물에는 25일 아침 산란해 있었다. 처음 볼 때부터 불안한 알이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다. 우물 깊이가 있으므로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옆새우나 수생 동물들이 야금야금 갉아 먹듯 먹어치우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혹시라도 그 후 낳은 알이 있을까 해서 들른 거였다. 그런데 의외의 것을 보게 되었다. 민물 참게 수컷이었다. 그러나 난 민물 게라는 사실만 알았을 뿐 정확한 이름은 모르고 있었다. 김병수 박사에게 톡을 보냈더니 자기도 민물 게라는 사실 밖에 모르겠다고 했다.

해남에서 교사생활을 하시면서 문학회 밴드에서 같이 활동하는 김성률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고향도 제주이거니와 시골 생활을 하시는 분이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뜸 민물 참게임을 알아보셨다. 좀 전에 우물에서 만났다고 했더니 요즘 보기 힘든 놈이 되어버렸다며 놀라셨다. 보호해야 할 거 같아서 잡지 못했다고 했더니 아름다운 마음이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니라 쫄아서라고 했더니 대답이 또 걸작이시다. 자연을 대하며 쫄 줄 아는 게 진정 아름다운 것이 아니냐고 하신다.

이 녀석 민물 참게를 보면 떠오르는 시절이 있다. 어릴 땐 날마다 김을 매고 보리며 유채, 참깨, 콩, 조 등을 벤다고 노는 날이 없었다. 특히 한여름엔 밭을 매기 싫어서 죽을 지경이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노라면 어머니께선 주전자를 쥐여 주시면서 냇가에 가서 물을 떠 오라던가 멱을 감고 오라고 했다. 때로는 아버지께서 멱을 감으시다가 우연히 게를 발견하는 날엔 잡아다가 구워 주시기도 했다. 그 게를 종종 잡았던 곳이 구릉이 내창이다. 

구릉이도 알구릉와 웃구릉이가 있는데, 알구릉이는 전체적으로 바위뿐이라서 게가 살만한 곳은 없다. 웃구릉이는 바위보다는 흙이 파여 고인 물이 많았다. 바로 그런 곳 바위 밑에 녀석이 종종 있었다. 

성인이 된 후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환경 동화를 쓰려니 이 민물 게의 이름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미지로는 어렴풋이 그리는데 실체가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인터넷에서 민물 게의 종류를 검색하며 죄다 뒤졌다. 그래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녀석이 떡하니 내 눈앞에 나타났다. 반가워서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이렇게 실체가 있으니 묻기도 쉬웠도 답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녀석을 만났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녀석은 어떻게 여기까지 기어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긴, 연어도 알 낳을 때가 되면 그 먼 곳을 거슬러 오르는데 녀석이라고 못 갈 데는 없을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9시 10분, 구시물에 민물 참게 수컷 한 마리가 와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니나 다를까, 남실에서는 한창 산란 중이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여기저기 발 디딜 곳을 찾다가 엎어지고 말았다. 무릎이 돌멩이에 찍히는 것 같다니 찌르릉 울림이 길었다.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눈물이 절로 흘렀다. 절뚝이며 집에 와서 보니 무릎 경골 부분이 까져 있었다. 아, 병원에 가야 하나. 짜증 난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카메라에서 접사를 통해 산란현장을 살펴 보았다. 둔하디둔할 것 같은 이들도 물속에선 미꾸라지 못지않게 날렵했다. 때로는 물을 차고 위로 올라오기도 했다. 아, 괴롭다. 마치 내가 아기를 낳는 것 같다. 아니다, 차라리 내가 아기를 낳는 게 낫겠다. 이들이 알을 낳는 건 너무도 버거워 보였다.

산통이 오는지 암컷 한 마리가 배를 위로 보이며 물속에서 몸을 뒤집었다. 뒷다리와 꼬리 사이에서 투명한 알집이 빼꼼히 머리를 내밀었다. 손을 뻗어 확 잡아당겨 주고 싶었다. 알 낳는 것도 버거울 텐데 수컷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는 껴안듯이 한 덩어리가 된다. 난 이미 암컷 도롱뇽이 되어 마음속으로 소리 지르고 있었다. 제발 저리 가라고! 

한데 엉긴 덩어리를 들어올려 탈탈탈 털어버리고 싶었다. 이토록 힘들게 알을 낳는데…….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난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도롱뇽들이 알을 낳으며 지르는 비명소릴 듣고 있었다.

그러나 알집을 어떻게 바위에 붙여 놓는지는 살피지 못했다. 암컷 한 마리에 하도 여러 마리가 엉긴 채 물속에서 움직이는 바람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한 놈을 겨냥하여 살피다 보면 사라졌다. 지금까진 알을 낳는 순간 알집 머리를 바위에 붙이며 낳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알 낳은 도롱뇽은 몸이 날렵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아, 저들도 하늘을 날고 싶을 거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5일 화요일 오후 3시 50분

다행히 하룻밤 자고 났더니 무릎은 어딘가에 닿지 않는 한 괜찮았다. 서귀포에 다녀오다가 바로 장수물로 향했다. 장수물로 가기 전에 구시물에 들렀다. 어젯밤에 보았던 구시물 민물 참게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로 간 걸까? 녀석이 없다. 누가 잡아간 걸까, 아니면 다른 데로 간 것일까? 제발 다른 데로 간 것이기…….

비라고 해도 마른 땅은 목을 축이기도 힘든 양이다. 게다가 건천인지라 수위는 금세 내려간다. 그래도 어디서 물이 내려오는지 조금이라도 항상 고여 있어서 다행이다. 도대체 어디서 물이 내려오는 것일까? 가까이인 것 같은데 물머리는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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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17분 남실, 이미 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돌 머리 부분이 드러났다. 새로 낳은 알과 이미 낳은 알이 뒤죽박죽이다. 먼저 낳은 알은 대부분 죽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6일 수요일 밤 8시 25분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4시 32분, 장수물과 극락사 사이에서 바라본 동쪽 하늘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지운이와 함께 갔다. 도롱뇽은 다시 알 낳는 걸 멈춘 모양이다. 보이지 않는다. 하늘엔 뒤에서도 앞에서도 불이라도 난 것처럼 검은 구름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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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실 오후 3시 51분, 알집 속에 두 개의 알이 유난히 희고 크다. 정상이 아닌 것같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7일 목요일 오후 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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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56분, 장수물 입구에서 바라본 동북쪽 하늘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쌀쌀하다 못해 얼얼하다. 입춘이 지났다지만 아직은 봄이라고 할 수 없다. 꽃샘추위는 아닐 거란 뜻이다. 장수물에 들어서는데 수면에서 반들반들 빛이 난다. 덜컥했다. 오염물질이 흘러내려 뜬 기름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살얼음이다. 살얼음은 이미 도롱뇽 알집까지 포위했다. 과연 저 알은 무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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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51분 중실, 살얼음이 가득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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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52분 남실, 동쪽으로는 멀쩡한데 서쪽으로 살얼음이 끼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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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53분 서실, 전체적으로 살얼음이 끼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9일 토요일 오후 4시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낮 12시 41분, 입구에서 장수물 방향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짬을 내어 잠시 들렀다. 피부에 와 닿는 기운엔 쌀쌀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봄기운이다. 분명히 도롱뇽들이 산란하고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웬걸, 서실에 연가시 몇 마리만 보일 뿐이다. 내가 느끼는 날씨는 포근한 것 같은데, 이들은 또 아닌가 보다. 성체 도롱뇽조차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 고봉선 작가는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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