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50~30년 전 던진 화두 여전히 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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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개발에 맞서 제주를 지키려했던 양용찬 열사와 불평등·불공정에 맞서 '만인의 생존권'을 부르짖었던 노동열사 전태일은 시기는 달라도 닮은 구석이 많다. 제주대학교 캠퍼스에 세워진 양 열사 기림비(왼쪽)와 전태일 열사 동상. <그래픽=한형진 기자> ⓒ제주의소리

‘국립’ 제주대학교에 양용찬 열사(1966~1991) 기림비가 세워지는 걸 보고 두가지 느낌이 들었다. 하나는 격세지감, 다른 하나는 제주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1991년 11월7일 분신으로 생을 마감한 뒤 명예졸업장을 받기(2021년 12월28일)까지 걸린 시간 30년은 그 자체가 격세(隔世), 긴 세월이다. 

“양 열사는 역사에 기록될만한 선지자적인 훌륭한 일을 하셨다”
“우리는 그 분의 선지적인 희생으로 편히 발 뻗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잘못된 것에 대해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긴 용기있는 대단한 분이다.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한다”

명예졸업장 수여식에서 열사의 유족에게 건넨 송석언 총장의 위로는 한마디로 짠했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기로서니 국립대 총장이 이런 메시지를 내기는 쉽지 않을 터. 명예졸업장 수여, 추모 조형물 설치 제안을 수락한 것은 아무리 봐도 잘한 일이다. 양 열사에겐 어떤 예우도 아깝지 않다. 

송 총장은 이렇게도 말했다. 

“30년 전 그가 외친 문제들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다 이제야 인식하는 것 같다”

31년만에 부활한 지방선거가 치러진 바로 그해, 열사는 무엇을 외치며 산화했는가? 

“나는 우리의 삶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써, 생활의 보금자리로써의 제주도를 원하기에 특별법 저지, 2차종합개발계획 폐기를 외치며 또한 이를 추진하는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이 길을 간다”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 열사의 유서는 곧 불어닥칠 개발 광풍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장밋빛 청사진에 맞서 제주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특별법 제정을 주도했던 민자당이 전국적인 압승을 거뒀으나, 제주에서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들끓었던 특별법 반대 여론을 보여준다. 토지수용권으로 대표되는 독소조항이 담긴 특별법은 양 열사의 분신에도 그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불행히도 열사의 예상은 적중하고 말았다. 제주는 그 뒤로 국내외 개발 자본의 각축장으로 변모해갔다. 그리고 오늘 제주의 모습은 모두가 보는 바와 같다. 

많이 늦었지만, 양 열사의 명예졸업과 기림비 설치는 제주사회가 30년 전 열사의 외침이 옳았다는 점, 적어도 문제제기 만큼은 타당했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당시 문제의식이 30년 후 보편적인 인식, 상식이 되었다는 점에서 열사는 시대를 앞서간 선지자임에 틀림없다. 

양 열사가 요즘 표현으로 난개발에 저항했다면, 노동 열사 전태일은 일찍이 불평등과 불공정에 항거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평화시장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군사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1970년대 노동·인권을 향한 자각을 움트게 했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른 것도 그렇거니와 두 열사는 닮은 구석이 많다. 

현재의 시선으로 반추해보면 전태일이 부르짖은 건 ‘만인의 생존권’이었지만, 당시엔 그 정도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분신 이튿날인 1970년 11월14일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혹사 등 항의…분신’이었다. 

전태일 열사가 50주기를 하루 앞둔 2020년 11월12일, ‘비로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받은 것도 양용찬 열사와 닮은 꼴이다.

“전태일 열사는 ‘아직 멀었다’고 하시겠지요” 훈장 추서식 직후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반성과 성찰의 뉘앙스가 읽혀졌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한 전태일이 지금 뭐라고 얘기할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열사가 꿈꿨던 노동존중 사회가 여전히 이상에 머물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노동존중 사회? 하나만 보자.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가히 역대급이다. 

마찬가지로 양용찬 열사가 꿈꿨던 ‘제주다움’, 제주 가치는 잘 지켜지고 있는가. 오히려 양상은 그 반대로 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열사가 목숨을 바쳐가며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30년, 50년이 지나도 요원해 보인다. 너무 비관적인가? 

다시 송 총장의 얘기다. 

“아직도 제주엔 환경 등 문제가 끝나지 않았고, 양 열사와 같이 행동으로 실천하는 분들이 많이 필요한 세상이다”

잘 짚었다. 지금 제주는 환경총량을 위협하는 난개발과 탐욕이 빚은 각종 폐해로 신음하고 있다. 주야장천 국제자유도시를 주창했건만 도민들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는게 중론이다. ‘특별한 자치’를 한다고 했지만 도지사의 권능만 강화되고 풀뿌리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이제야말로 30년 전 양용찬 열사의 문제제기에 제대로 답할 차례가 되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은 지금 어떠한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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