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일흔 한 번째

제주4.3 피눈물의 정방(正房)폭포, ‘正房’이 아니라 ‘正方’이다

제주 서귀포시 정방동 해안가에 위치한 정방폭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 서귀포시 정방동 해안가에 위치한 정방폭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정방폭포는 동홍천 상류 ‘정방연(正方淵이 수원지, 이형상 목사(1653-1733)가 ‘바다를 향해 똑바로 물이 떨어진다’며 정방(正方)으로 탐라순력도 1702년에 표기돼 있다. 물론 1653년 탐라지, 1694년 이익태목사의 지영록, 1709년의 탐라지도병서, 1764년의 탐라록과 1919년 일제강점기 1/25,000 지도에도 정방(正方), 그 후 웬 일인지 1899년 제주군읍지에 정방(正房, 집채방)으로 변했다. 일제강점기 산물로 봐진다.

정방(正房)은 제주의 한라산, 그 주인이 한라산으로부터 바다로 내려온다는 말, 4.3사건 때 안덕면동광, 상창 주민 등 248명이 이 폭포위에서 학살 당해 바다로 떨어졌다. 正房 이름처럼 된 것이 우연인가? 원래의 정방(正方) 폭포 이름으로 바꿀 것을 제주의소리 2021년 4월 1일에 제안했다. 2년이 넘어도 요지부동한 행정당국이다.

1970년 12월14일 서귀-부산 여객선 남영호의 침몰로 326명이 사망했다. 4.3이 참사가 ‘산에서 바다로’ 라면, 남영호는 ‘바다에서 바다로’의 참사다. 작년 12월 14일 마라도 지진을 보면, 서귀 정방폭포 앞바다가 위험하다. 제주도내 지진 강도 3.0이상이 8곳(고산5 ,서귀2, 마라도1)인데, 마라도에서 발생한 지진파는 고산 해수면 평균 깊이 21km의 다섯 곳을 3.0, 3.1, 3.2, 3.4, 3.9 강도로 내리쳐, 수월봉 화산 쇄설층 24톤 암벽을 순간에 갈라놓았다.

제주도에서 가장 낮은 지대인 서귀포 서홍리근해 해상 57Km와 78Km 해상을 각각 강도 3.1로 때렸다.제주는 성산포가높고 모슬포와 서귀포가 낮은 지형지세인 동고서저(東高西低).이 때문에 제주의  고산 한경 지하수 수위는 10cm, 해면이 낮은 서홍리는 90cm 상승, 지진이 위력을 실감케 했다. 제주판 ‘불의 고리가  마라-고산-정방 앞 바다’로 차후에도 지진이 예측되는 곳이다.

정방과 비슷한 경우가 충남 대전(大田)이다. 대전은 태전(太田)이 원어. 왜 그리 변했을까? 충청권의 핵심요지인 태전이 앞으로 새로운 수도가 된다는 예언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신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으로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지금은 100만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살며 정부 제 3청사가 들어와 있다. 시내 중심을 흐르는  천(川) 주위로 콩을 많이 경작하여 콩밭 혹은 ‘한밭’으로 불리던 곳. 1901년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고 이곳에 역(驛)이 생기면서부터였고 대전역 국수가 일품이다. 

태(太)에는 콩 태, 클 태, 태전(太田).또  '한밭'은 '한'은 크다, 밝다, 동쪽, 하나, 처음 등의 많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太田'의 '太'는 이러한 '한'의 의미와 '콩'의 의미다. 경술국치 되기 한 해 전인 1909년 1월, 당시 순종황제를 호종(護從)하여 이곳을 지나던  이등박문(伊藤博文)이  태전역에 휴식을 취하다가 태전의 지세(地勢)와 이름을 보고는  "태전(太田)이라는 지명을 바꾸어 대전(大田)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고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이름을 고쳐 부르게 한 것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금수강산 곳곳의 혈 자리에다 쇠말뚝을 박거나  경복궁 앞에 '일(日)'자  모양의 조선 총독부 건물을 지은 것과 동일한 맥락, 그러나.태전(太田)과 대전(大田)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대전(大田)이란 단순히 작은 밭이라는 말의 반대 개념인 '큰 밭'이라는 의미뿐이지만, 태전(太田)은 실로 무궁한 뜻, <설문해자(說文解字)>에  大자는 사람이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형상. 그런데 太자는 大자에다 점을 찍은 글자이다. 이 太자의 점,그것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창조의 기능을 담당하는 생식기를 상징한다. 따라서 처음, 시작, 비롯한다는 여러 의미가 있다. 이러한 太자의 의미로 인해 새로운 왕조를 시작한 첫 임금을 태조(太祖, 시간이 시작된 첫 순간을 태초(太初), 또한 음양으로 되어있는 우주 삼라만상을  낳은 자리를 태극(太極), 태전의 지세는 . 전주의 진안 마이산에서 발원한 물이 전북무주 용담을 거쳐 대청호와 신탄진을 돌아 태전을 감싸안고 꺼꾸로 치고 오른 금강의 물길이 공주 고마나루(금강변 나루일대를 이르는 말)에 가서 꺽어 부여를 거쳐 내려가다 충남강경을 지나 전북 군산에서 바다로 빠져나간다. 전주와 대전은 한시간 거리,

전라북도 전주 모악산밑에 구이(九耳)는 저수지마을은 옛 이름은 구성(九聖,아홉명이 성인이태어난다는 뜻), 일제 강점기때,아홉명 성인(聖人)이 태어나는 것을 막기위해, 성자(聖)의 왼쪽상단 귀이(耳) 부분만 짤라서 ‘구이’ 로 바꿨다.역사적으로 보면, 모악산은 불교 금산사, 원불교, 증산교의 발원지이고 김일성 선대 김태서묘가 안장됐으니, 구성(九聖)의 맞는 셈이다. 모악산(母岳山793m)을 300백번 이상올라 청룡사의 물을 길어 왔다.전주 건지산(乾止山)은 ‘하늘의 끝’글자처럼, 백두(白頭) 대간(大幹) 정기가 동쪽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다 태백산맥 부근에서 방향을 틀어 남쪽지리산과 만나는 노령산맥 근골(筋骨), 종점이 건지산. 건지산 지혈(地血)에는 이씨조선의 시조 이한(李翰)왕릉이 있고 500년 역사가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태백산맥(太白山脈)은 어떤가? ‘콩태 흰백’으로 ‘흰옷을 사랑한 백의민족 상징’의 산맥. 한반도의 동쪽, 중남부에 걸쳐 남북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맥(1,708m)·함백산(1,573m) 등의 명산, 태백은단면상의 특징은 동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며 동해와 가깝고, 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영서지방 또는 영남지방으로 이어진다. 이는 한반도 지형의 기본 골격인 동고서저(東高西低) 비대칭 '경동(傾動)지형', 즉 비대칭 요곡(謠曲)운동에 의해 서서히 융기되었기 때문. 태백산맥은 지도에 흔히 표시되듯 하나의 선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닌, 우리 한복의 두루막 같이 것 옷, 속옷처럼 겹겹의 산(山)들로 이어지는 겹산(裌山)이 태백산맥이다. 이를 크게 해안산맥·중앙산맥·내지산맥 등 3줄기. 또한 서쪽으로는 차령·소백 산맥들이 태백산맥에서 남서방향으로 완만하게 뻗어내리고 있다. 이들을 분수령으로 그 사이를 한강·금강·낙동강이  서해와 남해로 흘러든다. 

‘흰옷을 사랑한 백의민족(白衣民族) 상징’의 산맥인 태백준령과 백두,한라산(白頭漢拏山)은 일본이 개명(改名)을 못한 원래 이름 그대로다. 오늘날 고유의 민족 정기(精氣)가 보존돼, 한국은 세계 10대경제 대국에 진입, 일본(3위)을 넘보는 나라가됐다. 지형(地形)의 이름과 지세(地勢)관계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어머니 천도재(薦度齋)날, 이 글을 올린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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