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⑤ 해안선을 품고 돌아 가족과 함께 걷기 좋은 길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왜 올레를 자주 걷느냐고 묻는다. 나는 걷는 게 아니라 올레를 순례한다고 전한다. 그대도 마음에 무거운 게 있거든 한걸음에 하나씩 내려놓으며 순례하라고 권한다. 나에게 있어 올레는 순례 명상의 아란야이다. 일주일래(一週一來), 한주에 한 코스를 순례하며 자연과 함께 소통하는 게 즐겁고 행복하다. 이번 다섯 번째 순례는 제주올레 3-B 코스이다.

제주올레 3-B 코스는 2015년 5월 23일 개장되었다. 온평리 ‘동개맛, 터웃개’에서 신산리·삼달리·신풍리·신천리·하천리·표선리 당케 백사장까지 14.6km, 37리이다. 3-A코스 20.9km, 53리보다 6.3km 덜하다.

하지만 3-A코스가 오름을 안아 넘는다면, 3-B코스는 해안선을 품고 돌다가 신풍포구 거린올레에서 A코스와 다시 만나 같이 걷는다. 온평포구에서 표선 당케 ‘한모살’까지는 다양한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해안선과 그 해안선을 안고 있는 ‘성담’을 엿볼 수 있다. 코스가 완만하면서 해안 포구를 품고 돌기에 가족과 같이 걷기에는 최적 코스이다.

온평리 섯개맛 서포구. ⓒ윤봉택
온평리 용머리 일뤳당. ⓒ윤봉택
온평리 용머리 일뤳당. ⓒ윤봉택

앞서 소개하였지만 온평리는 신화의 마을이다. 도내에서 가장 신당이 많은 마을 중 하나인데 신당이 9개소나 된다. 동개맛 포구에서 출발하면 도대불을 지나 섯개맛 서포구에서 3-A·B코스가 나눠진다. 서포구에서 350m 가면 성담 넘어 해안선으로 굽어 도는데 ‘용머리 일뤳당’이 있다. 이 당에는 ‘허물할망’이라고 하여 아이들의 피부병을 낳게 하는 당신이 있다.

온평리 여맞은개에서 만난 좀녀 삼춘. ⓒ윤봉택
온평리 여맞은개에서 만난 좀녜(해녀) 삼춘. ⓒ윤봉택
온평리 펄못. ⓒ윤봉택
온평리 펄못. ⓒ윤봉택

해안선에서 도로로 나오면 '생이여'와 마주 보고 있는 ‘여맞은개’가 있고, 도로선 옆에 동골락헌 원형 불턱이 있는데, 운수가 좋으면 물질 오가시는 좀녜 삼춘을 만날 수가 있다. 올레 따라 조금 더 가면 길 북쪽에 두 개의 ‘펄못’이 있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온평리 알동네 주민들의 소중한 식수원이었다. 이 못에서 서쪽 ‘애기죽은날’ 해안까지를 ‘알바르’라고 하는데 신산리와 경계를 이룬다. 

온평리 알바릇새여. ⓒ윤봉택
온평리 알바릇새여. ⓒ윤봉택
온평리 애기죽은날 해안. ⓒ윤봉택
온평리 애기죽은날 해안. ⓒ윤봉택

이 계절 제주 해안선에는 준치를 걸어 해풍에 말리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작은 돌무더기가 길게 누워 있어 불려진 온평리와 신산리 경계 ‘진멀’ 해안도 예외는 아니다. 3km 지점을 지나면 작은 포구처럼 만을 이루는 신산리 ‘만물’ 해안이 기다린다. 여기에 서서 보면 종점 표선 해안선까지 한 눈으로 살필 수가 있는데, 순례하다 잠시 ‘범성굴’ 앞 해변에 서면 해수욕할 수 있는 쉼터 시설이 되어 있다. 

신산리 범성굴. ⓒ윤봉택
신산리 범성굴. ⓒ윤봉택

신산리 끝동네를 의미하는 ‘그등애’에 ‘앞개’라고 부르는 신산포구가 있다. 여기에서 ‘앞개’ 바로 서쪽 방향 도로 북쪽 가에 보면, 키 낮은 집을 풍수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성담’이 보이는데, 아주 잘 보존되어 있지만 그 흔한 환해장성 안내판이 하나 없다. 집 마당으로 들어서면 닭장·통시를 비롯하여 제주 초가의 옛 정취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신산리 우알. ⓒ윤봉택
신산리 우알. ⓒ윤봉택
신산리 농개 큰 불턱. ⓒ윤봉택
신산리 농개 큰 불턱. ⓒ윤봉택

범의 아가리와 같아 불려진 ‘호근여’와 ‘우알’을 지나면, 농어가 많이 몰려든다는 ‘농개’와 좀녜 불턱이 있고, 올레 중간 스탬프를 찍는 신산리 마을카페가 올레 가에 서 있다. 카페 바로 서쪽에는 도로보다 낮은 우잣 안에 작은 집 한 채가 있는데, 어촌 박물관이나 다를 바가 없다. 마당에 들어서면 ‘송키’를 갈아 먹었던 돌랭이부터 감태를 쌓았던 눌굽자리·통시·장팡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눈물 날만큼 정겹다. 

올레 중간 스탬프를 찍는 신산리 마을카페. ⓒ윤봉택
올레 중간 스탬프를 찍는 신산리 마을카페. ⓒ윤봉택
신산리 어촌 민가 풍경. ⓒ윤봉택
신산리 어촌 민가 풍경. ⓒ윤봉택

여기에서 ‘분드르’ 해안을 지나면 대포라 부르는 삼달2리 주어동 포구이다. 와강이臥江里이라 하는 삼달리 마을에는 제주노동요 가운데 테우 노젖는 소리·갈치 나끄는 소리의 어업요를 부르는 도지정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강성태 선생이 계신다. 포구에 잠시 앉으면 선생의 “우리 어멍 날 날적에는 금이 한향도 배럇것만은, 해구 청산 불보재기 신세가 웬일인고”라는 애끓는 테우 노 젖는 소리가 파도에 출 거린다.

삼달리 주어동포구. ⓒ윤봉택

해안선이 번번하여 바다 날씨를 가늠하는데 기준을 삼았다는 ‘납세’ 해안을 지나면, 삼달리 하동 불턱 ‘주어코지’ 가기 전 해안에서, 신산리 왕석으로 쌓은 성담과는 달리 중석으로 쌓은 성담 풍경을 볼 수가 있다. 

삼달리 조진여 납새.  ⓒ윤봉택
삼달리 주어코지 불턱. ⓒ윤봉택

여기에서 ‘대기내’를 건너면 ‘큰개’라고 하는 신풍리 포구이다. 신풍리를 ‘웃내끼’, 하천리를 ‘알내끼’라 부르다가, 천미천을 중심으로 다시 신천리를 ‘샛내끼’라 부르게 되었다. 신천리는 1909년 당시 천미연대에 주둔했던 봉군들이 거주하면서 설촌이 되었다고 하며, 향족(鄕族) 거주하였던 곳은 ‘웃내끼’, 토족(土族) 거주하였던 지역을 ‘알내끼’라 하였다.

신풍포구. ⓒ윤봉택

이곳 신풍포구 거린 올레에서는, 온평리 터웃개에서 통오름·독자봉을 넘어선 제주올레 3-A코스와 온평포구에서 신산·삼달포구를 지나는 제주올레 3-B 코스가 만나 표선 당캐 한모살 까지 6.6km 이어진다.

신풍리 먹돌캐, 동진여-신풍목장-신천마장. ⓒ윤봉택

포구에서 ‘먹돌캐’와 ‘동진여’를 지나면 해안 능선에 큰 목장이 있는데, 바로 바다목장이라 부르는 신풍·신천마장이다. 신천리에서는 마을 아래에 있다하여 ‘하목장’이라 부른다. 조선조 조정에 진상하던 말을 임시로 방목하였던 국마장이었다.

신천리 고망난돌-신천리 센동산-신천리 칼도리 해안선. ⓒ윤봉택

이곳에서는 잠시 쉬어가도 좋으리니, 신천마장 아래 ‘고망난돌’ 과 ‘센동산’ 능선에 기대어 경승을 감상하며 물마루를 바라보면, 칼날처럼 바위들이 솟아 나 인간이 용궁으로 가는 올레를 막아버렸다는 ‘칼도리, 칼선도리’의 해안선 끝으로, 수심이 깊어 용궁으로 이어진 길이라 부르는 신풍마을 상군 ᄌᆞᆷ녜 송씨의 ‘용궁올레’ 전설이 절 소리로 열린다.

신천리 도리뿌리 구진개-신천리 포구-신천리 돈짓당. ⓒ윤봉택

다시 일어나 ‘도리뿌리, 구진개’ 해안 따라 가면 신천포구이다. 포구 서쪽 ᄌᆞᆷ녜 불턱 입구에 보면, 시멘트와 돌담으로 작은 고팡을 만들어 용왕신을 모셔놓고 어부와 ᄌᆞᆷ녜의 머정을 기원하는 돈짓당이 있다. 높새바람의 길을 따라 ‘신천코지, 개앞’을 넘어 ‘배탕개’를 지나면, ‘새기미’ 건너 ‘고븐데기’에 신천리 고첫당이 있다. ᄌᆞᆷ녜와 어부가 단골인 이 신당은 용녀부인을 당신으로 모시며 돼지고기를 제물로 올린다.

시계 방향으로 신천리 코지-신천리 개앞-신천리 새기미-신천리 고첫당. ⓒ윤봉택

성산읍 신천리와 표선면 하천리의 경계인 천미천의 세월교 ‘배고픈다리’를 지나면, 신천리 고첫당‘에서 갈라진 ’하천리 고첫당‘이 있고, 서쪽은 하천리 포구이다. 포구 서쪽에 ’산물통‘과 함께 바다로 이어지는 ‘갯봉오지’ 해안을 따라가면, 봉문이라는 하르방이 처음 만든 원이라 불려진 ’하르방원垣, 봉문이원‘이 열리면서, 바로 하천리 백사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원'는 돌로 담장을 둘러 썰물과 밀물의 간만조 차이를 이용해 고기를 포획하던 원시 기법 어로시설이다.

ⓒ윤봉택
신천리 천미천 세월교 배고픈다리. ⓒ윤봉택
시계 방향으로 하천리 고첫당-하천리 포구-하천리 산물통, 갯봉오지-하천리 하르방원. ⓒ윤봉택

여기에서 하천리 ’너브름‘ 백사장을 건너면, 바로 표선리 ’소금밧‘과 함께 ’한모살‘ 백사장이 물결이랑 따라 펼쳐진다. ‘봉글레기(방울)‘처럼 물이 솟아나는 밭이라서 불려진 ‘계금밧’을 지나면, 설문대할망의 혼이 담겨 있는 두둑이라 불려진 ‘당두둑’ 송림이 나타나고, 그 자락 당캐 머리에 제주올레 3-A·B코스 종점 안내소가 있나니. 표선에는 탐라의 민속을 대표하는 성읍민속마을이 잘 전승 보존되고 있으니 살필수록 진국이다.

시계 방향으로 하천리 너브름-표선리 소금밧-표선리 한모살-표선리 당두둑. ⓒ윤봉택
ⓒ윤봉택
표선리 계금밧. ⓒ윤봉택
ⓒ윤봉택
표선 4코스 안내소. ⓒ윤봉택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로 격주로 공동 게재합니다. 

# 필자 윤봉택 시인은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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