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68) 대선을 앞두고 거리를 걸으며

다음 주 대선이 다가왔다. 

대선을 앞둔 3월 2일, 노동자·농민이 잠시 일손을 멈추고 거리에 나왔다. 제주도청 앞에 모인 무리는 2022년 대선에서 각 후보들에게 요구하는 10대 요구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간략히 진행하고 행진에 나섰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각 대선후보에 요구하는 10대 요구안은 현재의 불평등 체제를 전환하자는 취지의 의제다. △노동기본권 보장 △기후위기대응-정의로운 산업 전환 △농민기본권 제정 △생태 유기농업 전환 △성평등 농업 정책 실현 △C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농업 개방 반대 △제2공항 전면 백지화 △제주특별법 개정 △영리병원 폐지와 의료공공성 강화 등의 내용이다.

행진구간은 제주도청에서 제주시티호텔을 왕복하는 거리다. 길진 않지만 신제주로터리를 사이에 두고 도청방향의 문연로와 시티호텔방향의 삼무로를 걷게 된다. 대선요구안을 외치며 거리를 걷다보니 노동자의 기본권을 요구하며 일터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제주의소리
지난 2일 오후 2시 민주노총 제주본부와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 등 단체는 제주도청 앞에서 ‘불평등체제 교체, 대선 요구 쟁취를 위한 노동자·농민 정치행진’을 펼쳤다. ⓒ제주의소리

도청에서 신제주로터리를 지나 삼무로를 걷던 중 마주친 제주썬호텔. 코로나19 발생이후 굳게 닫힌 호텔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호텔 앞을 지나는데 정문 앞 물청소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영업 재개 준비를 하는건가? 왠지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걷던 썬호텔 노동자에게 물어보자 절대 그렇지 않단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후, 호텔의 운영주인 거대 필리핀 자본은 제주도의 조그만 호텔의 운영 따위는 관심 없는 듯 노동자에게 끝없는 휴업을 강요했다. 작년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올해에는 영업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합의를 이루었지만 정작 관련계획을 논의해야 할 대표이사가 3개월 장기휴가를 내고 본국으로 잠적했다. “영업을 재개하라! 생존권을 보장하라!”, “대표이사 나와라” 썬호텔 앞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19로 인한 관광산업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라!’ 작은 목소리지만 행진을 통해 이번 대선에 강조되었으면 좋겠는 구호를 외치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작년 9월 호텔 매각 발표이후, 거리에 선 칼호텔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호텔로비 철야농성, 매일 호텔과 도청 앞 피켓팅을 이어가며 고용안정을 요구하고 있는 그들이 어찌된 일인지 오늘 행진자리에는 보이지 않는다. 평상시라면 비번자를 중심으로 참여했을 그들이다. 알고 보니 3월 2일자 회사에서 희망퇴직자 모집을 공고하면서 관련대응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매각이 불가피하다면 호텔업을 유지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하라며 나의 일터와 권리를 지키려는 칼호텔 노동자의 움직임이 한발자국 더  커지고 있다.

어느덧 행진은 다시 신제주로터리를 들어선다. 신제주로터리를 들어서는 초입에 설치된 ‘삼무로’ 간판을 보면서 문득 ‘삼무(三無)’의 어원이 떠오른다. 도민이 불의를 저지르지 않아 도둑이 없고, 근검절약 정신이 강하므로 거지가 없고, 신뢰하고 협동하는 정신이 강하므로 대문이 없었다는.

행진 시작 시점인 제주도청에 도착했다.

제주도청 앞에서는 최근 또다시 노동자의 요구가 담긴 피켓이 보이기 시작했다. 20여년을 산북소각장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관련된 내용이다. 지자체 상시지속업무로 20년을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고용불안 뿐인 상황에서 또다시 시작된 투쟁.

최근 산북소각장에서는 오미크론에 온 가족이 확진되었지만 소각장에서 일하는 본인만 감염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평상시 일하는 환경이 열악해서 내성이 생겨 그렇지 않을까?”라며 서로 추측만 하고 있단다. 여름에는 70도가 넘어가는 고열작업장에서 사시사철 유해가스 노출위험과 악취를 맡으며 묵묵히 공공서비스를 제공한 노동자들이다. 산북소각장 운영종료가 다가오면서 이들의 고용도 위협받고 있다.

TV에서는 대선이 화두가 되지만, 여전히 고용불안, 임금체불, 직장갑질 그리고 노동기본권을 위한 노동자의 외침은 거리에서 이어지고 있다. 

거리에 선 이들 노동자에게 이번 대선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번 대선에서 강조되었으면 하는 나의 삼무를 읊조려본다. 

일터에서 쫓겨나는 노동자가 없는.
일터에서 권리를 빼앗기는 노동자가 없는.
일터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노동자가 없는.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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