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의 내사랑 제주] 섬 밖에서 바라본 내 고향, 제주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외려 동남아 관광이 더 싸게 먹힌다니까.”
“자연풍경 외로는 볼 거리가 너무 없어서 금세 심심해지더라.”
“더럽게 비싸기만 하고 먹을 만한 음식은 별로 없어.”

▲ 우도의 돌담길. 제주길은 걸어야 제격이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삼세번’이라고 했다. 그러니 고향 타박은 오죽 듣기 싫겠는가. 그것도 한두 사람도 아니고, 다녀오는 이들마다 한마디씩 걸치니,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불평의 내용은 여전했다. 아니 불만의 강도는 날로 높아지고, 불평의 목록도 갈수록 많아졌다. 볼 거리가 없다 해서 이런저런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우후죽순처럼 세우고, 자고 나면 길을 넓히는 공사를 하고, 갖가지 명목으로 축제를 열어도 제주를 찾는 사람들의 불만은 사그러들 줄 몰랐다.

그럴 때마다 제주도 출신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게 후회스러워진다. 슬며시 저항감도 일어난다. “그래서 어쩌라구. 내가 제주도지사야 뭐야, 제주도가 다 내 것이냐구.”

뭐, 사람은 다 제각각이니까, 가볍게 흘려넘기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두 사람도 아닌, 제주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약속이나 한듯 비슷한 불평을 쏟아내는 걸 보면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제주를 고향으로 둔 업보,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을 자랑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 대체 그 아름답던 올래길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러던 중 언론계 중견인 K선배가 내게 제주에 집을 하나 사고 싶은데 동행해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해왔다. 마침 고향집에 다녀와야 할 일도 있길래 그를 따라나섰다. 17년 전 쯤 우연히 남원리 바닷가 근처에 들렀는데 그때 그곳에 매료되었더란다. 그러나 외국을 떠도느라 제주를 다시 찾을 기회가 없었는데, 더 늦기 전에 그곳에 작은 초가집이나 돌집을 지어서 머물고 싶단다.

‘그럼 그렇지. 남원 바닷가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데. 역시 안목있는 사람은 달라.’ 고향이 아닌데도 여생을 보내고 싶은 곳이라니, 새삼 내 고향 제주에 대한 자부심이 밀려들었다. 제주를 향한 불평불만을 접수하는 데 신물이 났던 나는 절로 신바람이 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비행기에서, 달리는 시외버스 안에서 달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그는 정작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원 바닷가에 당도해서는 우울하고 착잡해 보였다. 웬일일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선뜻 물어볼 수도 없을 만큼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자기 기억이 잘못 되었을지도 모른다면서 바닷가 근처를 미친듯이 헤집고 다녔다. 그는 한참만에야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그때는 아주 정겨운 골목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내려가면 초가지붕을 한 돌담집들이 나란히 이마를 맞대고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 바다가 보였는데...”

“이럴 순 없다구, 이럴 수는. 해변까지 뻥 뚫린 이렇게 멋대가리 없는 차도가 아니라 그림처럼 예쁜 골목길이 있었다구.”

딱 한번의 만남에서 필이 꽂혀서 평생 사모해온 여인을 용기를 내어 찾아나섰는데 이미 그 여인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짝사랑 남자의 좌절. K선배의 표정은 영락없이 실연당한 남자의 표정이었다.

그가 말한 골목길은 제주도 식으로 말하자면 ‘올래’였으리라. 제사떡이 든 구덕을 담 넘어로 사뿐 넘겨줄 수 있을 만치 이웃이 도란도란 사이좋게 붙어 사는, 그런 올래! 한국이 낳은 유명한 여성건축가 김진애씨는 ‘올래야말로 제주도 공간이 지닌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런 올래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그대신 사통팔달로 쭉쭉 뻗은 탄탄대로가 펼쳐지고, K선배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정겹고 든든한 돌담집들은 도로의 탄생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남원토박이인 우리 이모부는 과수원과 집을 겸한 맞춤한 땅이 있는데 그 집 앞으로 올해 안에 4차선 도로가 새로 건설되므로 투자가치가 높다고 역설했다. 이모부의 열변은 K선배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혼잣말처럼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안 와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예전 기억이라도 온전하게 간직할 수 있었을 테니까.”

외지인을 매료시켰던 ‘제주도다운’ 풍경이 외지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는 명목으로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제주에 대해 그는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독특한 풍광, 고유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면 무엇으로 외지인들의 눈과 마음을 끌어당길 것이냐면서.

# ‘빨리 빨리 관광’이 불러들인 자충수

풍경이 사라지고, 윤곽선이 뭉개지고, 산과 바다의 라인이 허물어지면서 새롭게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많다. 너른 길, 점점 숫자가 늘어나는 대형 관광버스, 쌩쌩 날아다니는 오토바이, 스쿠터, 심지어 골프카까지. 이 모든 것이 ‘빨리빨리’ 제주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돕는 탈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도움은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으니 이를 어쩌랴.

몇년 전 서울의 신문,잡지사에서 일하는 여자 후배 둘과 우도를 처음 찾았었다. 비 오는 날 성산포에서 바라보는 우도는 ‘환상속의 섬’ 그 자체였다. 잡지사 편집장을 지낸 한 후배는 “저 섬이 혹시 이어도가 아니에요?”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네가 이어도라고 생각하면 그게 이어도야. 이어도는 그런 곳이야.”

우리 일행이 그 섬에 머무는 이틀 동안 우도는 온전히 이어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때마침 관광 비수기라서 우도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교통수단이라고는 배에 싣고 들어오는 자가용 외로는 오로지 시내버스 두어 대뿐. 우리는 버스를 탔다가 마음에 드는 풍광이 나타나면 내려서 걷곤 했다.

걷다가 꾀가 나서 다시 버스를 잡아타면 아까 본 그 운전기사이곤 했다. 운전기사는 얼굴이 익은 우리 일행에게 땅콩을 사라고 권하더니 버스를 잠깐 세워놓고 자기 집 마당에 세워둔 땅콩가마니를 가져와 싼값에 넘겨 주었다. 도시에서 온 그네들은 현장에서 이뤄진 즉흥적인 거래에 무척 흥겨워했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내던 두 후배는 우도 특유의 풍광과 정겨움에 단박에 빠져들었다. 그중 소설가 후배는 뭍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때의 우도를 잊지 못해서 단편소설에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어떤 섬’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에 혼자 우도를 찾은 나는 초입에서부터 보기좋게 배신을 당했다. 그 사이에 우도는 그 어느 곳보다도 빠른 섬이 되어 있었다. 우도항 선착장에 즐비하게 늘어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스쿠터의 행렬......그중 두엇은 방금 도착한 관광객을 싣고 요란한 ‘부르릉’ 소리와 함께 먼지를 뽀얗게 날리면서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게다가 고작 몇 채밖에 없던 모텔과 펜션이 그새 우후죽순처럼 들어서서 고즈넉한 바다 풍경을 들쭉날쭉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숙박업소의 외관이나 색상도 그야말로 ‘주변 풍경에 가장 어울리지 않게 짓기로 작심한’ 것처럼 해괴하고 흉칙하기 짝이 없었다.

이게 그 우도인가? 시간이 느릿느릿 간다는? 바깥 세상을 잠시 잊어버리게 만든다는? 내가 보았던, 좋아했던 그 우도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나는 몇해 전 K선배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올 봄에 다시, 또 우도를 찾았다. 혹 지난해에 헛것을 보지 않았나 싶어서. 첫눈에 사랑에 빠졌던 우도의 매력을 차마 잊을 수 없어서.

그곳 우도봉 입구 매점을 지키는 토박이 아저씨가 내게 말했다.

“관광객들이야 예전보다 많아졌지만 실속이야 더 없지요, 배에다 차 싣고 오고, 차속에 먹을 거며 물놀이 도구며 심지어는 생수랑 과일까지 다 챙겨갖고 오니까요. 여기서 하는 거요? 가끔 자동차 창문 사이로 얼굴 빼꼼하게 내밀고 길 물어보는 것밖에 없죠. 점심 먹고 들어와서 차로 한바퀴 휙 돌고 저녁 먹기 전 막배로 다시 나가니까 펜션에 묵는 관광객도 별로 없어요. 뭐, 도항선 선주나 돈을 벌까, 우도 사람들은 괜히 번잡해지기만 했죠.”

본디 모든 게 시간을 들인 만큼 보고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이 작은 섬을 그처럼 빠른 교통수단으로 휙 둘러보고 나가니 무얼 느끼고 무슨 향기를 맡고 무슨 감상에 빠져들 수 있겠는가. 그저 영화 속의 로케이션 현장, 텔레비전이나 광고 화면에서 익숙한 그 풍경을 잠시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러니 거기에서 받는 인상 역시 지극히 일회적이고 표피적일 수밖에.

어디 우도만 그런가. 얼마전 신문보도를 보니 마라도에 관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사연’이 실려 있었다. 한바퀴 도는 데 걸어서도 두 시간 남짓인 이 섬에 어느날 골프카가 등장하더니, 경쟁적으로 골프카를 들여온 주민들끼리 관광객을 유치하느라고 도선장에서부터 난리라는 소식이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두어 해 전 아들과 함께 자전거여행을 나섰던 옛 직장 후배가 마라도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처럼 아름다운 밤하늘과 총총한 별은 처음 봤다고 호들갑을 떨었었는데....

작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서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내 고향 제주. 문제는 자신만의 색깔을 잘 보존하고 살려야 하는데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자기의 유일한 밑천을 자꾸만 까먹고 제 무덤을 깊이 파는 데 있다.

그나마 남은 밑천을 다 들어먹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개발지상주의’ ‘빨리빨리 돌기’식 관광을 차분히 돌아볼 일이다. 속도에 치이고 바쁜 일상에 쫒겨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평화의 섬’ 제주가 줄 수 있는 진정한 휴식과 위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다.

걸어서, 찬찬히, 느릿느릿 걷는 것처럼 제주를 잘 느끼고 이해하고 제주의 자연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걷는 관광이야말로 제주 사람에게도, 제주를 찾는 외지인에게도 다 이익이 되는 ‘윈윈’ 해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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