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의 도백열전(32)] 제10대 김선옥 도지사 ①

민주당 정부가 제주도 총무국장 김선옥(金善玉)을 제10대 제주도지사로 기용한 것은 매우 의외의 일이었다.

1960년 12월로 예정된 민선(民選) 도지사 선출을 불과 2개월 남겨두고 도정의 최고 책임자인 지사경질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김선옥은 그때 후임 지사로 물망에 올랐던 인물 가운데서도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뜻밖의 인물이었다.

그러한 김선옥의 전격적인 발탁은 정권을 잡고 있는 민주당내의 신파(新派)가 구파(舊派)인 전임 양제박 지사를 「中文 발언파문」과 관련, 민선지사 선거전에 경질하기로 방침을 결정한 뒤 신파인 이상철(李相喆) 내무부장관의 기용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

일제시대 때 광주농고를 졸업한 후 전라남도 장성군청에서 근무하다가 해방되면서 제주도청으로 옮겨 농무과장, 사회과장, 지방과장, 남제주군수, 道산업국장 등을 역임한 김 지사는 전임 양제박 지사에 의해 총무국장으로 발탁됐었다.

홍문종 의원, 고담용 의원 의식…동향∙동창인 김선옥 총무국장 신임지사로 천거

김선옥을 후임 지사로 이상철 내무부장관에게 천거한 사람은 홍문중(洪文中)이었다. 홍문중은 지사 경질이 있기 석달 전인 그 해 7월29일에 실시된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북제주군에서 당선된 초선의원으로서, 김선옥 지사와 같은 애월 출신인데다 홍 의원의 친척인 홍종언(洪宗彦∙제주석유사장∙제주상공회의소회장 역임)과 김선옥 지사는 동창으로 막역한 사이였다.

또한 홍문중 의원의 천거의 이면에는 같은 제주출신 고담용 의원이 고 의원의 선거사무장이었던 양남전을 후임 지사로 강력히 추천하고 있어서 자신의 사람을 지사로 심기 위한, 두 사람간의 묘한 알력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들은 돌연히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지사로 임명된 김선옥에게 조차 아주 뜻밖의 일로 받아 들여졌다.

1960년 10월7일 임명장을 받기 위해 급거 상경하던 김 지사는 기자들의 회견요청을 받고 “아직 정식으로 발령장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어서 뭐라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해 양 지사 자신도 지사 임명이 갑자기 결정된 일임을 시사했다.

김 지사는 한 마디만 해달라는 기자들의 끈질긴 요구에 “서울에 머물면서 군수를 포함한 道 국․과장급에 대한 인사를 구상한 뒤에 경험있는 지역인사를 기용하겠다. 현재 공직사회에서 지탄을 받고 있는 사무관급 3~4명에 대해서는 모두 사퇴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면서도 총무국장은 반드시 자신과 동진동퇴할 수 있는 사람을 등용하겠다고 강조했다.

닷새만에 귀임한 김 지사는 도정방침을 △인사적정 △민의존중 △민력배양으로 발표하고 그동안 문란했던 관기(官紀) 확립에 최선을 다하겠으며 민의에서 나온 건의사항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제2공화국이 수립된 후 처음으로 임명된 도지사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는데 귀임하는 날 바로 도의회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민주당, 김 지사 취임 다음날부터 ‘반혁명 지사’ 지적하며 사퇴 요구

그러나 민주당도당부에서는 김 지사가 ‘3.15’부정선거 당시 道산업국장으로 있으면서 남제주군지역 선거책임을 맡았던 부정선거 협조자라고 지적하고 당장 사퇴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김 지사의 도정출범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였다.

민주당은 김선옥 지사 취임식이 거행된 다음날인 10월14일 오후2시 道당사무실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고문호(高文昊)를 대표로 하는 「반혁명지사 임명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한 뒤 투쟁위원 4명이 직접 김 지사를 방문, 사퇴를 강력히 요구했다.

김 지사는 난감했다. 그것도 취임식이 있은 지 불과 하루만에 자신더러 퇴임하라는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이같은 요구는 민주당도당부의 집행부 대부분이 중앙당과는 달리 구파로 구성되고 있어서 신파에 의해 기용된 김 지사에 대한 반발과 함께 김 지사를 천거한 홍문중 의원이 김 지사가 자유당 시절의 고위 공무원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민주당도당부와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결정한 데에 따른 감정 등이 크게 작용한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사는 민주당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고 크게 당황하면서 “사퇴문제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는 말로 그들의 격한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지사임명반대투쟁위원회는 3시간 동안이나 지사실에서 버티고 앉은 채 김 지사를 다그치며 “자유당 시절의 고급간부였던 당신이 도청 국장들의 인사를 실시하기 앞서 먼저 사직부터 하라”고 재촉했다. 그들은 김 지사를 아예 ‘지사’로 호칭하지도 않으면서 다음날 다시 올 터이니 그때까지 태도를 분명히 결정하라고 윽박지른 후 돌아갔다.
 
김 지사 “정국안정과 민수수습을 위해 노력하는 게 본분이다”며 사퇴요구 거부

 도지사임명 반대투쟁위원회는 예정대로 다음날 오전 지사실을 방문하고 계속 김 지사의 사퇴를 요구했다.
 
김 지사는 “모든 국민이 소망하는 바가 정국안정과 민심수습인데 정부가 일단 나를 지사로 임명한 이상 정국안정과 민심수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 본분으로 안다. 이제 얼마 없으면 지방자치법이 통과되고 지사 선거가 실시될 것이므로 지금 사퇴할 경우 민심이 더욱 혼란스러울 수 있다”면서 당장 사퇴하기가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김 지사는 이어 “그러나 나는 민주당이 임명한 도지사인 만큼 앞으로 모든 도정은 민주당도당부와 논의해 나가겠으며, 인사문제도 민주당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민주당 인사를 적극 기용하도록 하겠다”고 반대투쟁위원회를 달랬다. 민주당 도지사임명 반대투쟁위원회는 그제서야 돌아갔다.

그후 민주당에서는 도당 부위원장인 고승호(高昇浩)를 요직에 기용해 줄 것과 3.15 부정선거관련 공무원들을 사퇴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김 지사에게 보내왔다. 그러나 이같은 일련의 과정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꼬여갔다.

김 지사와 민주당도당과의 밀약설이 외부로 새나가면서 제주도민주수호학생연맹(위원장 宋大鍾) 소속 대학생 6명은 10월22일 밤 도지사 관사를 불쑥 찾고 “김 지사는 재임기간이 불과 3개월에 불과한 과도기 도지사이기 때문에 인사문제에 외부의 압력을 받아들여서는 결코 안된다. 물론 자유당 고위공무원이었던 김 지사의 도정 수행에 어려움이 크고 인사처리에 곤란이 많을 것으로 알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의 압력에 의해 인사를 단행해서는 안된다”고 못 박았다.
 
도내 대학생들의 돌연한 방문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김 지사는 “비록 임기가 짧더라도 도정은 민심에 의해 처리되는 것이며. 내가 실정(失政)할 경우 도민들의 비난을 면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민주당의 건의서를 받았으나 도정의 참고자료일 뿐임을 알아달라”며 설득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고압적인 자세를 풀지 않고 “우리 민주학도들은 혁명건설을 위해 지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계속 감시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1시간여의 지사 면담을 끝내고 돌아갔다.

내무부, 김 지사가 요구한 승진인사 명단 바꾼채 내려보내…김 지사 ‘노발대발’

김 지사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였다. 민주당도당부의 압력에다 대학생들마저 도정에 간섭하기 시작함으로써 앞으로 도정수행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것을 피부로 절감할 수 있었다.

도정 초기부터 갖은 외압에 시달려야 했던 김 지사는 인사를 너무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해 10월26일 총무국장을 비롯한 간부들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그런데 내무부에 승인을 요구한 인사내용이 당초보다 다르게 변경돼서 내려온 것이었다.

김 지사는 총무국장에 김왕진 지방과장의 승진발령을 상신했으나 내무부는 제주지역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김벽파(金碧波)를 총무국장에 발령하는 대신에 김왕진을 산업국장으로 발령한 것이었다. 그때 북제주군을 초도순시중이었던 김 지사는 도청으로부터 이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크게 화를 내며 남제주군 초도순시를 무기한 연기한 뒤에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김 지사로서는 개인의 자존심은 물론이며 도지사에 대한 권위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김 지사는 상경채비를 갖추는 자리에서 측근에게 “도지사가 올린 인사를 내무부라고 한 마디 상의없이 마음대로 바꿔버린다면 더 이상 지사직을 수행할 수 없는 일이 아니냐”며 만약 제주도가 상신한 내용대로 인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지사 사퇴까지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김 지사가 서울에 머물고 있는 동안 김 지사를 도지사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홍문중 국회의원이 귀성, 민주당의 김 지사 임명반대투쟁운동과 민선 지사에 대한 공천문제를 처음으로 언급해 관심을 모았다.

홍문종 의원 “김선옥 지사가 민주당 후보로 공천되는 게 상식아니냐”

홍 의원은 “민주당원이 민주당 정부가 발령한 지사를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다. 앞으로 있을 도지사 선거에 김 지사가 공천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이 아니냐”면서 김선옥 지사의 민주당 공천을 시사했다.
 
이러한 홍 의원의 지적이 설득력을 가졌는지 민주당도당부의 혁신동지회는 “김 지사에 대한 반대는 정부에 대한 반대였다”는 말로서 지사 임명반대는 일부 강경파의 행동이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상경 10여일만인 11월8일에 돌아온 김선옥 지사는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사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지난번에 단행된 道국장 인사에 대해 내무부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했더니 다음에 있을 과장 및 군수 인사에는 반드시 도지사가 상신한 인사안을 최대한 반영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며 그 인사는 11월20일께 실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의 민선 지사출마 부분에 이르러서는 “12월 하순에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민선지사 입후보 문제는 현단계에서 뭐라고 말 할 수 없다”면서도 민주당이 공천해준다면 출마를 적극 검토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김 지사의 이같은 발언은 집권당인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민선지사로 출마할 뜻을 품어왔던 지역 인사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민주당 공천경쟁에 뛰어든 사람은 梁濟博 前지사, 李洪琳 前산업국장, 김선옥 지사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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