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제주마을 이야기] 가시리마을 ② 가시초교 옛터 활용해 갤러리 운영

 
▲ 폐교의 정문에는 박물관을 알리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 장태욱
 
90년대 폐교되었던 옛 가시초등학교 앞에 이르렀다. 정문 앞에는 학교 교명 대신에 박물관을 알리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고, '포토갤러리 자연사랑'이라는 명판이 붙어있었다.

 
▲ 폐교를 개조해서 사진 갤러리로 활용하고 있었다. 학교 이름 대신에 <자연사랑>이라는 갤러리 이름이 있었다.
ⓒ 장태욱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자 "대단히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갤러리의 운영을 위해 입장료를 받게 되었습니다"라고 쓴 조그만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성인 입장료가 3000원이고 어린이 입장료는 1500원이었다.

 
▲ 갤러리의 입구에는 서재철 관장의 저서와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 곳은 갤러리의 판매대로도 이용된다.
ⓒ 장태욱
 
로비에서 사람을 기다려도 갤러리 주인이 출타 중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로비에는 갤러리 관장인 서재철 작가를 소개하는 글이 있었고, 그의 작품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저서들이 판매용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로비는 갤러리의 판매대로 이용되고 있었다.

잠시 후 서재철 관장의 부인이 도착했다. 필자와 아내에게는 도민 할인 요금을 적용해서 2000원씩 입장료를 받았고,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두 아이에겐 요금을 받지 않았다. 부인이 교실을 개조해서 만든 전시실로 우리 가족을 안내하고 내부 조명을 켜 주었다.

 
▲ <바람자리>라는 이름의 전시실. 이 곳은 제주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 장태욱
 
내부 전시실은 '바람자리', '따라비' 두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 필자의 아이들
ⓒ 장태욱
 
'바람자리'는 '바람이 머무는 공간'이란 의미가 있는 90평 규모의 전시공간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랐다.

 
▲ <따리비>라는 이름의 전시실. 이 곳에는 제주의 독특한 것들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장태욱
 
'따라비'는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오름'의 지명을 인용해서 붙인 전시공간이다. 60평 정도 규모의 '따라비' 전시실은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것들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곳에 전시된 사진들 중 제주 해녀들을 담은 작품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 해녀 사진.
ⓒ 장태욱
 
위미 포구 앞에서 태어나서 자란 필자는 늘 집 앞에서 해녀들을 보며 자랐다. 그런데 대학 진학하고 고향을 떠나 부산 영도에서 생활할 때에도 학교 앞에서 매일 해녀들을 볼 수 있었다. 부산에서 만난 해녀들은 어릴 적 집 앞에서 만났던 동네 해녀 아주머니들과 말투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처녀 때 물질하기 위해 육지로 나오신 분들이라 했다.

해녀는 척박한 환경에서 강인한 투지로 삶을 개척했던 제주 커리어우먼들의 상징이었다. 그런 해녀들을 바다가 없는 중산간(中山間) 갤러리에서 다시 만나니 금방이라도 사진 속에서 나와 "여긴 어쩐 일로 왔냐?"고 물어 오실 것만 같았다.

 
▲ 복도에 옛 가시초등학교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 장태욱
 
전시실외에도 옛 교실 복도에는 가시초등학교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 갤러리를 다녀간 학생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갤러리 밖에는 제주화산탄이 전시되어 있는 '화산탄 갤러리'가 있었고, 손님들을 위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 서재철 관장
ⓒ 장태욱
 
관람이 끝날 때쯤 외출 나갔던 서재철 관장이 돌아왔는데, 그는 생각보다 소탈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기자일을 하던 서재철 관장은 젊은 후배들을 위해 빨리 나가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1997년에 제민일보를 사직했다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할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갤러리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갤러리를 처음 시작하려고 하니 친구들이 앞에서 반대했다고 했다. 돈이 생기지도 않는 사업에 사재를 털어 넣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인과 1남 4녀 가족들은 모두가 동의해 주었다고 했다.

사람이 몇 살지 않는 외진 마을에 폐교를 얻어 갤러리를 운영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지 궁금했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운영비 문제라고 했다. 임대료와 시설물 관리비 공과금 등이 현실에서 겪는 문제인데, 사진을 판매해서 얻는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작가 서재철  
  갤러리 <자연사랑> 관장  
 
 
1947년 제주에서 출생
제주신문 사진부장, 제민일보 편집국장 등의 직위를 포함해 30년간 언론인으로 활동

한국기자상(1979년, 1994년) 수상
서울언론인상(1982년) 수상
송하언론인상(1983년)
현대사진문화상 창작부문(1988년) 수상
대한사진문화상 보도부문(2007년)

저서 : <제주해녀>, <한라산>, <한라산 노루가족>, <한라산 야생화>, <바람의 고향 오름>, <몽골, 몽골 사람들>, <화산섬 바람자리 오름>, <날마다 솟는 성산>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이 최근에 꽤 많아졌다고 했다. 특히 교육청에서 인성교육을 위탁하면, 학생들에게 사진에 대해 교육하고, 학생들이 찍은 사진을 직접 인화해서 뽑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사진동호회가 활성화되면서 사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도 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을 위해 사진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라고 하자, "사진을 거창하게 예술이니 뭐니 하지 말고 평소에 자연이 빛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영상에 관심을 갖다 보면 그 아름다움을 포착하게 된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아픔을 뒤로하고 고향을 떠나고 있는 때에, 시골 폐교를 빌려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서 관장과 그 일을 뒤에서 묵묵히 후원하는 가족들에게 존경심이 느껴졌다. 필자와 같이 이 갤러리를 찾은 아내와 아이들도 훗날 내가 이런 선택의 귀로에 서 있을 때 내 선택에 선뜻 이해하고 동의해 줄지 궁금하기만 했다.

 
▲ 멀리서 바라본 따라비오름
ⓒ 장태욱
 
서 관장과 인사를 나누고 운동장 밖을 나오면서 문득 '따라비오름'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오름이기에 서 관장은 전시실의 이름을 '따라비'라 했을까? 흰옷을 차려입고 따라온 아이들이 아빠의 호기심으로 인해 오름을 등반하게 될 모양이다.
 
 
가시리 마을 찾아가는 길 : 제주시에서 97번 국도(동부산업도로)를 따라 성읍민속마을에 도착한 후 서쪽으로 약 6Km정도 가면 가시리마을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제주시 버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로 약 1시간 소요되고, 자가 운전자인 경우 약 45분 정도 소요될 것입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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