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제주기행(8)]슬프고도 아름다운 별도봉

 
▲ 제주시 화북동의 동쪽 해안에 별도봉이 있다.
ⓒ 장태욱
 

별도봉은 화북포구에서 동쪽으로 약 1km 지점 해안가에 있다. 사라봉의 동쪽에 나란히 있어서 마치 사라봉의 형제봉 같은 느낌을 준다.

과거에는 이 오름을 '베리오름'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그 어원이 '벨(제주방언으로 절벽)'의 '도(제주방언으로 입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과, 배가 들어오는 입구인 '뱃도'가 '벨도'를 거쳐 '별도'로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 외에 다양한 설이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것이 맞는 주장인지 알 수 없다.

 
▲ 화북천, 삼별초군이 고려 관군을 격파했던 곳이다.
ⓒ 장태욱
 

별도봉 동쪽에는 화북천이 오름을 끼고 돌다가 바다와 만난다. 이 화북천은 삼별초 군대가 제주에 상륙해서 고려 관군과 일전을 치르고 관군을 전멸시킨 장소이기도 하다.

1270년 개경환도에 반대하여 난을 일으킨 삼별초는, 크고 작은 배에 무기를 실어 남하한 후 진도에 도착하여 그 곳에 용장성을 쌓았다. 여몽연합군은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 6천을 동원하여 용장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고려 조정은 삼별초 군대가 진도에서 패배하면 탐라로 이동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용장성 공격 이전인 1270년 9월 영암부사 김순과 장군 고여림에게 군대를 주어 탐라 수비에 가담하도록 하였다.

당시 고여림 군대가 탐라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삼별초 측에서는 별장 이문경에게 명하여 탐라를 점령하도록 하였다. 이문경은 관군보다 늦은 1270년 11월에 명월포에 상륙하였고, 관군이 이를 막기 위해 출동했지만 삼별초 군대에게 패배했다.

여몽연합군과 삼별초군이 용장성에서 치열한 전선을 형성하는 와중에서도 양군 모두 탐라를 선점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여 이곳에서 양군이 치열하게 싸웠음을 미루어 볼 때, 당시 양쪽이 탐라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명월포 앞에서 삼별초에 패배한 관군은 후퇴하여 화북에 진을 쳤고, 이문경은 관군을 송담천(현재 화북천)으로 유인하여 대파하였다. 이 전투에서 고려장군 고여림은 전사하였다. 이리하여 이문경은 명월포에서 조천포까지 교두부를 확보하고 이후 3년간 탐라를 지배하였다.(김봉옥의 <제주통사>)

 
▲ 원명사. 시인 고은이 제주에서 생활할 때 머물렀던 사찰이다.
ⓒ 장태욱
 

화북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제주교육대학과 오현고등학교 중간 지점에서 원명사라는 절이 찾을 수 있다. 원명사는 60년대 초반에 시인 고은이 '불면증에 시달리며 3년 정도 묵게 되었다'는 절이다. 그는 바다에 떨어져 자살하기 위해 제주행 배를 탔다가, 잔잔한 바다를 보며 술에 취해 잠들어 자살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옛 노래는 누가 지었는지 모르고 노래만 남아 있다.
저녁 풀밭이 말라서 비린 풀 냄새가 일어나고
처음부터 말떼는 조심스럽게 돌아온다.
여러 산들은 제가끔 노을을 받아 혹은 가깝고 혹은 멀다.
또한 마을처녀가 밭에서 숨지는 햇살을 가장 넓은 등에 받고
이 고장에서 자라 이 고장에서 시집갈 일밖에는 생각지 않는다.
아무리 어제의 뭉게구름이 그토록 아름다왔을지라도
그 구름은 오늘 바라볼 수 없으며 벌은 날아가다 죽는다.
이 땅에 묻힌 옛 피가 하루하루를 그들에게 가르치며……
아직 밭 일꾼과 귀 작은 소떼와 처녀들이 돌아오지 않은 채
화북(禾北) 마을의 갈치배는 희미꾸레한 돛을 올리고
제 마음에 따라 다른 바다를, 그러나 한마음으로 떠난다.
- 고은의 '해연풍(海軟風)' 중 일부

미래에 대한 꿈도 변화에 대한 기대나 희망도 없이, 섬이 부여한 척박한 환경 하에서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노동에만 종사하는 주민들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 별도봉 산책로 입구에 칠머리당굿터가 있다.
ⓒ 장태욱
 

별도봉에는 오름의 허리를 끼고 바다를 마주대할 수 있는 1.8km 길이의 '장수산책로'가 있다. 장수 산책로로 진입하는 입구에 칠머리당굿터가 있다.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의 어민들이 본향당(本鄕堂)인 칠머리당에서 하는 굿이다. 건입동 주민들은 마을 수호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都元帥監察地方官)과 요왕해신부인(龍王海神夫人) 두 부부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비는 굿을 해왔다.

칠머리당영등굿은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져 있는 굿이며, 유일의 해녀의 굿이라는 중요성으로 인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71호로 지정되었다.

 
▲ 장수산책로가 방문객들에게 별도봉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 장태욱
 

장수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면 주위에서 초록의 풀과 나무들의 인사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해풍을 받으며 산책로의 굴곡을 따라 가다보면 그 모습이 마치 엄마가 아기를 업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애기업은돌'이라 부르는 바위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자살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나타난다. 사회 양극화 심화로 인해 서민들 마음 속에 절망의 골이 깊어가는 때이므로 자살바위에 써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문구가 더욱 절실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 애기업은바위
ⓒ 장태욱
 

폭발형 화산에서는 용암이 크고 작은 파편으로 화산가스와 함께 분출한다. 이 때 화산의 기반을 이루고 있던 기존암의 암편(岩片)도 함께 분출한다. 이들을 총괄하여 화산포출물(火山包出物) 또는 화산쇄설물이라 한다.

화산포출물은 암편 또는 알갱이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분류한다. 그 중 지름 32mm 이상인 것을 화산암괴(火山岩塊)라 하는데, 화산암괴는 무게가 60t 이상에 달하는 것도 있다. 애기업은돌이나 자살바위는 화산폭발 때 분출한 화산암괴가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오랜 기간 침식작용을 거쳐 지표 밖으로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 자살바위에는 '다시한 번 생각해보라'는 글귀가 있다.
ⓒ 장태욱
 

해안을 바라보면서 절벽 위에 있는 오름의 기슭을 돌아 오르면 정상에 당도한다. 별도봉의 정상에서는 바다 방향으로는 화북해안과 제주항이, 그리고 그 반대로는 한라산과 제주 시가지 일대가 훤히 내다보인다. 이 일대에서 바라본 바다와 그곳에서 태양이 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과거에는 이를 사봉낙조라 하여 영주십경 중에 하나로 꼽았다.

 
▲ 저녁 무렵 제주항 위에 태양이 떠있었다.
ⓒ 장태욱
 

별도봉 정상을 내려 오다보면 별도봉과 사라봉 중간에 '알오름'이라는 작은 오름이 있다. 오름의 존재 여부가 외관상 잘 확인되지는 않지만 알오름 정상에는 제주시 동부지역에 식수를 공급하는 별도봉정수장이 있다. 삼양수원지에서 공급받은 물을 맑게 정화시킨 후, 봉우리 정상에서 중력을 이용해 가정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다.

 
▲ 별도봉 정수장
ⓒ 장태욱
 

별도봉 남쪽에는 오랜 침식작용에 의해 가파르게 깎인 아름다운 절벽이 있다. 다만 그곳에 과거 일본군이 군사목적으로 파놓은 진지동굴이 있어서 생채기가 도려내진 것 같은 아픔을 전한다.

별도봉은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를 가진 관광지'라고 극찬하듯 빼어난 절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고은 시인이 노래하듯이 '뭉게구름이 그토록 아름다웠을지라도' 그것에만 취해 있을 수 없는 곳이다. 해안산책로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아픔 또한 작지 않기 때문이다.

 
 
별도봉 가는 길 : 제주공항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5km 정도 가면 제주시 우당도서관이 나옵니다. 우당 도서관 정문에서 별도봉 입구가 보입니다.

다음 편에는 화북동의 황사평마을을 소개하겠습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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