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

야고는 제주도 억새풀의 뿌리에 기생하는 1년초 식물입니다.
푸른빛을 가지지 않았기에 광합성을 하지 못해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안되는 식물입니다.
억새가 한창 무성한 가을에 피어나기때문에 걸음걸이가 바쁜 이들에게는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는 꽃입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꽃이죠.

제가 억새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식물도감을 통해서였습니다. '제주도 억새풀밭에 정말 저런 꽃이 있단 말인가?'하는 기대를 품고 이제나 저제나 야고를 만날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꽃이라고 하는 것이 보고 싶다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니 어느정도 행운도 따라주어야 겠죠.

가을 감자를 놓으러 가던 날이었습니다.
컨테이너에 씨감자를 담아 나르다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씩씩거리며 씨감자를 주워담는데 억새풀 사이에서 '안녕!'하며 인사를 하는 야고를 만났습니다.

"야호! 야고를 만났다!"

그리고 한번 보이기 시작하더니 종종 그 얼굴을 보여주었답니다.

우리는 흔히 '기생한다'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연은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갑니다. 서로가 서로를 주장하면서도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서로임을 주장하면서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이렇게 서로를 받아들일 때 혼자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가지만 서로의 장점들을 인정해 줄 수 있다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지요.

야고, 기생하는 식물이라고 해서 결코 밉지않은 꽃이었습니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자신을 품어준 억새에게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청아하게 피어있는 보랏빛 예쁜 꽃 야고는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나에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을 연재하는 '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 종달리에 살고 있으며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한다. 목사이며, 수필가로 근간 자연산문집<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 1,2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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