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제주기행] 제주 고성1리, 역사 학습과 실록 체험 다 할 수 있는 곳

▲ 고성1리  ⓒ 장태욱
제주시내에서 서쪽으로 차를 몰고 16번 국도만 따라가다 보면 광령 마을이 나온다. 광령 마을에서 이 도로를 따라가면 항몽유적지, 혹은 항파두리성으로 유명한 고성1리에 당도할 수 있다. 광령 마을에서 고성에 이르는 길은 봄에 벚꽃이 만개했을 때 절경을 연출한다.

삼별초에게 항파두리는 최후의 대몽항쟁지로서 주요한 지역이었다. 이런 지역에 내·외성을 견고하게 축성하자면 오랜 시일과 많은 인원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을 축성하는 주위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설 등이 설치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성을 위해서도 많은 사람이 상주하게 되었으니 성 주위에 자연히 촌락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항파두성 축성 시부터 이 주위에 촌락이 형성되어 고려조 충렬왕 26년(1300년)에 설치한 제주도 14현촌의 한 개인 귀일현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 중엽에는 우면(지금의 애월읍)의 귀일리의 한 조그마한 촌락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후 1730년대에 와서 우면이 신우면으로 변경되면서 귀일리는 상귀일리, 하귀일리로 분리되고 또 어느 시기에 '日' 자가 빠져나가 상귀리, 하귀리로 변모하면서 고성은 상귀리에 포함된 촌락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지역을 고성촌이나 항파두촌으로 불렀다.

▲ 항파두리성, 삼별초 군대가 주민을 동원해서 쌓은 성  ⓒ 장태욱

과거에는 보통 리는 25시 이상일 때에 붙여지고 그 미만일 때에는 촌으로 불렀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어느 시기에 25시 이상이 되자 '고성촌' 혹은 '항파두촌'이 리로 승격되어 고성리로 명명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자료 : 제주시)

김통정 장군의 전설

고려시대 삼별초 김통정 장군이 이곳에 항파두리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켰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이 마을에는 김통정 장군에 대한 전설이 곳곳에 박혀있다.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에 따르면, 김통정 장군은 태어날 때 온몸에 비늘이 돋쳐 있었고 겨드랑이에는 자그마한 날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고 하늘을 날며 도술을 부릴 수 있어서 삼별초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삼별초가 궁지에 몰리자 김통정은 진도를 거쳐 제주도로 돌아왔는데, 군사상 적지를 찾아 산으로 올라오던 중 항파두리를 발견하고 이곳에 토성을 쌓았다. 이곳에 성을 두르고 안에 궁궐을 지어 스스로 '해상왕국'이라 하였다.

어느 해 고려 장군 김방경이 김통정을 잡으러 토성 가까이 왔으나 철문이 굳게 잠겨 있어서 들어갈 도리가 없었다. 김방경이 성 주위를 빙빙 돌고 있을 때, 아기 업개(업저지) 한 명이 그에게 이르기를 "저 쇠문 아래 풀무를 걸어놓아 두이레 나흘만 불어보십시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김방경이 풀무를 걸어놓아 불기 시작하니 철문이 달아올라 녹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김방경 장군이 이끄는 군사가 성안으로 들어오자 김통정 장군은 쇠 방석 하나를 바다 위로 내던지고 그 위로 날아갔다. 김방경 군사들은 새와 모기로 변해서 쇠 방석 위의 김통정 장군을 따라갔다. 새와 모기가 따라오는 것을 심상치 않게 여긴 김통정은 쇠 방석을 떠나 고성 마을의 '골고미'라는 내로 날아왔다.

새와 모기로 변한 군사들이 계속 쫓아오자 김통정은 "이 새는 나를 살리려는 새냐, 죽이려는 새냐?"며 새를 보려 하자 머리가 뒤쪽으로 젖혀지며 비늘에 틈새가 생겼다. 이 순간 모기로 변했던 장수가 칼을 꺼내 김통정 장군의 목을 비늘 틈새로 내리쳤다.

▲ 장수물로 들어가는 입구.  ⓒ 장태욱

이때 김통정 장군은 죽어가면서 "내 백성일랑 물이나 먹고 살아라"며 발로 바위를 꽝 찍었다. 바위에 발자국이 움푹 패고 거기서 샘물이 솟아 흘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샘물을 장수물이라 부른다.

▲ 장수물, 김통정 장군의 발자국이 만들어냈다는 샘물이다. 

김통정 장군을 죽인 김방경 장군은 곧 토성 안으로 달려들어 김통정 장군의 처를 잡아냈다. 그녀의 뱃속에 아이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그 씨를 멸종시키기 위해 태워 죽였는데, 매 아홉 마리가 죽어 떨어졌다고 한다. 날개가 돋친 김통정 장군의 자식이니 매 새끼를 임신했다는 것이다.

▲ 붉은오름  ⓒ 장태욱

이렇게 하여 김통정 장군의 처를 죽이니, 그 피가 일대에 흘러내려 흙이 붉게 물들었다. 그래서 '붉은오름'이란 이름이 생겼고 이 일대의 흙이 붉은 것이다. (현용준의 '제주도 전설' 중)

역사 학습장이자 자연의 아름다움 체험할 수 있는 마을

▲ 붉은오름 기슭에 흙이 붉은 색이다.  ⓒ 장태욱

고성1리에는 현재 약 300가구에 78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제주의 다른 농촌처럼 주민들은 귤 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깨나 콩 등 다른 밭작물을 재배하며 살아간다.

▲ 고성1리 운동장, 푸른 잔디가 아름답다.  ⓒ 장태욱

16번 국도를 따라 마을에 들어오다 보면 잔디가 푸르게 깔려있는 고성1리 종합운동장이 눈에 보인다. 운동장이 마을 소속이라 공무원들이 관리하는 다른 운동장처럼 빌리는데 절차가 복잡하지 않고, 이 마을이 시내에 가까이 있어서 제주시내 민간단체에서 많이 애용하는 곳이다.

▲ 이 마을 어디서든지 실록을 체험할 수 있다.  ⓒ 장태욱
 
고성1리에는 종합운동장뿐만 아니라 극락사라는 절의 마당이나, 항파두리성에서도 외래종 잔디가 아닌 다정다감한 토종 천연잔디가 안겨주는 편안함에 취할 수 있어서 좋다. 역사 학습장으로써 뿐만 아니라 실록이 돌담과 어우러져 연출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공간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마을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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