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의 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40)

제주의 해안선이나 모래밭을 걷다보면 뜨거운 여름철부터 가을까지 노란 꽃잎을 땅에 바짝 붙이고 피어나는 양지꽃을 닮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딱딱해진 흙이 많은 길가에도 탐스럽게 피어있는 꽃인데 그 이름은 '딱지꽃'이랍니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딱지의 형상을 꽃에서 본 것이지요.
딱지는 땅에 쫙 붙어있어야 잘 뒤집어지지 않습니다. 딱지꽃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척박한 땅에서 자라다보니 위로 자라기보다는 줄기가 옆으로 눕고, 그 누운 곳에서 피는 꽃은 땅에 기대에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딱지꽃'이 된 것이지요.

▲ ⓒ김민수
건조한 모래땅을 가장 좋아라 하니 해변이나 강가에서 주로 분포를 합니다.
맨 처음에 이 꽃을 보았을 때 양지꽃인 줄 알았습니다. 이른봄에 피어난 양지꽃들이 또다시 피었나 했더니 이파리의 모양이 완연히 다르고 꽃 모양은 거의 비슷하나 다릅니다. 그러나 성격은 비슷해서 양지꽃이 살고 있는 곳도 그런데 딱지꽃 역시도 비옥한 땅보다는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천에 피어있는 양지꽃처럼, 해안가 여기저기에 피어나는 노란 딱지꽃의 물결은 늘 좋은 것만을 추구하려는 나의 욕심에 쐐기를 박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나의 삶의 조건이나 상황을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조건, 상황만 아니라면 지금 보다 더 나았을 텐데 하는 원망이죠.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위인들이나 역사에 빛나는 인물들의 삶을 보면 오히려 그들이 처한 상황은 악조건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는가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삶의 자세로 살아가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겠지요.

▲ ⓒ김민수
정호승 님의 글 중에서 '수선화와 난'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선화는 늘 습한 대지가 싫어 바위 위에 있는 난을 동경하고, 난은 늘 목마른 바위가 싫어 수선화가 살고 있는 대지를 동경합니다. 어느 날 그들은 자리바꿈을 하죠. 자리바꿈을 하자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난은 썩어가고, 수선화는 시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우화 속에서 자기가 서있는 자리, 그 곳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 ⓒ김민수
제주의 해안가는 아시다시피 그리 꽃을 피우기가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해안가에서는 수없이 많은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딱지꽃뿐만 아니라 갯메꽃, 으아리, 순비기나무의 꽃, 갯금불초, 갯강아지풀, 갯씀바귀, 갯방풍, 갯까지수영, 갯괴불주머니 등등 '갯'자가 들어간 수많은 꽃들말고도 가을이면 감국, 해국, 털머위도 피어나고 봄이면 장구채, 술패랭이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꽃들이 척박한 땅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그래요.
간혹 우리 삶의 상황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갈 수 있으니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겠지요.

▲ ⓒ김민수

※ 김민수님은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을 즐겨 합니다. 자연산문집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 '을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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