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535명 중 35.5% 불구 정부 포상은 23명…재평가 작업 이뤄져야

▲ 1931년에 조직된 혁우동맹원들이 1940년말에 청진에서 찍은 사진. 앞줄 왼쪽 강관순, 앞줄 오른쪽이 김성오, 뒷줄 왼쪽이 오문규 선생.
정부가 식민지시대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활동가들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 들어간 가운데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옥고를 치른 제주출신 인사들은 모두 535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중 일제에 의해 사회주의 계열로 분류된 항일운동가는 모두 190명이며, 이중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인물은 23명 뿐으로 나머지 167명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난 60년간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아오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사회주의 계열로 분류된 항일운동가 중 상당수는 1923년 치안유지법이 제정된 이후 일제가 항일운동에 대한 탄압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공산주의(사회주의)로 덧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이에 대한 재평가 작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제주보훈지청은 자체적으로 수집한 판결문과 정부기록보존소에 소장된 판결문, 구 총독부가 발간한 사상월보와 사상휘보 등에서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지난해 12월말  ‘제주 항일 독립운동 참여자 및 판결문 목록’을 발행했다.

이에 따르면 제주에서 항일운동을 했거나 국내외에서 일제에 항쟁했던 제주출신 항일운동가는 535명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일제는 이 중 190명의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며 치안유지법에 따라 검거했고, 이를 토대로 재판을 통해 항일운동가들을 옥고를 치르게 했다.

이 ‘항일운동 참여자 및 판결문 목록’에 따르면 1933년에 결성된 '제주도농민조합 사건'으로 모두 김경봉 부병훈 김일준 등 57명이 일제에 붙잡혀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으로는 가장 많은 인원이 옥고를 치렀으며, 제주의 대표적인 야체이카운동이자 세화리 해녀운동을 지도한 '혁우동맹 사건' 연루자도 신재홍 오대진 이익우 문도배 강관순 등 51명에 달했다.

또 일본 내에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전협) 사건'으로 김희봉 김은환 김갑환 김태연 등 31명이 일본에서 붙잡혀 징역형 등을 선고받았다. 또 '하귀야학소 사건'으로 11명, '대판신간회 활동' 등으로 9명, '전위동맹 사건'으로 8명, '계림동지회 사건' 3명, '상해한인 반제동맹 사건' 4명 등 총 13개 사건에 모두 190명이 국내외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을 벌이다 일제에 의해 숱한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중 정부에 의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인사는 23명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후손들이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사회주의 운동 등의 이유로 포상이 보류된 상태에 있다.

이 중 농민조합사건과 관련해서는 옥고를 치른 강공흡  김경봉 김두경 등 11명에 그쳤으며, 혁우동맹 사건도 문도배  김시곤 한원택 등 3명만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포상을 받았을 뿐이다. 또 부림전(부두전)  강금종 한만숙 등 3명이 계림동지회 사건(일본)으로, 강문일 문영순은 하귀야학소 사건으로 정부 포상을 받는 등 모두 23명만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됐다.

지금까지 이들 사회주의계열의 항일독립운동가들이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지 못한 것은 일부 몇몇 대표적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그 동안 사회주의계열인 경우 냉전논리에 밀려 포상신청을 할 엄두조차 못 냈을 뿐 아니라 설령 포상신청을 하더라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심의를 보류해 왔다.

실제로 최근 국가보훈처가 열린우리당 신학용 의원에게 제출한 '보훈처 포상보류 좌익 항일운동가' 113명 명단에 제주출신인사로 혁우동맹을 주도한 강관순 김순종 선생이 포함됐다.

▲ 1933년 제2차 야체이카(혁우동맹)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 사진은 윗쪽으로부터 이익우,김한정, 김민화,김시곤,김태안 선생.동아일보는 야케이카 사건을 각면에 밀사를 조직, 제주 전도 적화획책한 조직이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강관순 선생은 세화리 문도배 김시곤 한원택 선생 등과 함께 세화리 해녀투쟁을 지도한 혁우동맹원으로 징역2년6월을 선고받았으나 조선공산당 야체이카 활도을 했다는 이유로, 또 김순종 선생은 해녀조합을 결성해 2년6월을 선고 받았으나 해방뒤 건준위원회와 인민위원회 활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포상이 보류된 것으로 밝혀졌다.이와 함께 혁우동맹의 신재홍 김성호 선생 등도 선정에서 탈락했다.

박찬식 교수(제주대)는 “많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저항하고 투쟁하다 숱한 고난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단지 사회주의 사상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민족을 위해 헌신한 항일운동자체가 퇴색돼서는 안된다”면서 “그 당시 사회주의는 독립운동을 펼칠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이념으로, 이를 남북 대치상황과 견주어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하지 않은 것은 독립운동의 한축을 부정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들 190명의 항일독립운동 모두를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보훈치청장을 지내며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연구를 깊은 연구를 했으며, ‘제주 항일 독립운동 참여자 및 판결문 목록’을 발간한 이대수 전 제주보훈지청장은 “이들을 사회주의 계열이라고 하는 것은 일제의 시각일 뿐 실제 그들 모두가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대수 전 보훈지청장은 “일제치하에서 혁우동맹처럼 사회주의 운동을 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1923년 제정된 치안유지법에 의해 일제는 몇 사람만 모이면 이들을 공산주의라며 잡아 가뒀다”면서 “상당수 독립운동가들이 의도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한 게 아니라 그 당시에는 독립운동의 이론적 근거가 사회주의 사상 밖에 없어 그 관련 서적을 탐독하거나 소지한 혐의로 붙잡힌 경우도 상당하다”며 이들 전체를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535명의 제주출신 항일독립운동참여자 중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포상은 받은 인사는 12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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